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 !/나누기 :

원래 없던 것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

GraU 2020. 1. 18. 03:38





https://www.youtube.com/watch?v=K3Qzzggn--s&list=RDK3Qzzggn--s&start_radio=1&t=37






道流야 

儞欲得作佛인댄 莫隨萬物하라 

心 生   種種法 生 하고   心滅  種種法 滅 이라 


一心不生하면 萬法無咎니라 

世與出世에   無佛無法하야 

亦不現前하며 亦不曾失이니라



設有者라도 皆是 名言章句라 

接引小兒하는 施設藥病이요 

表顯名句니 且名句不自名句라 


還是儞  目前 昭昭靈靈 하야 

覺聞知照燭底가 一切名句니라


- 임제록 96



해석 - 수미산 메일 :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아라. 

마음이 생겨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 


한 마음이 생겨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이건 출세간이건 부처도 없고 법도 없다. 

나타난 적도 없고 일찍이 잃어버린 일도 없다.”



강의 ;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고 자기 자신을 지키라. 어떤 상황에서도 종이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 주인 노릇만 제대로 하면 그것이 곧 부처다. 상황에 끄달리지 말고 당당하게 나 자신으로 있으라. 이 세상의 주인은 바로 나다. 나 외에 또 다른 내가 있을 수 있겠는가? 내 마음 하나에 온갖 세상이 다 살아나고 내 마음 하나에 온갖 세상이 다 없어진다. 세상을 내 마음대로 만들고 부순다. 이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있겠는가? 이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있겠는가? 울고 웃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이다. 누가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이끌려 다니는가? 수처작주(隨處作主)하라. 나 외에 아무 것도 없다. 부처도 없고 법도 없다.



“설혹 부처와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명칭과 말과 문장일 뿐이다. 

어린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병에 따라 쓰이는 약이다. 

표현하는 이름과 문구일 뿐이다. 그런대 이름과 문구도 스스로 이름과 문구라고 하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 눈앞에서 아주 밝고 분명하게 느끼고 듣고 알며 비춰보는 그 사람이 

모든 이름과 문구를 만들어 두었다.”


강의 ; 경전어구란 우는 아이를 달래는 방편이다. 어린아이가 울 때 어머니는 밖에 호랑이가 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한다. 경전상에 나타난 무수한 부처님과 보살들 역시 울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달래는 방편의 말이다. 병에 따라 약을 베푸는 일이다. 그래서 임제스님은 “설혹 부처와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명칭과 말과 문장일 뿐이다.”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과 보살들을 표현하는 명구는 다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지금 목전에서 소소영영하게 지각하고 듣고 알고하는 그 사람이 일체 명구들을 만들었다.







아무리 일러준다해도, 

알 수 없듯이,


누군가가 나에게 일러주기도 바라지 말라.



'스스로 한다'는 것의 의미,

자기 마음대로 읽어버리는 그 의미.



배우는 법 조차 모르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

가르침  =  비움  의 과정을  함께 하자고 해봐야 소용없듯이,

아니, 소위 가르쳐서 배우는 그자리가 가지는 의미를 

오히려 알리어 이루어야 하는 부질없슴과 같이,



단지 쓰이는 바에 의해서가 아닌,

그나마  마음의 울림이 전해지는 사람에게 건네는  손길이 

차라리

이 일에 더욱 더 나은 것과 같이. 



그리하여, 굳이 내비친 도움이

준 것이라 여기지 않게 잡도리 하는 일이,


왜 ,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내비쳤는지와

그 현전의 순간 함께하는 5가지 것들을

알아차리는 일 보다  


우선한다고 여기는  그 자리가


곧,  굳이 없애려는 그 마음이 

바로, 도둑인 것과 같은 이치.



차라리

마음이 가는 데로 

그저 스스로 움직여 가도록 내버려두고,


그것이 남을 위해 한 일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선택임을 

아니, 온전한 나의 선택이 되도록 그 자리를 다독이는 일이,


굳이 되돌아보며, 혹은 미리 걱정하여 

머뭇거리는 그 자리에서 보다  

더  한층  나아가는 일.


그 누군가가

손 내밀어 주기를 바라는 

소녀와 같은  그  자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아이의  응석과도 같은 것처럼.


적절하게

적당한 때에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야하는 자리.


그 출발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이제 더는 따지지 말자.


탓하지 말자.


아니, 차라리

이런 다독임들로, 스스로에게 건네려는 

불안하지 않은, 편안함으로 인해


그저 안주하는 이 마음의 현전을 알아차리는 것이


이제는, 그저  앎 : 문, 사  을 넘어

그저 해버리는 : 수 ,  그리하여,  

다시 편안하려는 그 자리로서  닦는 일에 묶이더라도.




그리하여, 

이제야 보이는, 


그 두 가지 자리가 

서로 다투며,


나를 묶고 있는 것임을.



그저 보이는 대로의 현전으로

떨쳐 일어나 버리면  될텐데가  아니라.



'그냥'.

그 또다른 의미.




니가 이것을 해 줘야

내가 그것을  해 주마


그저 이것을 주고도

이것에 해당하는 그것을 바라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안 바라고 해주지 뭐'

그거 자체도 곧 . 


생기게 되면, 따라 붙는 것들의 의미

.... 그냥 에의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