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도 '스승은 삶의 전부이다' 라고 하였다는데,
그가 남긴 여러 글들로 보아, '사람'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며,
'선'한 편만을 든 것도 아님을 알면,
흔히 말하는 "배움"의 단계 - 누군가에게서 배운다 : 내가 알아가는 것이 아닌, 피동적으로 받는다 - 에서 보다,
확인 과 쉬프트 단계에서의 '선지식'의 역할, 그 촉매로서의 역할에 더 방점을 두고 싶은.
http://cafe.daum.net/cigong2500/A29i/428
백운수단 화상이 말했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반드시 사람을 만나야 한다.
만약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꼬리가 없어 보잘 것 없는 원숭이와 같아서
재주를 보이려고 나서면 사람들이 곧 비웃는다.
이 도리를 깊이 믿는 사람은 만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
참으로 불쌍하고 참으로 불쌍하도다.”
悟了 須 遇1人 始得
若不遇人 祗 是 一介 無尾巴 猢猻 相似 才弄 出 人便 笑
深信此道者 萬中 無一 誠可憐憫 誠可憐憫
직지심경 278
http://www.jeolgutong.kr/bbs/index.php?document_srl=25194&mid=jikgi
아무리 훌륭한 스승이라도 내가 그리 여기지 않으면, 그렇게 보려고 하지 않으면?
= 능히 내가 알아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2
이는 내가 마음으로 그리고 있는 '스승자리'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기댐, 의지 하는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면 다르게 읽힌다.
살피는 마음, 비퇴, 하심 ... 이름은 다양하지만, 仁, 悲 등의 정형화된 '법' 앞에서야 고개가 숙여지는 거기.
내가 이만큼 알고 있으니 한번 확인해 볼까 하는 자리.
절에 있을 때, 공부하는 스님 한 분이 경찰차에 실려 곤드레만드레가 된 채 방문 아닌 방문을 한 적 있다.
법명도 모르고, 지금 생각하면, 풍기던 술냄새가 코를 때리는 그 순간부터, 그저 나쁘게 낮춰보았던 그때였지만, 그리고 당시 우리 땡중이 발로 밟아버릴 정도로 크게 노하여 꾸짖었던 무서운 모습을 보았기에 더욱 그리 여겼던 듯한데.
다만 웃방에 보내 씻기고 하루 쉬게 해놓고,
공양간 마루에 앉아 다른 얼굴로, '자기가 맞는 줄 아는, 공부하는 이에게 들이닥치는 광증'이라 일러 주시며, 그이 앞에서는 보이지 않던 측은함을 나에게 보이신 것이 기억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 분이 왜 그러는지는, 즉 파계에 해당할 정도의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을 뿐이지, 왜 그리했는지는 그 당시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미치다니? 갸우뚱? 그 정도? 사실 그 때, 기도하는 사람 중에 제일 연장자 였던 나는, 애들을 단속시키기에 더 바빴던, 행여나 싶은 마음에. 내용도 모르고서.
'
이 기대하는 마음 을 그대로 두고 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이야기 해주지 않는 '선지식'은
나에게 고통을 줄 뿐이라는 것.
수행 일로 에 있는 사람도 고통이 (항상? )있으며,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일반 사람보다 '불완전하다'는 의미의 다양한 양상 가운데 한자락에 불과한.
내가 안다.
맞다 하는 현재.
오로지 혼자 일 수 없는 것이 그 증거.
관계 맺고자 하는 욕망.
그러나.
진의.
제대로 된. 으로의 지향?
부족한 듯한 느낌?
충만함이 있을 수 있는건가?
.
.
.
實際의 맥락? 그 향함에서
스승의 역할은 무엇일까.
굳이 생각(기억)나는 건
절실함?
낡은 것에서 찾고 있으니 이건 아닌가.
http://blog.daum.net/samhang61/17055998 : 白雲守端
牛來山中 水足草足
牛出山去 東觸西觸
http://cafe.daum.net/cigong2500/A1jV/850 : 살생, 식육
仁 無亂 志 慈 最可 行
愍 傷 衆生 此福 無量
假令 盡 壽命 懃事 天下人 象馬以詞天
不如 行 一慈
법구경 자인품 중
'不害之德'
http://cafe.daum.net/yumhwasil/LLCR/12
rel. 앙굴리마라 의 한역 이름이 不害 ? 찾아볼 것.
cf.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느끼지 (겪지) 못하는 '고마움' 의 존재.
눈에 보이는 것, 겪은 것 에 의지하는 나의 현전.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고는 어려움이 없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다.
어제 오늘 지금 이 순간 으로 환원시켜서.
rel. 가보지 않은 길, '사건화' 됨으로서 없어져 버린? 가능성.
further
+ 다른 사람 , 외물, 대상 은 보편화 시키려 하고, 나 는 특수화 시켜버리는 인식의 기전.
'범사에 감사하라'
.
.
.
한걸음.
왜 자꾸 한걸음이지?
어딜 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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