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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 마음]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무의식적 행태 : 남을 바라봄을 스스로에게 돌리면 알아차릴 수 있는.

GraU 2015. 8. 15. 14:15

 

1.

 

http://boonsuck.blog.me/220278630190

 

마지막에 빵 터짐

 

혹시 다른 뜻이 있나 싶어 괜히 찾아본 단어 - 눈에 띄는 글 : http://blog.naver.com/louii/220442236178 :

근디, 원문 어디에도 윤택하게 해준다는 타이틀은 없는 거 같은디. 옮긴 이의 마음이 비춰진?

 

 

http://boonsuck.blog.me/220279463904

 

 

 

 

 

2.

 

http://boonsuck.blog.me/220278628535

 

심리학자 들이 말하는 8가지 심리 상태 ; 사람을 보는 팁  이라고 소개된 글.

 

 

 

 

 

1. 별 일도 아닌데 잘 웃어주는 사람은 깊은 내면에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2. 평상 시 보다 많이 자는 사람은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3.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말 할 때 빨리 말하는 사람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4. 눈물이 나지 않는 사람은 많이 약해져 있는 것이다.

5. 밥 먹을 때, 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긴장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6. 사소한 것에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순수하고 마음이 여린 것이다.

7.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사랑이 필요한 상태이다.

8. 표정이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사람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이 훨씬 크다.

 

 

 

출처 나 원전 : 사람이름(연구자) 만이라도 병기 되어있으면 좋을 텐디.

 

 

여튼

갑쟈기 든 생각

 

소위 '말법' 의  의미를 보여주는.

 

예를 들어 생각해보기에, 원래 의도하고자 했던 '연구자'들의 ,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미치게될 파급양상 효과 - 예상했던 현상과는 다르게 실제 대중에게 퍼지는 시기에 이르러서는 방법론으로서, 그 진의를 많이 벗어나 버리게 되는 본질-현상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은   '실체화; 구체화 ; 공고화  :    ' 의  양면성? 다층성? (rel. 보리-평등) 에 대한 .

 

 

의도의 전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는 : 전체로서 파악하고자 하는 '개념' (rel. toral field image)을 대하는 태도, 자세에 대하여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

소위 본질 또는 이러한 구체적 '정보'에 있어서 "왜: 즉 시작" 이

현상 또는 여기서는 "무엇: 즉 결론, 결과"  로      "어 떻 게"     이어지는가의 문제가

 

실제 : 0 무방향성의 상태, 정지, 침묵 ----> 실제 : 내비침 : 움직임, 왜곡 의 기전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불법이 그 진의를 잃어간다는 의미로 , 또 더 나아가 '인간 - 나아가, 중생'에 대한  부정적 관점의 연원과도 닿아있는 '말법시대' 라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가와도 다르지 않은.

 

 

 

 

"법" 으로서 내어놓아진 자리에서 부터 : 즉 꺼내 놓아진 '내비침' : 해당 그 사건에만 국한된 내용이라 할지라도, 그 보이는 부분 ; 이해가능한 :  항목(화) 에 한해서만  '집중 : 관심" 을 가지게 되는 기전 

[현상, 사건의 특정 부분에 끌리게 되는 이유]

 

과 더불어,

 

내어 놓아진 그것이 ,  개별적 개인, 즉 나에 있어서 :  '내' 안에 들어앉을 때  '나'에게 있어서는   인식 단계 - 말단 (rel. e.g. Golden Circle ; 비고 : 베이스-프로젝트-엘리먼트 컨셉 ; 쉽게는, 저이가 내어놓은 것은 맨 마지막 단계의 인지과정 인데 반해, 내 속에 들어오는 그것은 가장 첫번째 단계가 된다는(그렇게 여겨버린다는) 의미)의 위계 : 그 결과, 결론을 내어놓게 된 출발과 과정에 대한 비의도적 묵살  로서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간에 (알건 모르건) '왜곡:  '을 야기 된다는 점 과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 =  의도적으로 전체를 파악하려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실제 떨어져 나온 이상 원래대로 파악하기는 불가능 하다는 인식론적 한계 

[ rel.  현상적 한계 ]

 

또한

 

근본적으로 앞선 두 기전과 함께 엮여있는 ;관계(맺)하고자 하는 욕망으로서 ; '보이고 싶은' 자리 : 비약적이긴 해도, 내가 최초 이 대상(꺼내어놓아진"법",사건,사실,외물)을 '파악'하고자한 이유는, 파악하고자, 알고자 한 그 순간에 함께 소위 '생기는' 공유하고자, 관계-내비치고자 하는 내 안의 또다른 별개의 기전(앞의 법으로서 꺼내놓아진 자리와 구별되는, 하지만 같은 흐름?으로 내 속에서 일어나게 되는) 으로 인해  

[ cf. 게슈탈트 쉬프트 : 그 자체가 인식, 나만의 것이 되는,  ]

 

 

 

내어 놓는 과정에서, 내가 그 대상에 대해 얼마나 실제에 가깝게 파악했는냐와 함께

왜 (그렇게) 파악하였는가 ,  (그렇게) 파악하여 얻고자 한 바가 무엇인가 에 따라서

 

 

 

세 단계를 거치면서

그 원래 : '실제' 의 자리에서 벋어난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정보'에 대해서 일어나는 수준에서의, 이런 사회과학, 심리적 변화 - 비 자의적 변형 :  왜곡   의 기전을 이해하지 않으려한다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소위 '기억' :   의  왜곡을 알아채기는 영 요원하게 되는 것.

 

다른 의미에서의 '거칠고, 미세한' 차이.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 하고 싶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오히려 이 의미와 가까운.

 

 

 

내 안에

내가 가지고 있는

실제는 그것이 내 것이라 '여기고' 있는 - 아주 객관적인 '실제'라고 상정한 상태로

정보   즉   기억 에 의지하는 것이

왜  죽은 것에 의지하는 것 이라고 일컫는지.

 

 

 

쉽게는

지금 이 순간 : 현재의 3가지 레이어 : 잉.

 

이 글을 쓰려하고 시작하던 그 순간 - 꺼낸 것이 무엇인지 알건 모르건.

지금 쓰고 있는 이 순간

쓰고 나면 나에게 주어질, 내가 가질 만족감 내지는 기타 기대되는 어떤 것

 

이 세 가지 구도.

 

과거에도 , 미래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고

그 아홉가지 '구조'  자체를  들어 알고 깨닫게 되는  열번째 세상.

 

 

 

따로 들어 둘이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법성게의 구절이 아니더라도.

 

또한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지칭'의 과정을 거쳐  소위 '이해 가능하도록' 한참을 풀어서 쓴다하더라도,

 

 

사건의 모든 위계

인식의 모든 위계

 

최소한 내가 파악하는 현재에 이 순간에 일어나는

내 속에서의 기전을 스스로 보려고 하지 않는 한

 

그 설명은 의미 없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오로지 내어 놓아진 사실, 이 글귀 들.

그 속에 보는 이가 이해 가능한 구절에 대한  "소유" 만이 남는.

 

 

 

 

말법.

진의는 떠나고, 껍데기만 남는다는 의미.

 

다른 것이 아니고

"진실" 에 대한 갈구 - 그 거들떠 봄이 신경쓰이게 되는

그 자리와 다르지 않은.

 

 

 

 

 

 

 

 

 

 

 

대개의 경우, 여기서의 출발이었던  8가지 심리상태 에 대한 글을 보더라도,

판단, 분별하는 방법론으로 쓸 뿐이지, 자기에게로 돌이켜서, 자신을 보는 또 다른 9번째 , 10번째, ....1000000번째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음을 별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결여. 고통을 느끼지 않을 때. 나는 못느끼니까. 왜 굳이 그 걱정을 더 해야되나 하는. 골치아프게.

 

 

근데.

내 안에 일어나는 일,  그 무거움과 가벼움의 단순한 구도 :  다 안다고 여기는, 나는 나를 확실히 안다라고 여기는 그 "환상" 은,

 

내 옆에 가까운 이가

 

 

 

항상 잠이 많아 빈둥빈둥, 게으른 것으로 보여 속만 터지고,

 

당연히 지금 해야 될 일이 있는 데도 굳이 어떤 이유를 핑계로 안하는 듯이 보이고

 

좀 깨끗이 치우고 살면 될텐데  쓰레기랑 같이 뒹구는 듯이 보이고

 

항상 짜증을 내어 나를 괴롭게 하고

 

..

 

 

이런  소위  '현상 : 사건 '  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그걸 왜 내가 고려해야 돼?

싶으면, 거기가 곧, '힘'의 존재를 비추는 것. 그 의미.

또한 그 와의 구도 뿐만이 아니라, 관계된 모든 이와 연관된. 보기 시작하려하면 보이는.

 

 

 

몰라서, 누가 알려주지 않아서가 아닌 것.

그것 까지 고려할 필요가 없다, 난 그러기 싫다.

 

 

멈칫.

 

 

왜 그러하기 싫은지.

내 안에도 있는 '그 것'의 존재?

 

 

 

 

나도 지금 이만큼이라도 '서있는 것'이 힘들다.

왜 몰라주노.

 

 

 

 

 

 

 

이  : 알아봐 다오   의  내 속의 기전을 눈치 채는 것은

절대적으로 솔직해 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의미.

 

누구한테 '고백'할 필요도 없는데

굳이 숨기는.

 

왜 그러고 있는지 스스로 보기 시작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진의에 가까워지려는.

다시말해  나를 다독이는 것이 왜 내 주변을 위한 출발이 되는지.

그 시작이다.

 

다른 의미가 아닌

 

배려.

 

 

 

 

이기와 이타가 한뿌리라는 증거.

 

 

 

 

 

 

희구심.

 

 

 

 

 

 

 

 

 

 

 

자연스러운 것.

판단할 꺼리가 아니라는 것.

말법시대 라는 말을  진짜 하였건 아니건이 중요하지 않음은,

그 말의 뉘앙스를 파악하고 있는 현재가, 부처님이 실제 그자리에서 말씀하신 거기와

다를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

 

하이고,

그러니까 중생은 안돼.

하는 그 자리.

 

하이고,

떠들어봐야 머 어쩌라고.

하는 그 자리.

 

판단할 필요가 없는 것.

 

그래서

승부심의 아랫 단계.

 

 

 

 

 

더 중요한 것은

남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읽혀진 이 순간,

그 반대편의 다독임이 근간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나에게로 저 8가지 심리상태의 반추를 되돌려

 

내 속에 일어나는 것들을 바라보고자 하는 그 순간에야 보이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 얽혀 있는 굴레.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굳이 짚어서는

내 '판'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구분하여 판단해 버리는 그 기전으로

스스로의 기준을 부지불식간에 높이 쌓아

자기도 모른 사이 이것은 내것이고 나의 멋진 상이니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들여 앉힌.

 

슬프게도 스스로 알건 모르건

다시 내 주변으로 되돌려져

소위 "힘"의 구가 : 강요의 코드가 되는.

 

 

 

 

 

이 판단의 굴레에서 벋어남이

작은 의미의 해탈 이 아닐까.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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