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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 도와주기 : 되돌아 확인하려면, 차라리 지나쳐야

GraU 2014. 12. 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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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 고통에서 나오려고 노력하는 자가 있다면,

"힘들다"로 대표되는,

많은 경우 니만 힘드나 나도 힘들다로 받아쳐지는.

그리하여,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라도 꺼낼 용기조차 꺾어버리는 그런.

 

 

어떻게 하여야 할까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들어주기, 가만히 옆에 머물러 있어주기(굳이 뭘 하려고도 말고, 아예 멀리 가지도 말고)", cf. 트라우마 극복의 4가지 단계. 등의 방법론을 지칭,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futher. 트라우마 부정, 아들러

 

 

 

보통의 물음이다. 실제 소통하고 싶은 의지가 내 안에서 나올 때.

다른 글에서 방법론을 묻게 되는 메커니즘.

 

 

 

 

 

 

 

대개의 경우 아무리 가까이에 있던 가족이라도

 

그 이가 고통의 어려운 상황에 있슴을 느끼기도 어렵고

차라리 모자란 것으로 치부해버리게 되기가 일수이다.

간단히 표현되기는 어려우나,

또, 많은 경우, 그 어려움의 발로는 그 가까이 있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더 알아채기 어렵다. 다시말해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모자란 것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에 그 이가 어려운 삶을 살게 되버리는 그런 구도. 1

 

"들어주기" 방법론으로서 쉬 이해되는 이 부분이,

실제 앞의 전술한 몇글자의 보임과는 다르게 너무도 깊고 어지러이 얽혀 있슴을 스스로 이해하면, 그 출발이 왜 진정성에서 기인해야하는지 알 수 있다. 섣불리 남을 도와주는 일2은, 그것이 사역이라 여기건, 보시라 여겨 착하고 선한 쪽으로 소위 '수행'한다손 치더라도, 그는 오로지 '이기'적인 목적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진의로는 주인공을 위하는 쪽이 아닌 것이다. "착하다, 선하다"라는 사회적, 문화적 기준, 즉 외부경계의 상에 끌려가는 것일 뿐. 실제 금강경이나 불경들에서 이야기 하는 선재선재 의 개념은 이 "착하다"는 사회통념보다 '진의에 가깝다' 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이 고통에서 헤메는 '친구'를 도와주고픈  최초 마음먹기에 있어, "나도 힘들다"의 마음은 차라리 솔직하게 그 의지함을 마다하여 차라리 타인에게라도 말할 기회를 주는 차선의 방법이리라. 대개의 경우, 자기의 판 에서 판단하고, 니는 그렇다 그래서 이렇다 내지는 나는 이렇다 등의 "비교"로서 그 마음을 표현한다. 실제 경험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말하고 있던 와중에도, 어? 내가 하려는 말은 이게 아닌데? 하던 적이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꽤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느끼고 있다면, 자신의 그 반대편에 있을 때로 비약하여도 그 내어놓음의 한계에 대해 인지 가능할 것이다.

 

제대로 된 관찰은 그 다음. 진정한 마음이 가는 길이다. 방법론 부터 찾기 시작하는 모든 문제 해결의 메커니즘은 근본적으로 되풀이 되는 피드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피드백은 제대로 된 '모니터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실패의 그 것.

대상을 제대로 보는 것은 모든 세상 일에서도 근본이 됨은 이런 이유다.

 

고통에 있는 자의 앞뒤 전후를 제대로 보아야 그 다음 단계를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자기 자신의 구도로 바꾸어 보아도 마찬가지가 된다.

 

 

 

 

그 시작에 있어서의 얽힘.

이는 차치하고라도.

 

 

 

심연의 어렴풋한 빛줄기에 의지해

밝은 곳으로 나오려고 노력하는 것을 공감해 준 적 있는가.

 

늘 그렇듯이 또 그렇군

 

항상 옆에 있어 매일 보는 이라 할지라도

바뀐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하지 않고 보이는 부분에만 의지해 그를 판단해 버린다.

 

그의 생각이나 의지가 아닌 행동이 어떤지를 살필 수 밖에 없는, 밖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받아들임의 한계. 어려운 쪽에 있는 이에게는 이 지점에서 너무도 중요하다. 자신의 현재를 있게한 지점 자체를 이겨내야하는.

 

혹은 스스로 그 이보다 낫다고, 발생할 또는 야기된 상황에 대해 다 파악할 수 있다고 여기고, 무엇이 바뀌었는지 소위 '간'을 본다. 실제 아둥바둥 바닥에서 올라오려고 하는 손길을 더 힘들게 하는 지점 또한 바로 여기가 된다.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앞서 그 사람이 겪어야 했던 수 많은 경험들과 그 순응과 반응, 그리고 적응의 여부 등의 복잡한 결과로 네거티브한 자리에 있는 이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길 바란다. 절대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는 것은 앞서 글들에서처럼 순수에로의 본능이다. 방향성. 희구. 의지처를 상정하는 일은 온전히 자신이 겪어온 것들에서 기인하고, 이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적정'의 상태에 있지 못하여 불안하고, 불편한 현 상황에 대해 굳이 설명하여야 하며, 제대로 된 전달:'소통의 딜레마'3를 해결한다하더라도, 그 대상이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상황이어야 한다. 최소한 진심으로 하는 것 처럼 내가 느껴야 한다. 

 

진심이 아닌 지점은 언제나 읽힌다. 눈밝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굳이 예를 들자면, 지각, 인지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은 유아기에서 조차 이 진의의 파악으로 인한 기억은 무의식에 깊이 뿌리 박힌다. 생후 1년의 기간이 그 아이의 성향에 비례하여, 세상이 어떻다 하는 그의 인생 전부를 좌우하게 됨은, 그 근저가 이렇게 뿌리 깊음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이 지점은 누구나 조금씩 느끼고,

그것이 '세상' 이 된다.  다 그러고 있으니까.

모두 진심으로 서로를 대하지 않으니까.

진심을 보였다가는 되려 내가 해를 입으니까.

 

얼마나 슬픈 현실인지 생각해 보는 이는  소위 비합리적 인간인게지. 합리적 인간은 그 사건을 환경으로 치환시켜, 나를 그 판위에 그 싸움터위의 등장인물로 환원시켜 의미치환하는데 익숙하니까.4 그것이 실제 합리적인 자세라 여기니까. 합리에서 실용이 나온 연원과 맥락 상 한 줄기.

 

 

 

 

실제 한 사람의 속에 일어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체 들어내서 보여주기는 불가능 하다. 그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진의'가 전달되는 양상에서의 불완전함 외 에, 자신이 생각하는 지금 세상을 보는 전체의 구도를 스스로 정리해 놓기도 어렵고, 그 것을 순서에 맞춰 꺼내 놓아 '전시' 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는 전체적으로 참으로 진실한 쪽으로 갈 수 밖에 없으며, 개개인의 욕구보다 차라리 진의에 가깝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이런 마음 속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것과 비교해 보길 즐긴다. 근본적인 마음자리의 분별심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항상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자신이 있는 그 곳을 파악하려는 본능. 그 연후 자신이 안전하다고 여겨져야, 공감이 시작된다. 보통의 경우 이는 시간적 수순으로 정해진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이 헤아림이 보다 근원적인 수준에서 일어나는 이가 있다. 이들은 상처를 쉬 받을 수 밖에 없다.5

 

 

제대로 된 표현에 익숙하지 않을 때는 차라리 입을 닫는 것이 낫다.

같은 상황 양태에 대한 나의 생각의 전달로서

'섬세하다, 세심하다' 라는 말에는 사랑이 담겨져 있으며, '쓸데없는' 것까지, '쪼잔하게' 에는 절절한 비시임이 묻어난다. 세상을 받아들임이 다른 줄을 모르면 서로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치인 것.

 

 

배려.

 

진실로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그 시작하기에

그 행에

그 되돌아 봄에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어렵더라도,

 

줘 놓고 

어느 정도 인지

 

 

간 보지 마시기를

 

 

 

간 본다는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하여, 방편을 빌어 반응을 살피려 하는 것으로

되려 자신의 위계를 내어 보이는 자리가 될 뿐.

 

가까운 피붙이에게서 자신을 대하는 태도, 즉 행동의 변화를 느끼지 못해

자기 문법대로 움직이는 경우에로 의도적으로 몰아넣음이

 

쉬 읽히는 사람에게는 극약보다 더한 일임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1. cf. stigma effect [본문으로]
  2. 여러스펙트럼 중의 일부분의 경우임은 첨언에 필요가 없겠지만, 혹여 부정적으로 들리는 뉘앙스가 올라온다면, 충분히 깊게 생각하여 자기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본문으로]
  3. cf. 시물라크르, 어지러이 존재함을 동의,인정하는. 소위 니체의 우상의 황혼, 좁혀보면, 심볼, 표상의 의미구축체계 다시보기. [본문으로]
  4. 실제 융의 말대로, 페르소나를 바꾸어 쓰는데 익숙한 것이 합리적 인간이다. 환경을 빠르게 파악하고 인정하는 것이 생명체로서 가장 합리적인 방향이리라는 진화생물학의 관점을 빌지 않더라도. [본문으로]
  5. 근본적으로 사람이 모두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슴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실제 소통 상 자신의 표현에 그 것이 묻어 있지 못함은 '깨닫지' 못한 것. 중요한 것은 글자가 아니라, 두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