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to G.

inner peace~

GraU 2018. 10. 27. 15:03

 

 

 

https://news.v.daum.net/v/20181027080110306?rcmd=rn

 

 

 


 

 

늙은 개는 가르칠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누군가가 있던 자리나

과거에 했던 말과 행동(작업)들은 

소위 '원래 그대로' 1표현될 수 없다.

 

다만 굳이 보려는 의지로

'현재'와 다름을 알아챌 수는 있으되,

바로 그 현재를 그 누군가가, 어떤 의지로 

어떻게, 스스로 알아차림의 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결과를 바라고 내비치려하는지는,

소위, 그 자신보다는

'거울'들에게 달려있다.2

 

 

이 거울들의 반응에서 자유롭다는 의미가

그렇게 하고 싶다거나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수준이 아닌

 

앞서 출발3이 되었던

있는 그대로 즉 그냥 이 되는 순간 다다르게 되는 평안.

내가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바라고 앉은 '질서' 안에서 편안한 상태가 아닌.

 

 

 

 

 

 

 

빈자의 미학 이라고 굳이 이름붙여 떠들어 대던 자리에서 이제 다른 생각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 의도의 순수성을 따지기 이전에 정치적 스탠스에 대해 먼저 알려진, 그러나 판단할 거리는 아닌 원하지 않는 정보의 존재를 떠올리는 순간,

 

나의 불편은 시작되듯이.

 

누가 보기에, 또 아무리 설명해도 그 객관적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

그저, 내용에의 천착으로서

 

부풀려진 존재의 버블.

 

무슨 단어? 용어로 지칭하던지간에

거기에 맞추기 위해 거짓 가면을 쓰게되는

마음의 기전으로 돌아볼 수 있을 듯.

 

내 생각에 보다 중요한 것은

한번 이렇게 된 와전된 '상태에로의 중독'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하심'이라고 했던 표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만큼이나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는 점.

 

물론,

이는 금전 같은 물질적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다만 그 아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는 경향성과 궤를 같이 하는 정도로,

실제 를 모두 다르게 여기는 만큼  눈에 보이는 것 조차

알아차리기 힘든.

아니 알아차리기 싫은  현실.

 

그 아래,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더 어두운 곳에 머무르는 "존재?" 들을 돌아봄은

이런 의미에서 많은 시간을 쓰더라도

그 의지, 아니 그 있슴을 알아차리기에 요원할 밖에.

 

내 주변의 반응이 그렇듯이

아주 쉽게는,

그 사람이 그 말을 할 만큼 그 진실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위대한가 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는 인식의 기전의 존재.

 

실재하는,

눈에 보이는 '존재' 외에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있슴' 들이

왼쪽 과 오른 쪽을 왔다갔다 하는  사변 들 보다 더 유효하지 않을까.

 

 

 

 

 

하얀 벽을 세우자.

 

그 맥락과 다르지 않은.

아직도 순수에로의 갈망을 버리지 못하는

스스로 '착하다고 여기는'

슬픈 영혼.

 

내맹키로.

 

쿨럭

 

 

 

 

 

  1. 다른 위계로 조금 다르게 : 백과전서파 식의 앎 - 딱 그 표현으로 그 순간을 박제화 시켜 고정시킬 수 없슴. 진제는 원래 표현하여 전해지는 것이 아님. 볼 수 있는 사람이 보는 것일뿐 그를 전하려 해선 안되는 것. (rel."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 -W. [본문으로]
  2. "제대로 된", '올바른' 을 추구하는 경향 : 스스로의 구도를 맞다고 여길수록, 극명하게 거울들의 반응에 따라, 또 가는 길의 '고난'을 받아들임의 양상의 다름들에 의해 소위 '증명'되는. [본문으로]
  3. 촉발. 흐르는 그저 흐르는 속에서 굳이 그것을 쥐고 마음이 생각을 올리게 되는 순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