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 !/나누기 :

[하심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는 눈 : 걷어 내야만 하는 이면에

GraU 2015. 1. 14. 00:04

 

http://cafe.daum.net/lover3000/A16w/8178   



  In The Arms Of The Angel  / Sarah Mclachlan

 

 

 

 

 

 

 

사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항상 천사가 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지 잠시동안만 반짝이는 이유로, 그것을 다른 이와 나누기 어려운 것 뿐이지요.

 

그 이전에

그것을 이렇게 여기기 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이고,

이렇게 여기는 것은 곧 자기가 '짓는(作)'1 것이라는 앎이

아직 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 이라 말하면서 그 곳으로 한걸음

내딛지 못하는 자신을 보는 거기.

 

 

 

.

 

때때로,

 

 

흐르는 구름 사이로 비추는 눈부신 햇살에서 , 이런 글귀로 설명하기 힘든 순간의 영상이 주는 '장엄' 속에서

 

바람이 전하는 파도의 푸르른 바다향기로 내 속에 일어나는 살아있다는 느낌 속에서,

 

때로는

무구한 눈망울과 그 잔망스런 어린 빛에서

 

천상의 소리처럼 들리기 까지 하는 노래 목소리에서

 

 

 

또 그러한 것들의 반대편에

 

 

행하지 못해 얻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로 눈물로 밤을 새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서

 

한껏 현재라는 흥에 취해 과거를 내려다 보며  놓쳐 버린 많은 것들에 대해 한 생각 떠올려, 짙은 그리움 되삼키는 순간에서

 

몸이 그리하는 줄 모르고 딸려가던 욕구의 해소 끝에서 밀려드는 소외감 속에서

 

또는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던 자리에서  의도치 않게, 

나의 심장을 멎게 하는 '의미의 자락' 하나를 본 듯 할 때,

 

 

 

밝은 것이건 어두운 것이건

모든 '곳'에서, 모든 때에서

 

우리는 신성2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나누어3 '공고히'하는 작업을 아무도 하지 않는 탓에

단지 혼자만의 것이 되어버린 이유로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

 

 

 

 

 

 

악마가 흔히 신의 증거라고 하는 어리석지만

'의지처'를 찾는 마음 가득한 웅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어떤 인간이건 항상  이 신성을,  순수를 찾아 헤맵니다.

차라리 단념하고서, 스스로를 지극히 '세속'적이라고 세뇌시키며 세상을 살아가는 고지식한 수전노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이미 이 자체로 완벽하다는 말의 의미는 먼 곳에 있지 않음이

어렴풋이 보이더라도

다른 이에게 그 '동의'를 구하게 됨은

아직 온전히 '혼자'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것은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  움직일수 없는 진리로서

결국은 자기가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의 극명한 반증이기도 하리라 봅니다.

 

 

 

 

 

소외와 소통은 단순히 사회학적 문제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그 근간이 어디서 부터 출발하는지에 대한 총체적, 통합적, 통찰적인 접근 없이는

인류 이전의 지성체가 그러하였을 것이라 여겨지듯이 다시 수레바퀴는 제자리로 갈 뿐.

스스로,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것일 뿐.

 

 

높임말로 쓰니까 이상하쟈나.

 

 

  1. cf.대승육정참회, 짓는 것과 업, 죄는 관계없다. 아니 '생기지 않는다.' [본문으로]
  2. cf. 엄숙주의. 장엄=신성이라 여기던 사고의 근원? [본문으로]
  3. cf. 성유심문, 입으로 나누려하는 것들. 이런 것은 신앙인 외의 일반적 수준에서 나눔이 일어나지 않음은 왜 인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