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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찾으려는.
vs.
'적정'을 찾으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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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
많은 이들은
유복하게 부모님의 관심? 을 듬뿍 받고 자란 듯이 보이는,
다른 사람의 유년기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근원적으로 부러워하는.
그에 대해 제대로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슴은 인정하지 못하고, 보이는 것에 대해자신이 바라는 바대로만 보게 되는.
극명하게, 나 와 나의 것 : 확장된 나로서의 아이.
스스로가 자기도 모르게 '짓게 되는', 그리고 머무르게 되는, 스스로의 '자리'에 따라,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이 만들어 자신에게 들이닥치게 되는 '일:' - '생각이 구체화되어 드러나 영향을 끼치게 되는 : 실제 - 현전상으로서의: 사람마다 다 다른' 에 대한 탐구의 유무는 차치하고.
대개의 경우에서는 그 '있슴'을 눈치채지 못하는 만큼 또한,
'있음'에 대해 의혹을 품더라도, 자세히 들여다 보지 못하며,
나아가 들여다 보고 그 실체를 보기 시작하더라도,
드러내어 인정하지 않는,
그 자리가 실제: 여기서는 "제대로 된" 육아 -전형으로서의 바라는 자리 와는 별개로,
즉, 자기 자신 안에 드리워진,
'최고:' 로 인식되어버린 제대로 된 의 의미.
그것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충족되지 않는, 이루어질 수 없는 vs. 원래가 그런
즉 채워지지 않는 '구멍'임을 알아차리느냐 vs. 아니냐와는 다른 의미로,
제 스스로의, '어른'으로서의 현실: 현재가 (자신이 자신만이 이루어낸 줄 알고 있는, 어른으로서의 자신의 상)
차라리 그 시절의 엄마아빠가 '힘들게' 사는 데 대한 피곤함으로써,
무관심 하게 내버려 둔 듯한 (자신 스스로는 네거티브하게만 기억하고 있는)
그 시간들에서 기인될 수 도 있었슴을 눈치채기 전에는,
자신의 '현재'에 대해,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바와 같이.
그 증거로서 항상 '자랑하게 되는', 인정받기를 갈구하게 되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무리 많은 '일'을 겪어보았다 하더라도,
또한, 아무리 많은 '곳'을 지나왔다하더라도
곧, 그 자리들에서 자신이 누린 것을 보지 못함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머물게 한 도움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같은.
드러나는 바에 끄달림을 눈치채는 것 만큼이나
드러나는 것들의 실제가
드러나 있는 바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슴을 알아차리는 일이 더 중요하듯이.
굳이
구하고 바라는 마음이라 하지 않더라도,
내 안의 12살 어린 아이: 를 '인정'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라떼는 말이야' 로 조롱받는 어른의 현주소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가 궁금하지 않는,
스스로 어른 인줄 아는 아직은 아이들의 그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하는 말과 행동
내가 하는 생각과 의지
그 괴리 :
대상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사건에 따라 달라지는.
를 눈치채는 것 만으로도.
결국은,
저 책의 글들이
또다시
같은 기전으로
내안에 들어 앉아
;구가;하게 되는
소위, '방법론 수준에서의 뒤따름' 을 벗어나는 일.
진짜 어른이 되는 길.
드러나 사회적으로 그렇게 여겨지도록 '프로퍼갠더 된' 어른의 상 말고.
찾으려는 그 마음 자체에서 드러나는
더 나은 답을
밖에서 찾으려고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라리
'아이'를 더 잘 살피려는 바가 비추는 나의 자리를 눈치채는 일.
지금의 자리가 어디인지
보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되려 어떠한 강요를 하고 있는지 하는 자리가 보이지 않듯이,
나도 참고 있다 : 로서 표현되는, 홀로 견딤에 대한 ' 자기연민:' 은
또한, 스크랩 된 것 같은 류의,
굳이 '가르침' - 밖에서의, 밖으로부터의,
소위 ' ' 에 더욱 솔깃해지게 되는 '현재'를 받아들이는 일
그 자체에서 또한 드러나는 것.
"이것도 해야 돼?"
이 마음을 알아차리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 원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는 채로, 내가 그러하듯이, 아이에게도 드리워지는,
예를 들어, 도가 지나치도록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되는 그 자리는,
반대편, 긍정의 방향으로, 무조건적으로 동의되는 '끌려감:' 의 근원에 있는 것들.
그 곤란한 알아차림의 도중에, 그 '순간: 을 견뎌냄'의 와중에 드러나는 것들을
얼마나 조용히 쳐다볼 수 있느냐에 따라
오히려, 나의 자리를 비추고
나 스스로를 평안하게 하는 바.
오직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있어서도.
해주는 일과
자유로워지는 일이
맞닿아 있는 이유로서.
또한,
'참고서 한다'는 의미가,
알건 모르건 그 자리에서 늘 항상 '견뎌내고 있는' 줄을 스스로 모른다면,
그 '참는 바'도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로서.
근본적으로는,
차라리 내 아이를 더 '아는' 일이,
차라리 밖의 것: 가르침, 사례, 방법들 을 능숙하게 달달 외워 따름, '배움을 즐김' : 학 에 의지함 보다
더 유효 할 밖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내 속의 '12살 어린 아이'에 있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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