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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HERE Love My Life' : '언제 어디서나'

GraU 2019. 10. 7. 12:49





Amor  Fati


Love  Fate


Amor + party  

사랑의 파티  정도의 뜻인 줄 알았드니 아니었다.


운명을 사랑하라?  운명에 대한 사랑?  나의 ?

니체의 말이라길래, 또 멈춰서는 발걸음.   슬프게도, 거기 다있지비.


"사랑이 아니면  지나쳐라"







우정의 능력 은 훌륭한 결혼을 이끈다.

당신이  훌륭한 친구를 가지지 못했다면, 훌륭한 아내를 얻을 확률도 적은 이유이다.

니체 가  그랬지. 원래의 경구는

"훌륭한 '친구'를 가진 사람은 훌륭한 '아내'를 얻을 것이다. 훌륭한 결혼이라는 것은, 우정의 능력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1



이 말을 아무리 되새김질 하여,  스스로에게 경책으로 되돌린다 해도,

그 방법론을 자연스럽게 '이입' : '흘러들어가게 : 渡'  할 수 없다면,

그 말을 쥐고 있는 자신의 상 때문이며,

이는 실제, 자신을 위한 자리가 아니게 된다.


상을 좇는 자리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

나  아닌  남을 위한 자리로 귀결되기 때문.



누군가가

나를, 나의 존재를   

자신의 것 : 아소 로 여기어

자신의 뜻대로 하려 할지라도.


그 자신은 그것을 몰라

오히려, 더 하고 덜한  경중으로 따지게 되는, 자신만의 색깔로 윤색된 '관계' 하에서

그것은, 숙고2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다시 단순화 되고  보편 이상의 무의식적 동조 아래,

멀고 가까운 '조건'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강요되는 바 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밖을 보는 이 눈(察)이

안을 보는 자리(照)와  같은 위계임을 안다고 스스로 여기면서도


실제 그 온전한 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현재.


더 골치아픈 일은,

그 자리가 점점 더 예리하고, 날카로운 벼랑 위 라는 것을,

오래 전 부터  글로선 알고 있었다 할 지라도,


그 자리에 와 본 적 없는 이는

그 자리가 얼마나 삐끗하기 쉬운 자리 인줄 몰랐다는 것.

아니, 

단순히, 전하기 위해서 남기는 글, 말 수준으로 전할 수 없는 

;진실.3









'무지'  그 자체가 논증 (논쟁으로 증명하여야 할) 의 대상이 될 수 없듯이4

아니 그럴 필요없듯이,

'앎'도 그러하다. 


스승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남에게 보이려 할 필요없다.


수없는 침잠과, 몇십 번을 다시 적어도 다독여 지지 않는 

이 기대는 마음,


臨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으키는 일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기본적으로


'시간성 한계' 에 머무르는 일이며,

'계박' 스스로 쥐고서 놓지 못해서 일으키는 불편함 : 苦 에 대해


뜻으로, 말로, 글로 

소위 머리로, 아무리 되새기려 하더라도

그냥 원래부터 그러한 듯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한 것.

온전히 나 로 체화되지 못한 것.


이 역시  앎 을  '나의 것' 我所 이라 여기는

물성의 그것과 마찬가지.



이제,

그저 끌리는 데로 ,  

그냥 가고픈 대로.


놓아준다는 것.

제 자리로 가는 일.


낮은 곳으로 

실제의 자리로

원래 있던 곳으로





나   와


나의 것    을


1. 보기 시작하고

2. 그 차이를 알아

3. 떨어뜨려 놓고 볼 수 있을 때.








https://www.youtube.com/watch?v=tm8q6hvrMTI&list=RDtm8q6hvrMTI&start_radio=1&t=18

https://youtu.be/tm8q6hvrMTI?list=RDtm8q6hvrMTI

https://youtu.be/tm8q6hvrMTI?list=RDtm8q6hvrMTI&t=80






세상에서,

소위  '잘 알려져 있다'는 것들은, 

실제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rel. HegeL



자신의 세상이 어떠하다 는  단언은 마치 자신의 경험이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我慢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도 모르고 올라타 있는  자기중심주의 (rel. 도미니 도그마 )  의 한 예에 불과하다.



다른 이가 적은 글을,

이렇게 조금만 바꾸어 자신의 것인냥 읽히게 할 수 있슴은.


결국은,

그 결과 : 자신이 얻게 될 것으로서  가  향하는 곳이

곧, 자신의 현재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함께하는 '선한 의지'

제대로 표현되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바라고 앉은.


누구나가.


언제

어디서나.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글 만을 사랑한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http://naoshimaisland.blogspot.com/search?q=%EB%8B%88%EC%B2%B4%EC%A0%81+%EC%9E%A0%EC%96%B8


시의 그것과 같은,  무장해제. 무의식적 동조 :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만,   의미내용 으로만  천착할 때. 짧은 경구에 숨어 있는,  앎의 그림자.



자신의 삶에 대한 관점/ 생각들을 시로 적어 놓은 듯한 느낌의  짧은 글들.

멋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그가 '가진 것'들에 의한 것이겠지만, 


선뜻 내어 놓지 못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 것 또한 심연으로 치닫게 하는 슬픈 촉매.


대개의 경우,


'피곤한'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그 피곤함 자체가  그것을 방해한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ingknight77&logNo=70043709916&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명언  이라는 이름으로  말한 자 만  남겨 놓는 수준.


그 이전의  자기 말처럼 하던 자리 와  옛말에 내지는  소위 '전형'으로 삼는 텍스트 에 의하면   식의,

원전을 밝히지 않는 일이 보편화 된 현상으로   별 문제 없이 받아들여지는 , 하나의  '구조'  에서의


'변화'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듯이,


매스미디어 - 숨겨진 프로퍼갠더 주체 : '교육' 기능 이 의도/비의도적 부여된 -  에서,

그 특별한 : '계급화 된  전형적 '매스미디어'  의 형태/ 바운더리  안으로

보통 사람들도  IT 이기에 의해,  미디어 창출  과  그 영향력 으로 인해 ,  '포함' 되는 현상 하에서


이런 블로그 글 들에서의 원전 밝힘 은 다른 의미를 가질 것.


잠언/ 명언 들이,  

그 말을 내뱉은 '사람'에 좌우되어, 부정적으로 인지되는 어떤 경우 : 꼰대식 사고 로서 가 아니라,

다른 경우 :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자기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  "생명"이 가지는  자기의지 - 밖으로 내비침 - 발산 :  - 나아가 '자유의지'  측면에서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생각.


또, 저 먼 곳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것들이 모여, 보이지 않는 '선한' 프로퍼갠더로서  

다음 세대에 전해질 "마음"을  구체화 시키는 것임을.



  1.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함께 하였더라도, 내 인생 다른 누군가와 비교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더라도, 니체의 말대로 '진정 함께 한 시간은 '대화'(여러 유형의, rel.오고가는 '것'의 유무에 따라)를 나눈 시간' 이라는 사사로운 진실 에서처럼. [본문으로]
  2. 주는 일 이 되어버리는, 그를 위해 깊이 생각해 보는 일 [본문으로]
  3. 겉으로의, 소위 '일상'으로서는 , 잠깐의 '변덕;' 일지라도, 안에서의, 그 사람의 속에서는, 세상이 한번 무너지는 일: [본문으로]
  4. 무지는 논증이 아니다. -마르크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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