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 !/수미산이야기

大念處經 :

GraU 2015. 5. 22. 16:53

 

rel. sati

 

 

 

 

 

전문 참조

http://3sang4.blog.me/220363553765

 

http://cafe.daum.net/daman1203/Sik2/129

 

 

 

 


 

+ http://cafe.daum.net/chobul/RFSY/65

 

 

초기불교의 수행법(대념처경)/ 각묵스님  

 

 

 http://cafe.daum.net/chobul/1AoB/304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實參) 수행법을 설하신 경을 들라면 『장부』의 「대념처경」(大念處經, D22)과 『중부』의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出入息念經, M118)과 「몸에 마음챙기는 경」(念身經, M119)의 셋을 들 수 있습니다.

 

중략

 

마음챙김은 그 대상이 중요합니다. 「대념처경」에서 설명되고 있는 마음챙김의 대상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⑴ 몸(kāya, 身): 14가지


① 들숨날숨
② 네 가지 자세
③ 네 가지 분명하게 알아차림
④ 32가지 몸의 형태
⑤ 사대를 분석함
⑥-⑭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⑵ 느낌(vedanā, 受): 9가지  1


① 즐거운 느낌

② 괴로운 느낌

③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④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

⑤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

⑥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⑦ 세속을 여읜 즐거운 느낌

⑧ 세속을 여읜 괴로운 느낌

⑨ 세속을 여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⑶ 마음(citta, 心): 16가지


① 탐욕이 있는 마음

② 탐욕을 여읜 마음

③ 성냄이 있는 마음

④ 성냄을 여읜 마음

⑤ 미혹이 있는 마음

⑥ 미혹을 여읜 마음

⑦ 위축된 마음

 

⑧ 산란한 마음

⑨ 고귀한 마음

⑩ 고귀하지 않은 마음


⑪ 위가 남아있는 마음

⑫〔 더 이상〕위가 없는 마음

 


⑬ 삼매에 든 마음

⑭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

⑮ 해탈한 마음

⑯ 해탈하지 않은 마음

 


 

⑷ 심리현상(dhamma, 法): 5가지


① 장애(蓋)를 파악함
② 무더기(蘊)를 파악함
③ 감각장소(處)를 파악함
④ 깨달음의 구성요소(覺支)를 파악함
⑤ 진리(諦)를 파악함 

 

 


 

「대념처경」은 이렇게 모두 44가지로 마음챙김의 대상을 구분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대념처경」에 나타나는 마음챙기는 공부의 요점 몇 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마음챙김의 대상은 ‘나’ 자신입니다. 내 안에서(ajjhattam*) 벌어지는 현상을 챙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밖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 해탈열반은 내가 성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부 범망경(D1) 등에서도 부처님께서는 ‘바로 내 안에서(paccattam* eva) 완전한 평화(nibbuti)를 분명하게 안다’고 하셨습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대념처경」에서는 이러한 나 자신을 몸, 느낌, 마음, 심리현상들로 나눈 뒤, 이를 다시 몸은 14가지, 느낌은 9가지, 마음은 16가지, 법은 5가지로 더욱더 구체적으로 세분해서, 모두 44가지 대상으로 나누어서 그 중의 하나를 챙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바탕 하에서 때로는 밖의(bahiddhā) 즉 남의 신·수·심·법에 마음을 챙기라고도 하고 계시며 때로는 나와 남 둘 다의 신·수·심·법에도 마음챙기라고도 설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출발은 항상 나 자신입니다.

 
둘째, 무엇보다도 개념적 존재(pan$n$atti)의 해체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대념처경」에서 마음챙김의 대상을 신·수·심·법으로 해체해서 제시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필자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나니 내 것이니 남이니 산이니 강이니 컴퓨터니 자동차니 우주니 하는 개념적 존재를 해제할 때 무상·고·무아를 그 특징(sāman$n$a-lakkhan*a, 共相)으로 하는 법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면 더 이상 개념적 존재를 두고 갈애와 무명을 일으키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해체는 중요합니다. 해체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중생들은 무언가 불변하는 참 나를 거머쥐려 합니다. 이것이 모든 취착 가운데 가장 큰 취착입니다. 「대념처경」이 나라는 존재를 신·수·심·법으로 해체하고 다시 이를 21가지나 44가지로 더 분해해서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제시하신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체하지 못하면 개념적 존재(pan$n$atti)에 속습니다. 해체하면 법(dhamma)을 보고 지금 여기서 해탈·열반을 실현합니다.
 

셋째, 거듭 말씀드리지만 마음챙김은 대상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입만 열면 주객을 초월하는 것이 수행이라 얼버무리는 우리 불교가 깊이 새겨봐야 할 점입니다. 「대념처경」은 거친 대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미세한 대상으로 참구의 대상을 나열하여 들어갑니다. 그러나 「대념처경」에서 나타난 순서대로 21가지 혹은 44가지 대상을 모두 다 챙기고 관찰하는 것은 아닙니다.

 
넷째, 마음챙김으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통합하고 있습니다. 불교수행법은 크게 사마타수행과 위빳사나수행으로 구분됩니다. 전자는 지(止)로 한역되었고 후자는 관(觀)으로 한역되었으며 지관수행은 중국불교를 지탱해온 수행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마타는 삼매(定)수행과 동의어이고 위빳사나는 통찰지(慧, 반야)수행과 동의어입니다.


「대념처경」은 마음챙김을 통해서 이러한 사마타와 위빳사나 수행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집중이던 관찰이던 마음챙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마타는 찰나생·찰나멸하는 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표상(nimitta)이라는 개념적 존재(pan$n$atti)를 대상으로 하고, 위빳사나는 찰나생·찰나멸하는 법(dhamma)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마음챙김이 없이는 표상에 집중하는 사마타도 법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위빳사나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이런 두 종류의 수행에 공통적으로 중요한 심리현상입니다.
 

다섯째, 「대념처경」은 사성제를 관찰해서 구경의 지혜(an$n$ā)를 증득하는 것으로 결론 맺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상·고·무아의 삼특상 가운데서 고의 특상과 그 원인과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을 꿰뚫어 아는 것으로 해탈·열반의 실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해탈에는 세 가지 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상·고·무아입니다. 무상을 꿰뚫어 알아서 체득한 해탈을 표상 없는(無相) 해탈이라 하고, 고를 꿰뚫어 알아 증득한 해탈을 원함 없는(無願) 해탈이라 하고, 무아를 꿰뚫어 알아 요달한 해탈을 공한 해탈이라 합니다. 「대념처경」은 그러므로 고를 통찰하는 원함 없는 무원의 해탈로 결론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이야말로 초기경에서 초지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는 깨달음이요 열반의 실현입니다.

  

 

 

 


 

참조처

 

 

1. 수행경전 연구회 : 사념처 카테고리 바로가기

http://cafe.daum.net/buddhistpractice/Z62Q/1?q=%BE%C6%B3%AA%BA%FC%B3%AA%BB%F1%B6%EC&re=1

 

 

2. 수미산 카페 불교학연구 카테고리

http://cafe.daum.net/cigong2500/M8GU/34

『대념처경(Mahasatipa hana sutta)』에서 보이는 수념처(受念處)의 실천과 이해 [정준영]

 

 

http://blog.daum.net/xmahabulx/10185202  : 마하불 블로그

(九八)中阿含因品念處經第二(第二小土城誦)   중아함 98경  제2 소토성송  인품  제2 염처경

 

 

목야의 뜰 : 블로그 카테고리 아함부경전 참조

http://blog.naver.com/buddhafind/220354364509

고엔카지가 해석하는 대념처경 :

 

 

연인사 도창스님 :

http://dochang.pe.kr/ymain/board.php?board=d011&command=body&no=204 

냐나틸로카 스님의 『붓다의 말씀』(The Word of the Buddha) 가운데

바른 마음챙김[正念]에 대한 부분 각색본 

 

 

묵선재 : 우빤냐 사냐도 의 대념처경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3sang4&from=postList&categoryNo=148

 

 

세상속으로 : 푸우님, 염처경 관련 글 참조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royshong&from=postList&categoryNo=15

 

 

 

 

‘알아차림(sati)’ 있어야 번뇌 끊는다

 

http://blog.naver.com/royshong/110094468320

 


 

무엇이 네 가지 알아차림인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 관찰하면서 머문다. 열렬하고, 분명하게 이해한 알아차림으로써, 비구는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벗어난다. 느낌에 대해서 느낌을 따라 관찰하면서 머문다. 열렬하고, 분명하게 이해한 알아차림으로써, 비구는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벗어난다. 마음에 대해서 마음을 따라 관찰하면서 머문다. 열렬하고, 분명하게 이해한 알아차림으로써 비구는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벗어난다. 법에 대해서 법을 따라 관찰하면서 머문다. 열렬하고, 분명하게 이해한 알아차림으로써 비구는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벗어난다.



 

『염처경(念處經)』의 중심된 과제는 알아차림의 확립이다. 여기에는 몸(身), 느낌(受), 마음(心), 법(法) 네 가지가 있다. 여기서 염처는 ‘알아차림의 확립’으로 번역되는데, ‘sati’는 ‘알아차림’으로 ‘patthana’는 ‘확립’에 해당된다. 확립으로 번역되는 ‘patthana’는 ‘다가가다’는 의미의 ‘pa’와 장소를 의미하는 ‘sthana’가 결합된 말이다. 그러므로 알아차림의 확립(念處)이란 몸과 같은 대상의 장소에 다가가서 머물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아비담마론서에서는 염처를 염주(念住)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곳에 다가가서 어떻게 머물 것인가? 그것은 ‘열렬함’, ‘분명한 이해’, ‘알아차림’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벗어난다. 열렬함이란 정진에 대한 열정, 부지런함을 말한다. 분명한 이해는 무상, 고, 무아라는 대상의 특성에 대한 철저한 통찰로서 집착을 방지한다. 알아차림은 현재의 순간에 깨어있음을 뜻한다. 현재에 직면하여, 과거의 흔적이나 미래의 바램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한다.

일반적으로 분명한 이해(知)가 바른 견해에 해당된다면, 알아차림(念)은 마음의 평정과 관련된다. 이들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가진다.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이 없다면, 대상에 대한 이해는 공허한 개념이 된다. 개념은 안개처럼, 흐릿하고 애매하여, 살아있는 지혜가 아니다. 알아차림은 언제나 현재의 시점이며, 직접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하지만 반대로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결여된 알아차림은 집착을 증대시키는 경향도 있다. 이런 경우 결국은 대상의 폭류 속으로 휩쓸려 표류하게 되고, 마음의 평정은 무너진다.

최근에 알아차림(念)에 대한 번역의 문제가 논쟁이 되고 있다. 한역에서는 ‘마음에 두다’는 의미에서 ‘염(念)’이라고 번역을 했다. 사띠의 본래적인 의미가 ‘잊지 않고 기억하다’는 범어 ‘smrti’와 동의어이기 때문에, 念이란 번역은 좋은 번역어라고 평가된다. 하지만 염이란 낱말은 ‘생각’이라는 분별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향이 많아, 사띠의 본래적인 의미를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는 사띠를 ‘알아차림’을 비롯하여, ‘마음챙김’, ‘주의집중’, ‘마음지킴’ 등 다양하게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영어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주목(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주의깊음(mindfuiness)으로 번역되고 있다. 어떻게 번역하여 사용되든지, 사띠의 확립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지금 어깨의 느낌을 관찰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첫째 먼저 의식을 어깨로 옮기고, 둘째 주목하여 그 장소에 머무른 다음, 셋째 그곳의 느낌을 지각하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만약 해석자가 의식을 돌려서 어떤 특정한 장소로 다가가는 첫 번째 의미를 귀중하게 여긴다면, 그는 사띠를 ‘주의집중’으로 번역하여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장소로 곧장 의식을 옮기지 않고, 어깨에 머무는 두 번째의 의미를 강조한다면, ‘주의깊음’이나 ‘마음지킴’으로 번역할 것이다. 하지만 장소에서 느끼는 느낌 그 자체에 대한 자각을 강조한다면, ‘알아차림’이나 ‘마음챙김’으로 번역한다.

여기서 알아차림(念)과 바른 이해(知)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일은 필요하다. 이들은 쌍둥이처럼 함께 자주 설하여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깨라는 장소에로 다가가서 그 특정한 느낌을 ‘포착’하는 일은 알아차림의 역할이다. 하지만 어깨에서 발생되는 느낌을 마음의 작용과 구별되는 성격과 무상성에 대한 ‘통찰’은 사띠의 영역이 아니라 올바른 이해(知)의 영역이다.

[출처] 염처경(念處經) ②|작성자 푸우

 

 

 

 


 

 

 

 

 

 

 

붓다의 옛길 - 실론섬 님 :  염처경 외  초기 불전 연구 참조 - 텍스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51

 

 

 

 

1)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고 불선한 법으로부터 떠나서, 생각(거친 사유, vitakka)이며 숙고(미세한 사유, vicra)이며, 벗어남(viveka)에서 일어난 희열(pti)과 즐거움(sukha)인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하며 머무른다.

 


2) 생각(거친 사유, vitakka)과 숙고(미세한 사유, vicra)가 가라앉음으로써 내적인 고요와 마음이 한곳으로 집중된, 생각과 숙고가 없는 집중에서 생겨나는 희열(pti)과 즐거움(sukha)을 갖춘,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하며 머무른다.

 

 


3) 희열(pti)이 사라짐으로써, 평정(upekha)과 사띠(sati)와 바른 알아차림(sampajano)으로 머문다. 그리고 몸으로 즐거움(sukha)을 느낀다. 성인들은 이것을 일컬어 평정(upekha)과 사띠(sati)가 있는 즐거움으로써 머무는 자라고 말한다.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하며 머무른다.

 


4) 즐거움(sukha)과 괴로움(dukkha)이 끊어짐으로써 그리고 예전의 정신적인 즐거움(somanassa)과 정신적인 괴로움(domanass)이 제거됨으로써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adukkha asukha), 맑고 청정한 평정(upekha)과 사띠(sati)인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하며 머무른다.

 

 

 

 


 

 

아난다여, 비구가 즐거움(sukha)과 괴로움(dukkha)이 끊어짐으로써 그리고 예전의 기쁨(somanassa)과 슬픔(domanass)이 제거됨으로써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adukkha asukha), 맑고 청정한 평정(upekh)과 사띠(sati)인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하며 머무른다. 아난다여, 이것이 이전의 즐거움보다 훨씬 훌륭하고 탁월한 다른 즐거움이다.

- 바후웨다니야 경(Bahuvedanya sutta)

 

 

 

 

 

  1. 수념처의 이해 참조 : 참조처 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