***** ? 과 !/나누기 :

내 안의 12살 어린 아이 :

GraU 2020. 4. 28. 05:56



https://1boon.daum.net/books612/5ea699e8c2ec556008869961


'정답'을 찾으려는.

vs.

'적정'을 찾으려는.














오히려 .


많은 이들은

유복하게  부모님의 관심? 을 듬뿍 받고 자란 듯이 보이는,


다른  사람의 유년기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근원적으로  부러워하는.

그에 대해 제대로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슴은 인정하지 못하고, 보이는 것에 대해자신이 바라는 바대로만 보게 되는.  


극명하게,  나 와 나의 것 :   확장된 나로서의  아이. 


스스로가 자기도 모르게  '짓게 되는', 그리고 머무르게 되는,  스스로의 '자리'에 따라,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이 만들어  자신에게 들이닥치게 되는  '일:' - '생각이 구체화되어 드러나 영향을 끼치게 되는 : 실제 - 현전상으로서의: 사람마다 다 다른' 에 대한 탐구의 유무는 차치하고.


대개의 경우에서는  그 '있슴'을 눈치채지 못하는 만큼 또한, 

'있음'에 대해 의혹을 품더라도, 자세히 들여다 보지 못하며,  

나아가 들여다 보고 그 실체를 보기 시작하더라도,  

드러내어 인정하지 않는, 


그 자리가 실제: 여기서는 "제대로 된"  육아 -전형으로서의 바라는 자리  와는 별개로, 

즉, 자기 자신 안에 드리워진,  

'최고:'  로  인식되어버린  제대로 된  의 의미.


그것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충족되지 않는,  이루어질 수 없는   vs.  원래가 그런

즉 채워지지 않는 '구멍'임을  알아차리느냐  vs. 아니냐와는 다른 의미로,


제 스스로의,  '어른'으로서의  현실:  현재가  (자신이 자신만이 이루어낸 줄 알고 있는,  어른으로서의 자신의 상)

차라리  그 시절의  엄마아빠가  '힘들게' 사는 데 대한 피곤함으로써,  

무관심 하게  내버려 둔 듯한 (자신 스스로는  네거티브하게만 기억하고 있는)  

그 시간들에서 기인될 수 도 있었슴을 눈치채기 전에는,


자신의 '현재'에 대해,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바와 같이.   

그 증거로서 항상 '자랑하게 되는',  인정받기를 갈구하게 되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무리 많은  '일'을 겪어보았다 하더라도,

또한, 아무리 많은 '곳'을 지나왔다하더라도


곧,  그 자리들에서  자신이 누린 것을 보지 못함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머물게 한  도움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같은.


드러나는 바에 끄달림을 눈치채는 것 만큼이나

드러나는 것들의  실제가

드러나 있는 바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슴을  알아차리는 일이 더 중요하듯이.


굳이

구하고 바라는 마음이라 하지 않더라도,


내 안의 12살 어린 아이: 를  '인정'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라떼는 말이야' 로  조롱받는  어른의 현주소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가 궁금하지 않는, 

스스로 어른 인줄 아는  아직은 아이들의 그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하는 말과 행동

내가  하는 생각과 의지


그 괴리 : 

대상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사건에 따라 달라지는.

를 눈치채는 것 만으로도.



결국은,


저 책의 글들이 

또다시  

같은 기전으로 

내안에 들어 앉아 

;구가;하게 되는


소위,  '방법론 수준에서의  뒤따름' 을 벗어나는 일.









진짜 어른이 되는 길.

드러나 사회적으로  그렇게 여겨지도록  '프로퍼갠더 된' 어른의 상 말고.






찾으려는 그 마음 자체에서 드러나는

더 나은 답을

밖에서 찾으려고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라리 


 '아이'를 더 잘 살피려는 바가 비추는  나의 자리를  눈치채는 일.



지금의 자리가 어디인지

보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되려 어떠한 강요를 하고 있는지 하는 자리가 보이지 않듯이,


나도 참고 있다 :  로서  표현되는,  홀로 견딤에 대한 ' 자기연민:' 은


또한, 스크랩 된 것 같은 류의,  

굳이 '가르침' - 밖에서의, 밖으로부터의,   

소위 '    '  에 더욱 솔깃해지게 되는 '현재'를  받아들이는 일 

그 자체에서 또한  드러나는 것.





"이것도 해야 돼?" 


이 마음을 알아차리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 원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는 채로, 내가 그러하듯이, 아이에게도 드리워지는, 


예를 들어, 도가 지나치도록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되는  그 자리는,


반대편, 긍정의 방향으로, 무조건적으로 동의되는 '끌려감:' 의 근원에 있는 것들.  

그 곤란한 알아차림의 도중에, 그 '순간: 을 견뎌냄'의 와중에  드러나는 것들을

얼마나 조용히 쳐다볼 수 있느냐에 따라


오히려, 나의 자리를 비추고

나 스스로를 평안하게 하는 바.




오직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있어서도.


해주는 일과

자유로워지는 일이

맞닿아 있는 이유로서.


또한, 

'참고서 한다'는 의미가, 

알건 모르건 그 자리에서  늘 항상 '견뎌내고 있는' 줄을 스스로 모른다면,


그 '참는 바'도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로서.








근본적으로는,

차라리  내 아이를 더 '아는' 일이, 

차라리  밖의 것: 가르침, 사례, 방법들 을 능숙하게 달달 외워 따름, '배움을 즐김' : 학 에 의지함  보다  

더 유효 할 밖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내 속의 '12살 어린 아이'에 있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