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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마음의 사생활] 마음은 몸을 따르며, 몸은 마음의 집이다

GraU 2016. 2. 6. 08:01

 

 

누가 그랬더라.

마음은 물질이라고.

 

 

마음이 몸을 따른다는 말은

오래된 경구들을 인용할 때 처럼특히 마음가짐을 똑바로 해야 행동이 바로 나온다는 식으로,

또는 선후 구분의 순서로 받아들여, 마음이 우선이니, 몸이 우선이니 하는 관점으로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짧고 간단한 표현일수록 읽기 어렵다.

읽는 사람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자리에서 "단순명료하게 표현하라"  식의  힘의 논리가 왜,

일상적 사고의 수준이나, '사생활' 소위 알아차림, 나를 바라봄 수준에서도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사는 것 전체가 '일'은 아니다.

일을 보는, 하는, 겪는, 처리하는 인지방식으로

삶 전체를 보아서는 안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대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http://blog.naver.com/personnidea/220617514890

마음의 사생활 : 책 소개글 중에서

 

 

 

 

 

 

 

 

 

 

 



 

 

 

나에 대한 나의 오해

 

“의지가 없어서 안 되는 거야”,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감정에 휘둘리는 게 문제야”……. 심리에 관한 아주 흔한 격려, 응원, 책망의 말들이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전부 함정이 숨어 있다.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이미 의지를 다 써버려서 남은 의지가 없는 것일 수 있다. 의지력은 닳아 없어지는 유한자원이다. 흔히 “체력이 고갈됐지만 정신력으로 승부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의지력은 정신이 아니라 몸에서 나온다. 의지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닦달하지만 인간은 원래 긍정적 생각보다 부정적 생각이 더 많이 들도록 세팅되어 있다. 영어에서 ‘mind’는 마음이나 정신을 뜻하지만, ‘꺼린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의 마음은 꺼림칙한 것, 피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데 더 익숙하다. 이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발달한 마음의 진화 결과다. 불쾌하거나 불순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은, 뇌가 쉬지 않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특정 생각은 마음속에서 보통 5초 정도 지속되는데, 하루 16시간을 깨어 있다고 하면 약 4,000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방대한 양을 생각하면 이상한 생각 몇 가지는 정상적인 수준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고, 감정은 컨트롤해야 한다고 하지만, 감정은 생각보다 합리적이다. 불안은 위험을 빠르게 알려주기 위한 경고장치고, 공포는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우울은 ‘지치고 힘들었으니 쉬어야 한다’는 신호다. 분노는 정체성, 존엄과 연관 있다. ‘나를 지켜야 한다’는 명령이기 때문에 조절하기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감정은 이성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생존에 알맞은 최적의 길을 알려준다. 감정이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지 못한다면 그건 감정이 학대받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Let it be”, 나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우리는 직장에서, 대인관계에서 ‘쿨’하게 행동하고 싶어 한다. 자잘한 것에 매여서 안절부절못하거나 지질하게 집착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정작 본인에게 쿨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문제는 없는 건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끊임없이 신경 쓴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안할수록 자신의 약한 부분을 찾아서 고치고, 잠재력을 찾아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문제는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고 쉽게 우울해진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도 몇 분 동안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개미가 기어가거나 그 아래로 맥박이 뛰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특정한 무엇에 과도하게 집중하면, 부정적인 쪽으로 초점이 모인다. 필요한 것은 나와 거리를 두고 그저 ‘지켜보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취업 자소서에 흔히 등장하는 ‘완벽주의’도 위험하다. 완벽하게 하려고 자신을 몰아붙일수록 에너지만 낭비하고 과부화로 삐걱대면서 실수만 많아진다. 완벽주의자는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발전적인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완벽에 집착하는 사람은 실수하면 인정받지 못하고 버림받을 거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완벽주의는 ‘결정 장애’의 원인이기도 하다. 모든 위험 요소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으면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선택을 회피한다. 완벽에 대한 집착은 의욕을 꺾고, 실수를 은폐하려는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게 만든다.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아”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풀어서 없애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풀 수 있는 게 아니라 품고 가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데, 그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풀겠다고 매달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술이나 잠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보겠다는 몸부림은 스트레스로 인한 누적된 불쾌감을 풀어보겠다는 시도인데, 이 역시 잠시의 착각 효과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풀어보겠다고 악을 쓰는 것보다는, 견디는 힘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해소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

 

‘몸’에 집중하라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견디는 힘을 기르면서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견디는 힘은 어떻게 기를까? 견디는 힘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몸으로 즐거운 활동을 체험하는 것이 스트레스 저항력을 길러준다. 생활이 건강해져야 뇌도 튼튼해진다.

우울증을 낫게 하는 것도 몸이다. 우울증을 불러일으키는 인지구조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려울뿐더러 효과도 별로 없다. 하지만 행동을 활성화시키면 우울한 기분이 나아진다. 우울증이 심할수록 행동 활성화가 효과적이라고 한다. 우울한 기분을 뿌리 뽑을 수는 없지만, 몸을 움직이고 즐거운 경험에 몰입하면 부정적인 생각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터치의 힘은 논리나 이성보다 강하다. 터치로 하는 의사소통은 말 이상으로 정확하고, 운동 경기의 승률을 높여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애착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시켜 호감도를 높여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사람과의 친밀함을 통해 안정을 되찾으려고 한다. 특히 여자는 돌보기-친구 되기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머리로는 밉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터치를 하면 옥시토신이 나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래서 부부싸움 한 부부에게 “미워도 그냥 손잡고 주무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며 산다. 자기가 믿고 싶어 하는 것에 맞추어 자신을 속인다. 정당성만 확보되면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한다. 정당한 명분이 없는 상황이라면, 거짓을 진실로 믿어버리기도 한다. 바보처럼 보이는 것보다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당당해지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본문 87쪽

 

‘나는 이러이러하고, 세상은 저러저러하다’라는 확신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고통이 따라온다. ‘나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좋은 사람이야’와 같이 자기를 규정하면 ‘좋다’, ‘나쁘다’라는 판단이 따라온다. 이렇게 되면 개념화된 자기와 일치하는 것은 좋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내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일을 겪어도 ‘나는 착해야 해, 나는 친절해야 해’라는 자기개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더 쥐어짜고 고통스럽게 만들게 된다.
-본문 127쪽

 

사람은 생각한 뒤 변하는 것이 아니라, 느낀 뒤에 변한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을 때는 생각보다 느낌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누군가와 적대적인 관계라면 상대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말에 맞추어 자신의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 부정적 감정이 지배적이면 이성, 논리, 분석, 판단에 따른 옳은 말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본문 147쪽

 

완벽주의자는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두려워한다. 완벽에 집착하는 사람은 ‘실수하면 인정받지 못해. 다른 사람이 나를 거부할 거야’라는 왜곡된 믿음을 품은 경우가 많다. 한 번 실수하면 전부를 망친다는 극단적 생각에 젖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실수할 만한 상황은 회피하고 모험과 도전은 하지 않는다. 실수에 대한 공포 때문에 오히려 실수가 많아진다. 완벽주의에 집착하는 사람은 실수를 은폐하려는 유혹에도 쉽게 넘어간다. 이렇게 보면 완벽주의는 완벽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파괴적인 칼날을 휘두를 뿐이다.
-본문 156쪽

 

우리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은 복잡한 감정을 함께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희망 속에서도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다. ‘마음이 심란해서’ 괴롭기도 하지만, 마음이 단순하게 한곳으로만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감정이 복잡한 것은 뇌의 자동조절장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다는 증거다.
-본문 188쪽

 

사회가 불안하고 외부에 명백한 지침이 없을수록, 감정의 고유한 기능이 더 중요해진다. 사회가 복잡해져서 정보량이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으면, 이성에 기반을 둔 판단 기능은 제 역할을 못하거나, 오히려 부정확한 결론을 내놓게 된다.
-본문 202쪽

 

스트레스는 믿음이나 인식과 관련 있기 때문에, 풀어서 없앤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끼는 것은, 그 상황 자체가‘자신의 통제 권한 밖에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인데,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극복할 수 없는 것을 극복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사람을 괴롭게 만들 뿐이다.
-본문 244쪽

 

우울한 기분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거기서 벗어나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고 한다. 마음이 괴로운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우울’이라는 감정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만 멈춤’이라는 감정 신호가 우울이다. 우울해지면 혼자 있고 싶어지는 것도, 고통스러운 현실의 문제에서 자신을 떨어뜨려 놓으려는 마음 작용이다. 이것을 행동 셧 다운 가설(behavioral shutdown hypotheis)이라고 한다. 우울증은 “지치고 힘들었으니 좀 쉬어야 돼”라는 신호다. 위험에 처하거나, 보상보다 에너지 소비가 많다고 판단되면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동 기능이 발동한다. 우울함을 느끼는 것은 이런 자기 보호 기능이 작동한다는 뜻이다.
-본문 3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