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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오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듯이
知天命에 가까워 지니 어릴 때, 젊을 때의 내가 보이긴 한다.1
현재형으로도 늙어가는 것을 이제 막 받아들이기 시작한 나이에
그것을 덤덤히 맞아주기가 편하지는 않은 것처럼
이 바라봄이 원할하게, 또는 내가 바라는 나의 뜻 대로 되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이 바라는 바를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높은 산을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려 해도, 그 쪽으로 나무들이 꽉 차있다면.
아무리 높게 오르더라도, 내 주위에, 또 내가 알건모르건 꼭 쥐고 있는, 내가 가진 착들로 인하여.
그저 산을 오른 것 뿐,
그냥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지는 않는다.
느끼듯이,
대상들이, 남들이 보이는 곳으로 발을 내딛일 줄 알아야 그들이 보이듯이
마냥 높은 곳에 올라만 간다고 해서 그들이 보일리 없다.
차라리
내가 본, 또 보게 될 것들이
틀릴 수도 있다2는
낮추는 마음이라도 들면,
그 대상이 아닌, 그 사건이 아닌, 그 이가 아닌
누군가에게로 가서 물어나 볼 텐데.
물론, 그 물어볼 수 있는 힘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
나 그대로가 아닌
내가 가진 것들로 나를 삼아
내가 스스로 두르고 있는 눈을 가린 '나무'들을 키운 것을 쳐다 보려면
또 어디를 올라야 할까.
산이 깊을 수록 길이 여러 갈래 이듯이
즐거이 새로운 길을 찾아 갈 수 있느냐 아니냐가
차라리 이 일에 있어서 더 알아차리기 쉬운 자리일 듯.
길이 험할 수록 쉬운 길로만 다녀
눈에 보이는 길이 몇 개 없다고 느껴지는 일 또한
이 반대편의 '늘 그러한' 듯 보이는 그 자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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