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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역, '금강삼매경론' 상권, 3.제목을 해석함(석제목품) 중에서

GraU 2020. 3. 5. 19:36



[문] 


정(定)이란 고요함[靜]이어야 하고, 고요하다 함은 한 경계[一境]에 머무름을 뜻하는 것인데, 어떻게 자세히 바르게 생각하고 관찰한다[審正思察]고 말할 수 있는가? 


생각하고 살피는 작용은 마땅히 심사(尋伺)44)인데, 

어떻게 정(定)을 설하면서 생각하고 살핀다고 할 수 있는가?

 

44) 심(尋)은 대강의 이치를 심구(尋求)하는 것이고, 사(伺)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밀하게 분별하고 관찰하는 정신 작용이다.

 

[답] 


만약 하나의 경계[一境]를 지키는 것을 정(定)이라고 한다면, 흐리멍덩[惛沈]한 채로 경계에 머무르는 것도 정(定)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바르게 생각하고 살피는 것을 가지고 심사(尋伺)라고 한다면, 

삿된 지혜[邪慧]로 사물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히 심사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찰(思察) 즉 생각하고 통찰한다는 말 속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삿되고 바른 것에 관계없이 말과 뜻으로 분별하는 것을 사찰(思察)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곧 심사이므로 다만 분별일 뿐이다. 


그러나 자세히 올바르게 그리고 명료하게 대상[緣境]을 아는 것에 한해서 바른 생각과 통찰이라고 한다면, 이 경우는 바르다이 정(定)의 작용[用]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심사는 아니다. 


정(定)은 분별과 무분별에 두루 통하기 때문에, 바르게 살핀다는 것을 기준으로 저 심사를 가려내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경계에 머무른다’고 하는 것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의 경계에 머물기는 하지만, 마음이 혼미하고 어두워서 자세히 살필 수 없다면 이는 흐리멍덩한 것이다. 


반대로 하나의 경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마음이 가라앉지도 않고 들뜨지도 않은 채로 바르고 자세히 관찰한다면, 이를 정(定)이라 이름할 수 있다. 


때문에 생각해서 통찰한다는 점에서 혼침과 구별된다. 


그러므로 마음이 머물러 있거나 또는 옮겨가거나 하는 특성을 가지고 마음이 정(定)에 들었다거나 산란하다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빠른 변론은 비록 빠르게 바뀌어 가지만 그 가운데 정이 있고, 느린 생각은 비록 오랫동안 경계에 머물러 있지만 사실은 산만한 것이다.





여기서 금강삼매를 바른 생각과 통찰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렇다. 


거기에는 바르다던가 바르지 못하다던가 하는 관념이 없고, 

생각이라고도 할 수 없고 생각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지만 


다만 그릇된 분별과 삿된 생각을 구분하기 위해, 

또 아무 생각도 없는 허공과는 다르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부득이 정사(正思)라고 불렀을 뿐이다. 

이상과 같이 삼매라는 이름을 간략히 해석하였다.





다음으로 간별(簡別)을 통해 삼매의 뜻을 밝히는 데 두 가지가 있다. 먼저는 여러 가지 이름의 뜻을 하나씩 구별해 보는 것이요, 다음은 여러 가지 이름의 넓은 의미와 제한된 의미를 간추려 보는 것이다.

정(定)에는 대략 여덟 가지 다른 이름이 있다.

첫 번째는 삼마혜다(三摩慧多)로서, 여기 말로는 등인(等引)이라 한다. 흐리멍덩한 것[惛沈]과 들떠 있는 것[掉擧]의 치우침으로부터 멀리 벗어났기 때문에 등(等)이라 하고, 신통 등의 여러 가지 공덕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인(引)이라고 한다. 또한 이 등인은 후회 없는 기쁨과 안락에서 끌어내 지기 때문에 등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욕계(欲界)의 정(定)과는 다르다.

두 번째는 삼마지(三摩地)로서, 여기 말로는 등지(等持)라 한다. 등의 뜻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고, 마음을 제어하고 잘 지켜서[護持] 밖으로 치달려서 흩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등지라 이름한다. 또한 선정과 지혜가 평등하여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등지라 한다. 예전에는 삼마제(三摩提)라고 했는데, 이것 또한 등지를 뜻하는 말이다.

세 번째는 삼마발제(三摩鉢提)로서, 여기 말로는 등지(等至)라 한다. 등지(等持) 가운데서 뛰어난 지위[勝位]에 이르게[至] 되기 때문에 등지(等至)라 이름한다.

네 번째는 타연나(駄演那)로서, 여기 말로는 정려(靜慮)라 한다. 고요하게 깊이 생각하기 때문이며, 흐트러진 생각을 진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선나(禪那), 혹은 지아나(持阿那)라고 했는데 이는 지방이나 습속에 따라 말이 다를 뿐 모두 정려를 가리킨 것이다.

다섯 번째는 사마타(奢摩他)로서, 여기 말로 지(止)라고 번역한다. 마음을 경계에 멈추게 하므로 지(止)라고 이름한다.

여섯 번째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니, 마음을 대상에 온전히 집중하게 하는 성품이기 때문에 심일경성이라 이름한다. 예전에는 일심(-心)이라 했는데 이는 심일경성을 줄여서 말한 것이다.

일곱 번째는 정(定)이니, 대상을 살펴서 정착하기 때문에 정이라고 이름한다.

여덟 번째는 정사(正思)이니, 그 뜻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논사는“삼매(三昧)라는 이름과 삼마제(三摩提)라는 이름은 단지 등지를 뜻하는 것일 뿐 다른 이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 어째서 그런가? 예컨대『금고경(金鼓經)』에서 열 가지 선정을 설명한 가운데, 앞의 3지(地)에서는 삼마제라 이름하고 뒤의 칠지(七地)에서는 삼매라 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이름이 만약 같은 등지(等持)의 뜻이라면, 무엇 때문에 이름을 고쳐서 앞과 뒤에 각기 다른 이름을 사용하였겠는가?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이름이 어째서 같지 않은가? 만약 지방이나 습속의 차이 때문이라면 한곳에서 두 가지 이름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전을 전한 이의 시대적 전후 때문에 다르다고 한다 해도, 하나의 경에 삼마제(三摩提)와 삼마지(三摩地)라는 말처럼, (하나의 개념에) 두 가지 이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을 전한 이의 시대적 전후 때문에 다른 것이지 실상은 같은 말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삼매라는 이름과 삼마제라는 이름은 같은 경[ 本] 속에 있으니 어떻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삼매의 넓은 의미와 제한된 의미를 밝힌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간략하게 네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첫째, 정(定)과 등지(等持)의 두 가지 이름이 가장 넓은 뜻을 가지고 있다.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에 두루 통하며, 또한 삼계에 통하며 더 나아가서는 욕계(欲界)의 산란한 마음에도 통한다. 6위(位)의 심소(心所)45) 가운

 

 

 

 

45) 심왕(心王)에 동시적으로 수반되는 여러 가지 정신 작용을 여섯 가지로 분류한 것. 변행(遍行)·별경(別境)·선(善)·번뇌(煩惱)·수번뇌(隨煩惱)·부정(不定).

 

데 다섯 가지 별경[五別境]46) 중에도 삼마지가 있으며, 이것 역시 정(定)이라고 이름한다.

둘째, 심일경성 (心一境性)과 삼매(三昧)라는 두 이름은 다음으로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욕계에는 통하지만 한결같이 산란한 마음에는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반주삼매(船舟三昧)와 욕계에 결박된 아홉 가지 마음가짐[心住]의 심일경성 역시 욕계의 방편심에만 통하기 때문이다.

셋째, 삼마혜다(三摩呬多)와 정려(靜慮)라는 두 이름은 좁은 의미가 있다. 욕계의 마음에는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며, 오직 가볍고 편안한 마음[輕安]에 들어가는 경지만을 취해서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넷째, 삼마발제(三摩跋提)와 사마타(奢摩他)라는 두 이름은 가장 협소한 의미를 가진다. 즉, 정(定)의 경지 안에도 구별이 있기 때문인데, 사마타는 네 가지 지혜로운 수행 가운데 심일경성에 통하지 않고, 삼마발제는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세 삼마지에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덟 가지 넓고 좁은 이름에 대해 대강 이와 같이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