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 !/수미산이야기

[rel. 바른삼매] '멈추지 않고, 애쓰지 않고', '폭류경' SN 1:1 / cf. 승조법사, '斯可以綿綿 不可以勤勤' ; 雜阿含, 二十億耳經 ; A6:55, Soṇa-sutta, 소나 경

GraU 2020. 3. 6. 17:36

 

 

 

출처 : 연운사 불교자료  http://yeonunsa.or.kr/?c=3/20&uid=531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

나모 타싸 바가바또 아라하또 삼마삼부다싸

 

 

Oghataraṇa Sutta  (SN.1.1.1 : 거센 물결경1)

 

 

 

 

1.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사와띠의 제따숱에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다. 

 

2. 

그 때,  어떤 천신이 깊은 밤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따와나 숲 전체를 밝히고서 세존께 가까이 갔다. 

가까이 가서 세존에게 인사한 후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3. 

"존자시여, 

당신은 어떻게 거센 물결을 건너셨습니까?"

 

"도반이여, 

나는 정말로 멈추지 않고애쓰지 않고  

거센 물결을 건넜다."

 

4.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처럼 

멈추지 않고, 애쓰지 않고 거센 물결을 건넜습니까?" 

 

"도반이여, 

나는 멈췄을 때에 거센 물결에 가라앉고, 

내가 애쓸 때에 거센 물결에 휩쓸렸다. 

 

도반이여, 

이와 같이 참으로 나는 

멈추지 않고 애쓰지 않고 거센 물결을 건넜다."

 

 

"멈추지 않고 애쓰지 않고,

 세상에 대한 애착을 극복한,

 완전한 열반에 든 바라문을 참으로 오랜만에 친견했습니다." 

 

그 천신은 이와 같이 말했다. 스승은 그 말을 시인했다.

 

그 때 그 천신은 

 

스승은 나에게 동의 했다 

 

라고 알고 세존께 인사한 후에, 오른쪽으로 돌아 그 곳에서 사라졌다.

 

 

 

 

+

http://blog.daum.net/hekong/16058872

 


cf.  소나 경  :   

 

"류트의 활 줄 이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게"

 

cafe.daum.net/Vipassana1/LcsP/1180      대전 마음챙김 명상센터 : 앙굿따라 니까야 카테고리 ,   

제6장  대품  Mahā-vagga - 소나 경(A6:55) Soṇa-sutta  

 

 

 

 

cafe.daum.net/mubul/K98q/12  무불스님 향불회 카페 /  초기 경전 카테고리 - 아함경  참조



너무 조이거나 느슨하게 하지 말라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실 때였다. 소오나 비구는 영축산에서 쉬지 않고 선정(禪定)을 닦다가 이렇게 생각했다.
  
' 부처님의 제자로서 정진하는 성문(聲聞)중에 나도 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번뇌를 다하지 못했다. 
애를 써도 이루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집에 돌아가 보시를 행하면서 복을 짓는 것이 낫지 않을까? '

부처님은 소오나의 마음을   살펴 아시고  한 비구를시켜 그를 불러 오도록 하셨다.
부처님은 소오나에게 말씀하셨다.

"소오나, 너는 세속에 있을 때에 거문고를 잘 탔었다지? " 

"네, 그랬습니다."

"네가 거문고를 탈 때,  만약 그 줄을 너무 조이면 어떻드냐?" 

"소리가 잘 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었을 때는 어떻드냐?" 

"그때도 잘 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거나 조이지 않고 
알맞게 잘 고루어야만 맑고 미묘한 소리가납니다."


부처님은 소오나를 기특하게 여기면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너의 공부도 그와 같다.

정진을 할 때 

너무 조급히 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느리면 게으르게 된다.

그러므로 알맞게 하여 
집착하지도 말고 방일하지도 말아라."

 
소오나는 이때부터 항상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문고를 타는 비유를 생각하면서 정진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소오나는 아라한이 되어 마음으로 해탈한 기쁨을 지니고 부처님을 찾아가 뵈었다.
  

"부처님, 저는 부처님의 법 안에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모든 번뇌는 다하고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무거운 짐을 벗어 버렸습니다.

또 바른 지혜로써 

욕심을 떠난 해탈, 
성냄을 떠난 해탈, 

멀리 벗어난 
해탈,

애욕이 다한 해탈
모든 취(取)로부터의 해탈

늘 생각하여 잊지 않는 해탈 

여섯 가지 해탈을 얻었습니다. 

 

부처님, 만약 조그마한 신심으로 
욕심을 떠나 해탈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참으로 욕심을 떠난 해탈이라고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소한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써  
자기는 성냄에서 해탈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못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참으로 성냄을 떠난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양(利養)을 멀리 벗어나려고 닦아 익힌 것으로써
멀리 벗어난  해탈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 못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참으로 멀리 벗어난 해탈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가리켜 
애욕이 다한 해탈,
모든 취(取)로 부터의 해탈,
생각하여 지지않는 해탈이라고 합니다."

 

존자 소오나가 이 법을 말하였을 때 부처님은 기뻐하셨고  수행자들도 한결같이 환희에 젖었다.
소오나가  그곳을 떠나자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잘 해탈한 사람은 마땅히 그와 같이 말해야한다. 
소오나는 지혜로써 말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추켜세우지도 않고
남을 낮추지도 않고
그 이치를 바로 말하였다"


                                                      

 

   -  雜阿含  二十億耳經-

 

 

254. 이십억이경(二十億耳經) 6)

6)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 13권 제23 지주품(地主品) 3번째 소경과 불타집(佛陀什), 축도생(竺道生) 등이 한역한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21권과 불타야사(佛陀耶舍), 축불념(竺佛念) 등이 한역한 『사분율(四分律)』 제39권을 참조하라.

 

이십억이(二十億耳)7)

7) 팔리어로는 Soṇa이고   수루나(輸屢那)로 한역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이십억이(二十億耳)는 기사굴산(耆??山)에서 항상 부지런히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고 익히고 있었다. 이 때 존자 이십억이는 홀로 고요히 선정에 들어 사색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의 제자로서 정근하는 성문(聲聞)들 중에 나도 그 수에 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도 모든 번뇌를 다 끊지 못하였다. 나는 유명한 족성(族姓)의 아들로서 재물과 보배가 풍족하다. 지금 차라리 집에 돌아가 5욕(欲)을 누리면서 널리 보시나 행하여 복이나 짓자.'

그 때 세존께서는 이십억이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어느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십억이에게 가서 '세존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알려주어라."
그 비구는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이십억이에게 가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이십억이는 스승님의 명령이라는 그 비구의 말을 듣고 곧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서있었다.
 

如是我聞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爾時。尊者二十億耳住耆闍崛山。常精勤修習菩提分法

時。尊者二十億耳獨靜禪思。而作是念。於世尊弟子精勤聲聞中。我在其數。然我今日未盡諸漏。我是名族姓子。多饒財寶。我今寧可還受五欲。廣行施作福

爾時。世尊知二十億耳心之所念。告一比丘。汝等今往二十億耳所。告言。世尊呼汝

是一比丘受佛教已。往詣二十億耳所。語言。世尊呼汝

二十億耳聞彼比丘稱大師命。即詣世尊所。稽首禮足。退住一面

 

그 때 세존께서 이십억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정말 홀로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어 사색하다가 '부지런히 공부하는 세존의 성문(聲聞)들 가운데 나도 그 수에 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도 번뇌를 다 끊고 해탈을 얻지 못하였다. 나는 유명한 족성의 아들이고, 게다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나는 차라리 속세로 돌아가 5욕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널리 보시나 하여 복이나 짓자'라고 생각하였느냐?"
이 때 이십억이는 '세존께서 이미 내 마음을 아시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는 놀랍고 두려워 털이 곤두섰다.  
 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爾時。世尊告二十億耳。汝實獨靜禪思作是念。世尊精勤修學聲聞中。我在其數。而今未得漏盡解脫。我是名族姓子。又多錢財。我寧可還俗。受五欲樂。廣施作福耶

時。二十億耳作是念。世尊已知我心。驚怖毛豎。白佛言。實爾。世尊
 


부처님께서 이십억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마음대로 내게 대답하여라. 이십억이야, 너는 속세에 있을 때 거문고를 잘 탔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또 물었다.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네가 거문고를 탈 때에 만일 거문고 줄을 너무 조이면 미묘하고 부드럽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또 물었다.
"어떤가? 만일 거문고 줄을 느슨하게 매면 과연 미묘하고 부드럽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또 물었다.
"어떤가? 거문고 줄을 고르게 하여 너무 늦추지도 않고 조이지도 않으면, 미묘하고 부드럽고 맑은 소리를 내더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십억이에게 말씀하셨다.
"정진이 너무 조급하면 그 들뜸[掉悔]만 늘어나고, 정진이 너무 느슨하면 사람을 게으르게 한다. 그러므로 너는 마땅히 평등하게 닦고 익히고 거두어 받아, 집착하지도 말고 방일하지도 말며 모양을 취하지도 말라."
이 때 존자 이십억이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佛告二十億耳。我今問汝。隨意答我。二十億耳。汝在俗時。善彈琴不

答言。如是。世尊

復問。於意云何。汝彈琴時。若急其絃。得作微妙和雅音不

答言。不也。世尊

復問。云何。若緩其絃。寧發微妙和雅音不

答言。不也。世尊

復問。云何善調琴絃。不緩不急。然後發妙和雅音不

答言。如是。世尊

佛告二十億耳。精進太急。增其掉悔。  精進太緩。令人懈怠。是故汝當平等修習攝受莫著.莫放逸.莫取相

時。尊者二十億耳聞佛所說。歡喜隨喜。作禮而去

 


 

이 때 존자 이십억이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거문고 타는 비유를 항상 생각하면서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홀로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어 사색하였다. 그리하여 번뇌가 다 끊어지고 마음이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 때 존자 이십억이는 아라한이 되어 마음이 해탈한 기쁨과 즐거움을 깨닫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꼭 세존을 찾아뵙고 문안을 드리리라.'
그 때 존자 이십억이는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時。尊者二十億耳常世尊說彈琴譬。。如上所說。乃至 漏盡  心  解脫。 阿羅漢

爾時。尊者二十億耳得阿羅漢。內解脫喜樂。。我今應往問訊世尊

爾時。尊者二十億耳往詣佛所。稽首禮足。退坐一面。白佛言。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법 안에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모든 번뇌[漏]가 다 끊어졌고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제 자신의 이익을 얻었으며, 모든 존재[有]의 결박을 다 풀었고 바른 지혜로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 그 때 여섯 가지에서 해탈하였으니, 어떤 것이 그 여섯가지인가 하면,  탐욕을 여읜 해탈[離欲解脫]․성냄을 여읜 해탈[離?解脫]․멀리 여읜 해탈[遠離解脫]․애욕이 다한 해탈[愛盡解脫]․모든 집착으로부터의 해탈[諸取解脫]․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해탈[心不忘念解脫]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조그마한 신심(信心)을 의지하여 '탐욕을 여의고 해탈하였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진실한 탐욕을 여읜 해탈이라고 합니다.

만일 또 어떤 사람이 계율을 조금 지키는 것에 의지하여 '나는 성냄에서 해탈하였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또한 적절하지 않습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진실한 해탈이라고 합니다.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익을 멀리 여의기를 닦아 익힌 것을 의지하여 '멀리 여의어서 해탈하였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또한 적절하지 않습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진실로 멀리 여읜 해탈이라고 합니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애욕을 여읜 것이라고 하고, 또한 집착을 여읜 것이라고 하며, 또한 기억을 잊어버림에서 떠난 해탈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든 만일 아라한이 되지 못하여 모든 번뇌를 다 끊지 못했다면, 이 여섯 가지에서 해탈할 수 없을 것입니다.

世尊。於世尊法中得阿羅漢。盡諸有漏。所作已作。捨離重擔。逮得己利。盡諸有結。正智心解脫。當於爾時解脫六處。云何為六。離欲解脫.離恚解脫.遠離解脫.愛盡解脫.諸取解脫.心不忘念解脫

世尊。若有依少信心而言離欲解脫。此非所應。貪.恚.癡盡。是名真實離欲解脫

若復有人依少持戒而言我得離恚解脫。此亦不應。貪.恚.癡盡。是名真實解脫

若復有人依於修習利養遠離而言遠離解脫。是亦不應。貪.恚.癡盡。是真實遠離解脫

貪.恚.癡 。亦名 離愛。亦名離取。亦名離忘念解脫。如是。世尊。若諸比丘未得羅漢。未盡諸漏。於此六處不得解脫

 

또 만일 어떤 비구가 배우는 위치에 있어서 아직 증상(增上)한 즐거움의 열반(涅槃)을 얻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익히고 향하는 마음에 머무른다면, 그 때 그는 배우는 자의 계[學戒]를 성취하고 배우는 자의 근[學根]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뒷날에는 반드시 번뇌가 다 없어져 마음이 해탈하며, ………… 나아가 후세(後世)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 것입니다. 그 때를 당하여 배울 것이 없는 자의 계[無學戒]를 얻고, 배울 것이 없는 자의 근[無學根]을 모두 얻을 것입니다.

若復比丘在於學地。未得增上樂涅槃。習。爾時 成就  學戒。成就 學根
後時當得漏盡.無漏心解脫。乃至 自知不受後有
當於爾時得無學戒。得無學諸根

( cf.  '마음'이   '머무름'을   향하도록   익힌다면)   ~  

 

비유하면,  어리석고 작은 어린아이가 반듯이 누워지낼 때에는 어린아이의 모든 감각기관[根]을 성취하였고, 그가 뒷날에 점점 자라 모든 감각기관이 성취되면 그 때에는 어른의 모든 감각기관을 성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배우는 지위에 있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아직 왕성한 안락은 얻지 못하였지만,………… 나아가 배울 것이 없는 자의 계와 배울 것이 없는 자의 모든 감관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譬如嬰yīng童愚小仰臥。爾時成就童子諸根。彼於後時漸漸增長。諸根成就。當於爾時成就長者諸根。在學地者亦復如是。未得增上安樂。乃至成就無學戒.無學諸根

 

혹 눈으로 항상 빛깔을 분별하더라도 끝내 마음이 해탈(解脫)하는 것과 지혜로 해탈(解脫)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굳게 머물기 때문이니, 안으로 한량이 없는 좋은 해탈을 닦고, 생기고 사라짐에서부터 나아가 무상함까지 다 관찰합니다. 
귀로 소리를 분별하고, 코로 냄새를 분별하며, 혀로 맛을 분별하고, 몸으로 감촉을 분별하며, 뜻으로 법을 분별하더라도 마음이 해탈하는 것과 지혜로 해탈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굳게 머물기 때문이니, 안으로 한량없는 좋은 해탈을 닦고, 생기고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若眼常色。終不能妨 心 解脫慧 解脫故。內 修 無量 善 解脫。   觀察 生滅。乃至 無常
聲.鼻香.舌味.身觸.意法。不能妨心解脫.慧解脫。意堅住故。內修無量善解脫。  觀察 生滅

 

비유하면 마을 가까이에 큰 돌산이 있는데, 끊기지도 않았고 부서지지도 않았으며 뚫리지도 않아 한결같이 두텁고 조밀하다면 설사 4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움직일 수 없고, 뚫고 지나갈 수 없는 경우와 같습니다. 저 배울 것이 없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눈으로 항상 빛깔을 분별하고, ……(내지) …… 뜻으로 항상 법을 분별하더라도 마음이 해탈하는 것과 지혜로 해탈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굳게 머물기 때문이니, 안으로 한량없는 좋은 해탈을 닦고 생기고 사라짐을 관찰합니다."

譬如村邑近大石山。不斷.不壞.不穿。一向厚密。假使四方吹。不能動搖.不能穿過。彼無學者亦復如是。眼常識色。乃至 意常識法。不能妨心解脫.慧解脫。意堅住故。內修無量善解脫。觀察生滅

그 때 이십억이가 거듭 게송으로 말하였다.
爾時。二十億耳重說偈言


 心解脫  無脫亦然
 遠離心解脫  貪愛永無餘
 諸取心解脫  及不忘念
 曉了入處  於彼心解脫
 彼心解脫者  比丘
 所作已作  更不作所作
 猶如大石山  四風不能動
 色聲香味觸  及法之好惡
 六入處常對  不能其心
 心常堅固  諦觀法生滅 
 

 

존자 이십억이가 이 법을 말하였을 때 스승은 마음으로 기뻐하셨고, 많이 들어 아는 모든 범행자들도 존자 이십억이의 말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그 때 존자 이십억이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존자 이십억이가 떠나가고 그리 오래지 않아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잘 해탈한 사람은 마땅히 이와 같이 확실하게 말해야 한다.
저 이십억이가 지혜로써 분명히 말하며,
제 자신을 추켜세우지도 않고
또한 남을 낮추지도 않으며,
바르게 그 이치를 말하듯이

마땅히 이 사람처럼 분명하게 말해야 하느니라. 

그것은 증상만을 가진 자가 그 이치도 얻지 못했으면서 스스로 사람을 초월한 법을 얻었다고 자랑하여 스스로 손해 보는 것과는 같지 않느니라."

尊者二十億耳說是法時。大師心悅。諸多聞梵行者聞尊者二十億耳所說。皆大歡喜。
爾時。尊者二十億耳聞佛說法。歡喜隨喜。作禮而去

爾時。世尊知二十億耳去不久。告諸比丘。
善心解脫者。應如是記說。如二十億耳以智記說。亦不自舉。亦不下他。正說其義。
非如增上者。不得其。而自稱歎得過人法。自取損減

 

[출처] 254. 이십억이경(二十億耳經) 精進太急 增其掉悔 精進太緩 令人懈怠|작성자 명상

 

 

   한문참조
https://blog.naver.com/asanga_zavi/10013734209

 

 

 

cafe.daum.net/younamsabul/qFhc/55?q=%E5%84%84%E8%80%B3%E7%B6%93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lpul1010&logNo=221236820575

 

• 불교에서는 윤회의 바다에서 생사가 거듭되는 것을 거센 흐름[暴流]에 비유합니다. 반면에 열반은 그러한 거듭되는 윤회가 끝나 파도가 마치지 않는 해안을 뜻합니다.


• 주석서에 따르면, 존재를 존재의 영역에 가라앉게 하고 보다 높은 정신 상태나 열반으로 향하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거센 흐름이라고 비유하는데, 여기에는 네 가지 폭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 그 첫 번째가 감각적 욕망의 폭류[欲流]입니다. 이는 오감을 통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집착을 말합니다. 그 두 번째가 색계와 무색계에 대한 집착이라고 부르는 존재의 폭류[有流]입니다. 그 세 번째가 선(禪)을 갈망하는 상견(常見)과 함께 하는 욕망과 62가지 견해가 견해의 폭류[見流]입니다. 그 네 번째가 무명의 폭류[無明流]인데, 이는 사성제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번뇌라 부르기도 하고 속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주석서에 따르면, 본경에서 ‘멈추지 않고’라 함은 오염원 등 때문에 머무르지 않거나 가라앉지 않는다는 뜻이고,
 ‘아등바등하지 않고’라 함은 애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생들의 삶이란 때로는 멈추고 애쓰는 것이 필요한데, 세존께서는 본경에서 양(兩) 극단을 버리고 중도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세존께서는 번뇌(오염원) 때문에 머물러서도 안 되고, 조건적인 발생이나 의도적 형성에 매이지 않도록 애써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 그런 취지에서 주석서에서는 일곱 개의 쌍(雙)으로서 세존의 교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 번뇌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조건적 발생과 의도적 형성 때문에 애쓰게 되고 휩쓸리게 된다.
② 갈애와 사견(邪見)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나머지 오염원들과 업(業) 형성력 때문에 애쓰게 되고 휩쓸리게 된다. 
③ 갈애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견해(=邪見) 때문에 애쓰고 휩쓸리게 된다. 
④ 상견(常見)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단견(斷見) 때문에 애쓰고 휩쓸리게 된다. 
(여기서 상견이라 함은 자기 원인설에 바탕을 둔 인과의 동일성에 근거하여 ‘모든 것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영원주의의 입장을 뜻하고, 단견이라 함은 타자 원인설에 바탕을 둔 인과의 차별성에 근거하여 ‘모든 것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 입장을 뜻합니다.) 
⑤ 게으름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들뜸 때문에 애쓰고 휩쓸리게 된다. ⑥ 쾌락의 탐닉에 몰두함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자기학대에 몰두함 때문에 애쓰고 휩쓸리게 된다. ⑦ 모든 해로운 업(業) 형성 때문에 머물고 가라앉게 되고, 모든 세간적인 유익한 업(業) 형성 때문에 애쓰고 휩쓸리게 된다.”라고…


• 세존께서는

마음이 머무는 곳이요,
천착하는 곳이요, 
잠재하는 곳으로서 

갈애와 사견을 으뜸으로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서 갈애라 함은 대상을 좋아해서 생기는 것을 뜻하고, 
사견은 대상을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잘못 알아서 생기는 것을 뜻합니다. 

갈애 때문에 마음은 대상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사견 때문에 마음은 대상을 거머쥐기 위해 애쓰고 휩쓸리게 됩니다. 

이 세상을 조건 지어진 것,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연기관입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란 연기법의 다른 표현입니다. 세존께서 연기를 깨달았기 때문에 폭류를 건너 피안에 이르셨습니다. 연기에 사무치면 존재의 공성(空性)을 알고 보게 되어  경계에 끌려 다니지 않고 휘둘리지 않아서 머물고 휩쓸리지 않은 마음의 평화가 저절로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