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to G.

登山

GraU 2018. 11. 3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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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오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듯이

知天命에 가까워 지니 어릴 때, 젊을 때의 내가 보이긴 한다.1

 

 

현재형으로도  늙어가는 것을 이제 막 받아들이기 시작한 나이에

그것을 덤덤히 맞아주기가 편하지는 않은 것처럼

 

이 바라봄이 원할하게, 또는 내가 바라는 나의 뜻 대로 되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이 바라는 바를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높은 산을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려 해도, 그 쪽으로 나무들이 꽉 차있다면.

아무리 높게 오르더라도, 내 주위에, 또 내가 알건모르건 꼭 쥐고 있는, 내가 가진 착들로 인하여.

 

그저 산을 오른 것 뿐,

그냥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지는 않는다.

 

느끼듯이,

대상들이, 남들이 보이는 곳으로 발을 내딛일 줄 알아야 그들이 보이듯이

마냥 높은 곳에 올라만 간다고 해서 그들이 보일리 없다.

 

차라리

내가 본, 또 보게 될 것들이

틀릴 수도 있다2

낮추는 마음이라도 들면,

 

그 대상이 아닌, 그 사건이 아닌, 그 이가 아닌

누군가에게로 가서 물어나 볼 텐데.

물론, 그 물어볼 수 있는 힘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 그대로가 아닌

내가 가진 것들로 나를 삼아

내가 스스로 두르고 있는 눈을 가린 '나무'들을 키운 것을 쳐다 보려면

또 어디를 올라야 할까.

 

 

 

 

 

 

산이 깊을 수록 길이 여러 갈래 이듯이

즐거이 새로운 길을 찾아 갈 수 있느냐 아니냐가

차라리 이 일에 있어서 더 알아차리기 쉬운 자리일 듯.

 

 길이 험할 수록 쉬운 길로만 다녀 

눈에 보이는 길이 몇 개 없다고 느껴지는 일 또한

이 반대편의 '늘 그러한' 듯 보이는 그 자리일 뿐. 

 

 

  1. 겪어 낸 것이 다르니, 보이는 것이 다르듯이, 다른 이의 봄을 '판단'하는 일은 진의를 파악하는데는 의미없다. 그런 맥락에서 이 수자상의 발로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게 그거. 인정하는 그 자리 조차도. [본문으로]
  2. 딱 맞는 정답이 있는 바라봄이 아니므로, 틀리다는 표현은 사실 잘못된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