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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의 단초] 쳐다보아 아는 그 곳에서, 스스로.

GraU 2014. 11. 20. 10:52

 

 

 

 

일을 사랑하지 않고는 리더가 될 수 없다

 

일반 직원은 하루 8시간만 일하면 충분하다.

관리자는 하루 16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

잠자는 시간 외엔 전부 일에 쏟아 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장은 하루 2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

잠잘 때도 일하는 꿈만 꿔야 한다.

쉽게 성공하길 바라는 것은 곧
성공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 산요전기 창업회장 이우에 가오루

 

촌철활인 : 한치의 혀로 사람을 살린다!

 

일은 인풋이 아니라 아웃풋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나 창의력,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라 해서
근면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리더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일본 재벌 쓰쓰미 야스지로는
“다른 사람이 내게 머리를 숙이게 하려면
남들보다 적어도 3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회"라고 부르는 현재의 판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들.

글을 쓴 자의

읽는 자의

 

상호 동의 되는 지점.

 

개인적인 수준에서

성공의 의미를 어떻게 세워두느냐와

성공을 향해 갈 동기가 충만한지 여부와

그 성취를 위해 어떠한 대가를 치를지의 정도에 대한 생각 등

 

많은 부분에 대해 전제가 깔려져야 '현재'에 대해 동의 할 수 있다.

표피적인, 의식적인, 분별의 수준이 아닌 앞서 전술한 '원래 그러한 것' '당연' 이라는 무의식적 받아들임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이 "동의"의 문제에 대해

예전의 경우처럼, '사회에의 적응' 여부로, 그 정도의 차이로만 이해하기에는 곤란한 지금이다.

겪어 온 많은 사람들과 이제 막 이 판에 올라선 이들의 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

하던 대로 하던 것을 바꾸어야 되는 지점.

 

그간 이루어지던 "동의"의 틀을 바꾸어야하는.

 

예전에는 안 이랬는데~

 

'탓'을 하다, 결국에는.

 

이유를 찾아서 현재의 사회 현상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고, 어느정도 효과적으로 하고 있는 듯이 보여도, 실제적 '앎'의 기준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의 제시일 뿐.

 

근본적으로 자기를 바꾸는 문제와 다르지 않는 이 부분에 있어서의 앞 세대와 뒤 따르는 세대간에 커져가는 괴리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의 문제 인 듯 보인다.

 

 

차이

범주

순서

 

 

분별

무리짓기

 

 

본능적으로 당연히 이루어지는 ?

= 존재의 유지(현전에의 욕망)을 위해 자연스럽게(실재하는 내 세포가 그리하는) 만들어가는 (내 의지로 그리보고, 그에 맞게 움직이는 - 타자의 탓, 환경의 탓으로 내가 그리해야만 한다가 아닌)

 

인간이 인간만의 '이성'이 존재하고, 그것이 우리를 대별하여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여기던 시대를 지나 특별할 것 없는 것임을 '알게' 된 과학의 시대에서도

내가 있는

내가 있다고 여기는 이 순간

만들어지는 공간적, 시간적인 엮임의 공고한 의식 속의 시스템은

내가 있게되는 현재를 여기를

파악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수단임을

명쾌 하게 '과학의 장점'으로 설명해 내지 '않고' 있다.

 

 

억눌림과 해방의 큰 수레바퀴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사람들이 원래 자리로 향하게 되는 시기에

이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해 질 수 밖에 없다.

 

강요의 코드를 느끼건 느끼지 않건 그 힘으로 소위 '질서' 즉 순서를 유지할 수 있을 때는 문제 없지만, 그 코드가 통하지 않게 되는 때에는 소위 통제 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통제에의 환상을 알아차려야 문제의 해결은 가능하다.

 

 

 

일에 있어서의 상호 간의 동의 지점이 왜 필요한가

나는 처음에 안그랬다.

사회란 이런 것이다. 따르라.

 

이 구도로 보는

 

"스스로 하는 것의 힘"

원래의 진의를 벋아날 수 밖에 없는.

 

 

 

 

 

이 현상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문제의 해결이 걸려 있다.

좀더 정확하게는 이 '현상' 이라는 것을 상정시켜 무엇을 말하려는지 볼려고 하는 첫번째.

니가 뭔데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노 하는 그 마음자리와 다르지 않는 두번째,

그리고 결국은 내가 이러고 있었구나를 보게되는 세번째.

 

 

사회의 현재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리고 그 자리에 용감히 들어갈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면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자신을 바꾸는 그 큰 일의  구도와 마찬가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