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 음/건강

주저리 주저리 : 불평 하라는데?

GraU 2015. 8. 21. 09:56

 

 

 

http://cafe.daum.net/MangGo1210/3Np5/111457?svc=livestory&q=%BB%FD%B0%A2%C7%D2%BC%F6%B7%CF+%C0%CE%BB%FD+%B8%ED%BE%F0%C0%CE+%B5%ED

 

 

 

 

 

 

떠나라, 불평하라.. 창의력 높이는 6가지 방법 

코메디닷컴 | 권순일 | 입력 2015.08.19 13:33

http://media.daum.net/life/health/wellness/newsview?newsId=20150819133305741

 

 

 

새로운 것을 생산해내는 창의력은 어느 분야에서나 혁신을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과학 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가 창의력을 높이는 방법 6가지를 소개했다.

불평을 털어놓자


불만족은 창조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미국 라이스대학교 연구팀은 굴착 장비 직원 149명에게 일에 대한 만족도를 묻고 이들의 상사에게 각 직원의 업무 능력을 확인했다. 그 결과, 불평하는 직원일수록 더 창조적으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경영학 회보에 실린 이 연구결과는 내면의 불평이 새로운 시작을 이끌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마음을 풀어 헤치자


최근 연구에 따르면 무방비 상태일 때 창조적 생각을 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런던대학교 연구팀에 의하면 뇌는 쉬고 있을 때 창조적 생각을 한다. 연구팀이 일반인에게 단어 퍼즐을 풀게 하면서 뇌파를 촬영한 결과 뇌의 초점이 맞지 않았을 때 더 창조적으로 퍼즐을 푼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양손을 써라


음악은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뿐 아니라 뇌 발달도 도와준다. 


미국 밴더빌트대학교 연구팀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업무 수행 능력이 더 좋다는 것을 실험으로 밝혔다. 꼭 피아노 연주가 아니더라도 양손을 쓰는 동작은 오른쪽 뇌와 왼쪽 뇌를 모두 쓰게 해 창조력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을 파란 색으로 채우자


파란색은 창조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연구팀이 빨간색과 파란색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보니 빨강은 기억을 자극하고 파랑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떠나자

낯선 곳에 가야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폴 고갱은 타히티 섬으로 가서 삶과 일이 바뀌었고, 헤밍웨이는 스페인에서 대작의 영감을 얻었다.


놀자

노는 것은 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물학적인 기본 상태 중 하나다. 놀이는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이고 특이 어린 시절 충분히 노는 게 중요하다.

 

 

 



M.

1. 불평:  불만족을 표현하고, 개선을 위한 시간을 투자  을 할 수 있는 환경

2. 긴장:  을  풀고 있을 수 있는 시간

3. 조작/변형  :   환경을 얼마나  자율적으로  바꿀 수 있는가  +  시간을  다르게 쓰는

4. 새로운 자극

5. 놀이


제일 중요한 것은   더 짜내려고  더 효율,  더 많은    기치아래  도구로 쓰게 되는 ,  

채찍으로 쓰게 되는 기전을   경계하는 일.   당연히  이런 것들까지 해줬으니, 더 내어 놓아라 가 되는.


 





원전 찾아 볼라다가 쓸데 없는 짓 한 듯한 느낌이 또.

 

http://www.mrcs.co.kr/bbs/view.php?bbs_id=dataa&page=4&doc_num=26

 ‘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온라인판은 .... 같은 내용, 입력 날짜가...

 

요새 기사는 사람이 쓰는 게 아닌가봐

기사 은행 처럼 데이터베이스에서 랜덤 출력하는거 아녀?

 

거기다 대규모 포털에 노출되면 읽은 사람이 많은 순위로  우선적으로 탑에 랭크되고

 

과연 '사실' 이라는 게 어떻게  변형 가능한지 실험 중인 것 같다.

 


 

New Scientist article: “ 8 ways to boost your creativity  : 

https://www.newscientist.com/round-up/creativity/

 



 

 


"중요"  : 중심, 현재, 라는 것의 의미 상실.


개인 개인 마다의 판단에 맡겨지는.


정작 각각의 개인들은 그 사실을 별로 알려고 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체로서 '국가' 1가 알아서 해야할 것들에 대해 :  소위 스마트한 시민으로서 각자도생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할 것으로 ,  '중앙'적 통제가 와해되어, 각자가 알아서 자본의 이익을 취하게 된 : 초기 자본주의 시대와의 겹쳐지는 이미지는.


 

저 초기자본주의 태동의, 넘쳐나는 '장사꾼'들에 의해 중구난방 곤란해지던 그시절

 

,

보수 : 영국 보수당의 16가지 원칙 이던가? :

제대로 된 보수  의 입장에서, 


 시대상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른  "제대로 된"2  방향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제대로 지켜야할  가치 :  기존의 것과 대치되는 새로운 가치   의  갈등구도

그냥 오른쪽에 서는 것이 아닌,  선의의 =  핵심에 있는,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지속시켜야 할 ,  지켜야 할  것들은


실제로 무엇 이며, 

그것들은 어떤 좋은 점 : 그 실제 이 있기 때문이며,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어떤 방향으로 지속시킬 것인가" 하는   


누구나가 확인 가능하도록 공공연히 가시화 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프로퍼갠더일 뿐. 

억지로 끌고 가려할 때는, 유무형의 폭력이 동반 될 밖에.


드러내어 놓지 않은 의도 는  그때 그때  달리 쓰는 가면과 같이, 진정한 의미에서는, 프로퍼갠더되는 의미내용이 아닌, 그 주체 : 떠들고 있는자가 누구인가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맥락적 의미에서 

'믿을 만한게 없어져 간다'는   구조주의적 :  관계의 '기초' 상실에 대한?   은연 중의 위기감은


개인적 수준에서,


내 안에 나의 실제 (기억:)  과  나의 실제 비춰지는 상  과의 괴리, 즉


'내 안의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겉으로는 '   '하려고 노력했으니, 따라주겠지' 

'적어도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겠지' 하는 기대와 


그와 동 맥락에의 근원적인 기댐의 기전 근원 에 대한 고민 으로  돌려서 생각해보면,


 


함께 가는 사회 : 소위 '공동체 의식' : 함께 한다는 의미내용 이 살아 있던, 그것이 진짜 그것-서사가능한-인지 아닌지는 이미 지나간 것이어서 상관없게 되었지만, 최소한 기댈 수 있었던 그리운 것이 있기는 했었다3는 '사실(지나간, 과거, 그러나 확실했었던 것)' 에 근거하여,  


이 전 시대로의 "향수" 가  전보다 훨씬 큰, 또 다른 반동과 의미로 다가 오는 것도 이러한 '사실'의 왜곡이라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원본에서 멀어져버린 (진정성)ㅇ,


굳이 읽으려 하지 않으면 읽히지도 않는, 

사건들로 비춰지는 '현상'에 기반하여 자연스러운 것.


 


흔히 불확실한 미래, 불안감 등으로는 쉽게 이해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기원으로 불확정성의 원리라 일컬어지고, 확률적 지식이라 공공연히 표방되어, 스스로들 잘 알고 있는, '아니 뭐 다 아는 사실이니 별 새로운 것이 없다'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오던 ,


이런 "사실"의 조작과 변형에 영향을 미치는, 


'통제에의 환상' 에서 벗어난 고삐 풀린 자율성4의 그림자로 인한


정보와 지식의 비 진실 화 : 비 중심화  의  대중적 양상이 그냥 내버려두기엔 더욱더 곤란해 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5




 


볼 수 있는, 아니 거까지 안가더라도,


보일 수 있는 '전체'가 존재하지 않듯이, 

걱정하는, 제대로 되어야 할 텐데 하고 우려하는, 


'대상'으로서의 '전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명확하고, 분명한 '할 수 있는 일' 과 보살필 대상으로서 '사랑을 줄 존재' 를 구별할 수 는 있다. 그런 연후에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그냥 하면 되는 것. 


솔직히 신경써야 할 것은 내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과 일들이지, 

저 멀리 보이는 그것이 아니다.


대개의  "세상이 왜 이모양이고." 하는 푸념들. 

실제 '해결'보다는,  그 근원을 바로 이 자리에서 드러내는.

문제 찾기-해결 의 방법론 ("programme"-Problem Seeing/Solving) 에서의 핵심,

소위, 제대로 된 대상을 특정하는 일 이 진행되지 않는.  그 수준의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 불평.


 



오히려 탓을 한다면,  

현재의  이러한  진정성 상실 : 신뢰 와해  의  기조에 관해서 그 출발로서


차라리, 많은 이들이 제 주변만 잘 챙겼더라면 :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그런 것 까지 하기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는, 

또 다른 이들도 그리하는데 하는 무의식적 동조로 인해, 

그 자신이 보아왔던 앞선 세대의 자연스러운 행동들을, 굳이 마다하여 따르지 않고,


등의 다양한 대응/회피 양상들의 존재가능성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이가  거의 비슷한, 같은 대처로서 

'시키는 일' :  대의로서 프로퍼갠더 되는  희생의 강요를 운명으로 여기고 따랐던,


소위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행동 조차 하지 않았던 것 


- 자신이 자연스럽게, 그저 함께 살아내며 쳐다보고, 그것과 연결된 것들을 통합적6으로 겪어 보는 것으로서, 원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겨지는 나의 현전 : 특질을 내려 받은 것처럼 


다음 세대가 볼 자신의 행위: 굳이 의도하지 않고서도 전해진 것을 자연스럽게 스스로도 모르게 함을 포함  로서 또한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기전을 전제로,


반면 의도한 것의 극명한 '이것만은 해야된다' 식 의 고집으로만 남게 되는 - 


( '향수'의 근원: 가지고 싶은 것, 좋은 것, 그리운 것. 즉발적 심상유발이 아닌, 사례를 보이고 들어서 설명하거나 비교한 후에야 보인다는 사실 자체가,  그 당시 그 상황 하에 그것이 어떻게 전해지고 받아들여졌는지를 바로 알려주는 것) 


들으로서, 그 여파로서,


소위, 그 시절의 국가적 '목적', '공동의 갈 길'이라는 신념 하에 무시해버렸던 그 이전 시대의 것들 : 이 가진  의  가치를,  최소한 받은 만큼만 온전히 전해 줄 수 있었어도,  그 의미내용의 진정성이 와해 되어,  겪어 보지 못한 세대에서 모락모락 커져가는  반발을  그저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을 것.


현실 상황에서 쉬 돌려보면, 전체상 하에서야 일어나고 보여지는 의를 '생략'하고

굳이 효를 들고 나와 전투하듯 강요하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실제로  자연스러운 것:  이란    이러한  과정 자체의 그 전체. 


억지로 정치 시키려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슴과 상통되는

나아가, 집착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훨씬 많음

고통을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둔다는 의미


나도 모른 채로 내가 가진 좋은 유산 들을  제대로 다음 세대에게 내려 보내지 않고서야,  그들이  왜 내가 그것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졌다면,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되는.

굳이 엄숙주의적 강령(화)로 :  근엄한 '아버지상'을 등에 업고서, 스스로를 그 자리로 내 몰았던 시대적 착오 등,  그 시기의 전체 컨텍스트와 연결된 복합적 양상에 대한, 대개는 간과되고 마는 '복잡성' 기반 고려여지는 남겨두되 따로 언급은 않더라도,  소위 '운동' 으로, 서로서로에게 독려되어 응원되는. 실제 전해지는 것의 의도는 뒤로하고, 서로서로의 관계지음, 서로간의 다독임이 그나마 있기는 했었던7


~ 을, 해라, 따라야 한다 하는 강요의 코드로 억누르기 시작하면, 그것은 


그 자리: 원래 그런 것처럼 유지되던 선의-가치를 가진 자리  를 떠날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또 당연하게도  *주객의 동일화

뿌린 대로 거둔 것. 자업자수. 


이시기의 폭력으로 인해, 겉으로 보기엔 말 잘들어 훌륭한 자식인 듯해도 그 속에 상처를 담아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나는 잘 가르쳤는데, 왜 이런가' 되는 것처럼.


 



한 개인의 속에 일어나는 일을, 아무리 잘 들여다보고, 제대로 설명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 그 자신이 아닌 타인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준 것, 가르친 것이 그 속에 온전하리라 여겨서는 안된다.


 

인 과 결 에 얽매인 계박 : 

因: 을 지었으니 (난 제대로 했으니)  

果: 를 바라는 (당연히 잘 대해줄꺼야, 좋은 결과가 있을꺼야) 마음.


이를 알아차리지 않으면, 

또한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여기는 자리: 識 8 를 알아채지 않으면,



즉, '제대로 의 의미 와 받을 것, 결과' 가 나의 것, 기대, 예상이며, 實際 는 내가 알 수 없다는 것.



모를 뿐.   

내 손을 떠났으니 내것이 아닌것. 


제대로 준 것.


그 해결은 : 즉  마음 편하게 될 길은 영 요원하다.


 


 


 


문득, 시장이 그러할 것이라 여겨 자율적인 균형 상태를 바라고,  소위 '자유'를 굳이 억지하지 않았던, 그리고 그로 인해 맞고 있는 현재를, 아니 오히려 그리하게된 연원 자체가 "자율을 가장한" 것이 었는지도 모를.  '신자유주의'


맞건 틀리건 진위를 떠나서, 누군가의 개그 소재로 쓰여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 그놈의 경제는 언제 집 찾아들오는겨, 십수년째 집나가 안들어와"


언제 나아지는겨, 이누무 경제란 놈은.  하는.


 


 


경제는 예측가능하지 않다. 


원래 불안한게 세상 : 불확정성 인 거고, 

그 두려움을 야기하는 근원들 : 변수들 을 줄이려고, 안정하게 예측가능하여 미리 대비가능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해온 9것이 인간역사의 한 축.


불안? 두려움?  -  '예측가능성' 여부에 한정하여 볼 때,

그건 보는 사람의 눈에 따른 것이지, 대상의 본성이 아니다.


걱정하거나, 바로잡으려 하거나, 소위 "문제화"하여 감정적, 감성적 울림, 특히 분노 나 공포를 일으키는 '선동'은 어느 수준에서나, 수위에 따라 읽을 수 있고, 컨트롤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자연스러운 것.


예를 들어, 왜 매일 그 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게 되는지를 스스로 느끼지 못한 채로, '뉴스' 10를 보면서  이루어지는 가정(자신, 연장된 자기) 내의 보이지 않는  정서적 교류와 공감, 순응과 반응 :


그에 의한 [교육효과, 무조건적 따름 vs.  반발 / 분노, 슬픔] 에 의한 감지체계의 비의도적 편향화, 또 아주 악의적이게 변질되어, 또래, 모임, 집단에게로의 부정적 영향으로서의 파급 효과(특히, 욕이 심해지는 경향성)는


마찬가지로, 지켜보지 않으려 하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걱정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어디를 보려고 해야 하는지를.



.


 


'바르게' 하고자,' 제대로 된' 으로 이끌고자, 

이른바, '도' 를 따르고자 함은


그 자체의 순수함 아래, 숨겨져 있는  :  왜, 이 사실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바꾸려 하지? - 진정성의 문제 를 솔직하게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소위  '자연'이라는 잘 알려진 대상이 항상 그리 되는 것처럼, 

"도구화" 될 뿐이다.

 



우선은 진짜 제대로 된  사실로서의 '조사'가 선행되어야겠지만,


실제로는, 그에 대해서는 : 어디부터 어떻게 봐야하는지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사실, 잘 모른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면.  포디즘의 일상성 현현


문제는, 실제 묻고 듣고 공부하여 알게 되고 익혀서 습득하여 익숙해진 나의 '것'이 아니면 입을 닫으면 되지만, 스스로 가 있던 곳은 대개의 경우(세대가 공유하는 업으로서) 하찮은 곳이라고 여기기에, 남보기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즉 가치있는 자리에서 소위 '힘'을 휘두르는 상으로, 그걸: 잘 모른다  인정하려 하는 자신을 그 시작에서부터 무시하고, 나도 그쯤은 알고 있으며, 이런 이런 이유로  해법을 내놓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포장하게 된다. 개인과 연결된 사회라는 공유마당의 현주소 : 현재의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으로서.





개인적 수준만이 아니라, 많은 사회적 부문에서도 


진정성 기반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소위 적합하지 않은 '자원'이, 종국에는  '컨트롤타워(센터)'에 앉게 되고, 스스로 그 자신들의 암묵적 동의 에 의해 함께 만든 (자연스럽게 형성된) '현재 상황'에 대해 도리어 개탄하고, 나는 정의로운, 올바른 쪽에서 제대로 보고, 이런 말, 비판을 할 뿐이라는 듯, 이렇게 읽고 있는 자신의 대견함을 보이려고만 떠드는 것인지를 또 다시 굳이 꺼내어 놓고 펼쳐내어야 할 일.



현재 극명하게  반대편 으로 치달아 가고 있는  세대 간의 이견 양상을  진정  :걱정 : 하는 차원에서  "제대로 알아보고자 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싶기도.


되려 저 걱정이라는 것이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비롯된,  보고 싶은 상의 반발로서 , 서 있는 자리의 가치로움을 또 다른 페르소나로서  장식해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애써 떠들어 대다가 그냥 돌아서면 잊어버린 듯 하면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정말로,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소위 진실로 "제대로 된"  상태라면


풀어내는 푸념이  곧 시작이 되어,  

개선을 위한 노력이나,  채비,  행동을 시작하게 될 일.


최소한 그 두루뭉수리한  상 :  제대로 된  상태에 대한  파시즘적 상황 판단/ '정의구현' 하는 자신의 상 만을 우선시 할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나의 가족들,  그 제대로 된 상태를 같이 살아가게 될 가장 가까운,

살을 맞댄 이들에게서라도  먼저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가도,


그 푸념 : '제대로 된 상태로의 지향' 상태에 있는 자신의 상을 세운  이 출발한 지점 자체가


오히려


바로 내 옆에 가까운 이들과의 갈등: 그것이 보이건 보이지 않건, 느끼건 말건, 이야기 하고 싶건 않건 간에  : 에서 기인된 것이라는데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그냥 두면 더욱, 사회적으로 극렬하게 치닫게 될 수 밖에 없는, 

세대 간의 양극화된 정서 의 표출로 여겨지던 그 것이


슬프게도


내 옆의 이, 가까운 이에게 받은 실망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바람, 하는 줄 모르고, 또는, 나는 성실하였는데 되려 받지는 못하는 듯한, 그렇게  쌓아온,  받아 지녀 키워 온 상처와 불만의 토로로서의  장: 기능 이었던 것임을,


소위 뉴스를 보면서 그 것을 풀고 있었던, 

같이 보는 '가족'은 그 풀이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있슴을.


그 자리에서의 힘을 가진 자는  그 자리가 그리울지 몰라도,

반대편에 있던 자들은 당연히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자리일 수 밖에.

중요한 것은, 양자 모두 그것이 어떤 기전으로 일어나며, 어떤 영향을 서로에게, 또한 자기자신에게 끼쳤는지를 알지 못하고 지내왔다는 것.


이러한,


보이지 않는 폭력의 개념은,  휘두르는 자의 것이 아니라, 당하는 자의 것이다. 

약자의 편에 서서 사건을 보고 싶지 않다면, 힘을 쥐지도 말아야 한다. 


최소한 가정에서는. 차라리 '친구'같은 부모가 나은 이유.




http://editor.daum.net/releases/7.4.29-2/pages/trex/부모가%20도리어%20자식에게%20의지한%20경우,%20생각보다는%20높은%20비율로%20자발적인%20자세와%20자존감이%20높은.%20물론%20둘%20관계가%20원만하다는%20뜻은%20아님.%20아이의%20입장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 

스스로가 자신에게:


이 두개의 기전이  얽혀있음과  그  다르게 익힘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돌이켜 스스로 알아채더라도,  

내가 다시  휘두르는 자리에 있게 되면 굳이 하던 대로의 관성에서 내려서고 싶지 않은.


 


 


권력의 역사로서 교육되는 또한 가져야 할  가치관으로서 

의도적으로 교육되는 역사가 아닌


생활의 반복, 되풀이되는  일상성의 축적으로서의 '사회적 기억' : 특히, 상처를 포함한,

"인간사회" 의 문제 들을 돌이켜 보기 위한 기록 :  이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조금만 되짚어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있었던,

부지불식간에 쌓여 어느 순간 가시화되는 이 사회적 반감 : 서로에의 불신 이 어떠한 영향을 초래하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기본적으로 전통과 역사를  강조하고, 

그 지킴과 지속을 근본으로 하는, 

그 속에서 온유한  진보를 도모하는 입장에서는


진정 걱정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 내놓아  함께 하여, 같이 바라보고 나아갈 


'그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듯이 보이는 현재 시점에서,


이러한 근본에 대한 접근을 


거추장 스러운, 시간이 많이 드는, 원론적이어서 방법론으로서는 불필요하다 여기고, 

그리하여, '판'이 바뀌면 바뀌는 데로 따라 바뀌는 것들을 좇던 데서 벗어나

소위   "사회 대 계약"  이라는 것을 하였던 그   '장사꾼'  들의 불가피한 선택을,


되돌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http://editor.daum.net/releases/7.4.29-2/pages/trex/이에%20대해%20자유롭게%20각%20개인이%20보는%20관점을%20스스로의%20힘(노력)으로%20가져야%20하며,%20소위%20'합리'라는%20도구로%20볼%20때%20공유점이%20생길%20것이라는%20기대와%20더불어.


 


지금은


한숨만으로,


쯧쯧 거리는 걱정반 비난반의 표현으로만 넘어갈 수 있으려나 몰라도,


 


그 아이들은,


기억한 채로,


어른이 되기 마련이니.


 


 


 


단세포적?으로만 봐도


 


지금의 어른 들이 어른 대접을 못받는다 여기는 것은


그 이유 자체를 보려고 하지 않음에서 기인할 공산이 큰 것.


 


같은 맥락에서


현재의 나: 연장된 나의 세대 또한


자신을 바꾸는 구도와 마찬가지로, 크나큰 고통 = 진실을 겁내지 않고 알아 차리려는 -을 감내하지 않는 한


앞선 세대와는 또 다른 색깔로 


자신의 기대를 져버리는  좌절을 겪게 될 것임은, 슬프게도  분명해 보인다. 

 

 

 

 

 

 

 

 

 

 

 

 

 

 

 

 

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15/05/150528084158.htm

 

 

 

  1. 근대이후의 '시민'에 의한 국가: 민주공화국 으로서 [본문으로]
  2. 옳은 바른 길은 이것 : 아펙시즘적 일원주의 / 착한 방법은 여러가지 : 샤프티즘적 다원론 구분으로 볼 때의 보수의 자리. 역시, '효율'성의 논리 [본문으로]
  3. 할머니세대 / 아버지세대 / 나 / 아랫세대 가 같이 공유 불가능한. 지속되지 못한 공유점: 공감의 근원으로서. 최소한 이사실에 대한 공유/동의 여부 하에, 충분한 비시를 실어서 표현하자면. [본문으로]
  4. 인간중심주의 가 개인주의와 구별되지 못하고, 나아가 이기주의화 되는 : 준거가 없어진 상황에서 '자아'만이 남은, 내가 하는 생각과 '올바른' 것으로서, 자기동일시 해버리는. 소위 '착한'과 '바른'의 동일시를 넘어서, 내가 하는 것 = 착한 일 의 구도로, 오히려 그것을 또 그 전의 힘의 관성대로, 약자에게 강요해버리는. [본문으로]
  5. 그냥 내버려 두면 안된다, 바로잡아야된다 하는 것은 '잣대'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소유한 채로 휘두름과 같은 구도. 바로 잡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을 잘 쳐다보면, 전체 구름의 구도 (우주적 균형) 하에서 내가 좋건 싫건 자연스럽게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일 뿐인 것. 따따부따 자체를 즐김은, 그 자리에서의 '힘' : '독수리오형제' 일 뿐. 내려다 보는 자리에 가고 싶은 것. 그 '대상화' 되는 타자를 실제 고려하는 것이 아닌. 소위 온전한 '행'이 아닌, 끄달려 딸려가는. 화가 난다면,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곧 이 사실에 대한'진실' [본문으로]
  6. 중층,중의적/ 복잡성/ 복합적 으로 전해지는 경험들의 집합으로서의 사건 : 예. '제사' - 단지 거추장스럽고 힘든 것이 아닌, 그와 연결된 '정다운', 그리운 것들에 관한. [본문으로]
  7. 앞서의 향수 : 그리운 것이 "있기는 했었던"의 위계. 실제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 : 실체에 대한 규명 작업이 유효한 이유 [본문으로]
  8. '즐기는'자리 : 1. 즐거운 느낌, 2. 괴로운 느낌, 3.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본문으로]
  9. '살아남기' 위해서 [본문으로]
  10. 사회학적 연구들 : 정보 취득원의 단순화 (rel.매스미디어론 에서의 선형적 결핍이 구조적 관점이라면, 달리하여) 만일, 뉴스 가 끼친 영향 - '9시뉴스'의 시작과 원래 의도 : 아니더라도, 일상성으로 침투된 양상 전후 비교 연구들로 확인? 하지 않더라도, 이 미디어 (언론)의 영향성이 소위 '향수'의 자리를 대체함을 인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