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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 마음] 바라는 마음 : 마음이 가는 길

GraU 2016. 11. 7. 15:02

http://www.daegaksa.co.kr/board/read.php?np=1&pid=119586&uid=2832965





나에게 있어

왜 굳이

불교가 나를 바꾸는 것으로 이해되었는 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은


실제 구체적인 고정된 실체로서의, 딱 적어낼 수 있는 문장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실제하는 모든 순간에 보여지는 고정된 상들이 왜 다 허상이라 부르는지에 대한 나 스스로의 이해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다시태어남이라는 단어로 '대상화'되는

이 '스스로를 바꿈'이, 내 안에 자리잡은 뭉테기로서의 양상을 조금이나마 스스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지 싶다. 또한 굳이 적어놓자면, 이를 다른 의미들, 종교등을 대하는 다른 자세보다,

더 '그럴 듯' 하게 보여서 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공유하고 있는 가치로서가 아닌,

공유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지니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각자 스스로를 느낌으로의 공감은,

굳이 지칭하자면 '마음'이라는 의미로 동용되어도 무방하다 여긴다. 그 단어를 대하는 의미지음 과 사용태도 에 대한 각개론적 따따부따가 올라옴은 차치하고서, 어느 수준에나 존재하는 '그것'의 의미로, 누구나가 (물론, 각기 다르더라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


미리 적어두자면, 이 의도, 즉, 미리 기대함으로서의  '다시태어남' 은 그 출발에서부터, 고통에 대한 이해가 그러하듯, '이익'에 의함임을 스스로 인정하여야 한다.





바라는 마음


분별심 :

소득심 :

승부심 :

희구심 : O

생멸심 :






누구나 세월을 살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는 반면에,

평생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들도 있는데


1.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본성, 성품, 성향과 아예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접해 볼 여지가 없었던 경우와


2. 의식적으로

자신이 일부러 그 곳에 가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있다.



전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채로  멀리 해온 것들이고

후자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멀리 해온 것들이다.


물론, 항상 거울처럼 반대편이 있는 바,

전자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고 가까이 두고 있는 것들이 또한 있고

후자에는 자신이 결정하여 의도적으로 가까이 가질려고, 얻으려고 하는 것들이 있다.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자기를 알아차림, 자기보기 이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수히 객관적으로, 소위, 가장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을 위한, 온전한 '판단'의 순간을 겪어내지 못한다.


나의 스승 중 한분은  이 때문에  매순간 '판단'을 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고

소위 '판단중지'에 머물라고 하였다. 나도 이 말을 알아듣는데 한참이 걸렸지만


선택의 문제를 다루는 인식의 구조를 알아차림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자신을 바꾼다는 것은

이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 우선이 됨을 이제 알았다 하더라도,

실제 알아차린 것들을

소위 '최선 : 적정 ' 에 맞게 교정해 간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의도'의 다잡음 위에 서있으며, 이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래서, 이 바꿈 : 다시 태어남 1의 의미가 위대하고 위대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1. http://blog.daum.net/_blog/復活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