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제 : Consent/앎으로부터의 출발:마비에 대한 알아차림

앎?

GraU 2007. 3. 5. 17:24

색깔, 폰트, 크기, 볼릭유무 바뀜 = 추가 지점을 보임

 

 

 

0. 인지하다. 지각하다 

 

생물학적 기전

 

뇌과학의 성과

 

주의를 특히 기울이게 되는 것 

'intentional blind'

 

 

ref. conv.

인디오 원주민 이 스페인 범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설정

 

cf. 오온,  사념처,  문 / 사 / 수

있음을 알다

받아들이다

개념화 - 연산, 비교

판단

기억

 

 

 

1. 구분하다. 구별짓다.

 

*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 논어 위정편 -

 

= 무엇을 모르느냐

+ 앎의 자세에서 진정성(솔직성)의 중요성

 

http://pinetree3588.blog.me/20161486047

 

 

* 차이를 알다. 이것과 저것이 다름을 구분하다

 

 + 베르그송 : 지속의 개념

앎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과학에서 가장 널리 발전한 것으로 분석화·공간화·개념화하여 사물을 고정적·불연속적인 것으로 보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공감(sympathy)을 통해 사물의 중심부까지 이르는 총체적·직접적인 직관이다.

 

첫번째 방법은 목적을 성취하고 세계에 영항을 미치는 데는 유용하지만 사물의 본질적 실재에는 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방법으로는 직관에 의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지속과 끊임없는 흐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석을 위해 잘게 쪼개다

원자론(atomism) : 서구 철학의 형성 ~ 과학의 태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vs. 창발 개념

cf. 꼴라쥬, 게슈탈트 쉬프트,

 

선 후 상 하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여 두다   

대상(object)화   물성

 

 

비슷한 것끼리 과(科)로 모으다 + 개념 짓다 ,   나아가 이름 짓다

 

 

구체화하다. concretion

구체화하기 위해 '고정'시키다

'단절'의 시작 : 이미 실체가 아닌 것이 되다 - 앎의 딜레마

cf. 관찰 에 따라 바뀌는 , + 고양이

 

 

표현 가능한.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아는 것이 아니다?

간결하게 전달할 수 없다면 ?

 

 

 

* 이름 지어 의미를 부여하다. 그(이름) 의미를 파악하다.

 

cf. 17c fr. 백과전서파  conf. terminology ; 언어학 ; 구조주의)

 

e.g. 마카로니 펭귄 2007년 여름 개봉영화  '서핑업(Surf S UP)'에 등장하는 주인공 펭귄의 종류

왠 마카로니? 무슨 뜻일까? 의문 당연

-> 이름의 연원을 알게 된 순간의 " 아~ 그렇구나 " :   정리되는 느낌?

 

 

 

***  인지하여 가리키다.

 

cf.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 

 음성 이미지인 시니피앙(signifi ant)과 의미인 시니피에(signifie)의 개념

 

 

further : 자끄 라캉의 언어철학 ; 기표가 의미를 견인하다. 본능적 표현으로서의 음운

언어이론에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보탠 라캉은 시니피앙이 단순한 음성 이미지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욕망을 배태한 것. => 광고/브랜드

 

C.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참조  (QUN  2008. 0109  동서양고전탐구)

인류학 측면에서, 기존의 사회전반에서의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의 기능주의적 접근에서 탈피

언어, 사회... 구조 저변에 존재하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해, 구조, 골자가 있다는 접근  (복잡한 대상,현상 속에는 단순한 기본 구조가 존재한다.)  cf. vs. [이데아론 (일원론, 플라톤) vs 아리스토틀, 이원론]

 

책 : 원주민 사고 속에 존재하는 일원적 구조 - 일반화 보편적인 특징이 존재함을 보이다.

 

초기 구조주의 의 저변확대, 비판의 대상이 되어 발전 기여 ; 원래 언어학에서 출발되어 당시 문학비평 등의 분야에 국한되고 있던 구조주의 시각을 인문, 사회과학 영역으로 확대시키는 계기.

객관성, 보편성의 존재(상정)에 대한 의문, '변화'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 등에 대한 비판을 통한 포스트 구조주의의 성립에 기여.

 

 

 

 

 

 

 

2. 명확하다? 明了?  명확하다고 여기다.

 

분명하다 / 분명하지 않다  = 앎 / 알지못함 ?

 

 

생각해보기:  e.g. 상상플러스 세대공감, 어른들이 쓰는 말 맞추기

 

청소년 : "두루마리 휴지로 마술할 때"

답 : 두루뭉수리

사전적 의미 :

1.  어떤 일이나 형체가 꼭 이루어지지 못하고 함부로 뭉쳐진 사물. [준말]뭉수리.
2.  변변치 못한 사람을 조롱하는 말.

 

1.

두루뭉수리 라는 단어의 형태/ 지칭하는 도구 - 단순한 '시니피앙'-기표 를 아는 것

두리뭉실한 무엇, 행위 상황 등의 내용/의미 - 시니피에 -기의를 아는 것

두루뭉수리 라는 단어와 뜻을 모두 아는 것  :  시니피에 + 시니피앙

 

뜻/내용/의미 가 존재 ----> 이름 짓기 -->  개념완성?  ---> 하나의 명확성 확보?

 

 

cf. 마카로니 펭귄 : 남극의 17종 펭귄 중 머리의 벼슬? 모양이 그 펭귄 발견 당시 이탈리아 청년들의 헤어스타일과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 이라는 명확성의 확보의 순간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동질성

 

vs. e.g. 구분이 애매한 종명 - 어원의 명확성에 기대다.

rel. 종사자가 아니면 알수 없는 건축도면분류기호 vs. 종사자만 알면 되는  vs. 종사자도 모르는

 

thus,  도구(어원 등)의 명확성에 기반하여 了를 도모하는 것은  '동의'를 전제로 하는 '전달 : 공감 : 가르침'의 구도와 다르지 않다. 실제 분석적 접근에 의한 앎의 체험적 한계 -  동의된 과정의 부재 시에는 그 근거를 잃게 되어, 소위 '지속'되지 않는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지금 시대 필요하지 않는' 앎, 지식, 가치 등의 수난?으로 입증된다.

 

궁극적으로 앎은, (아니 모든 것은) '현상'으로 겪는 과정에서 실체화 된다(보다 정확하게는 대상화를 통한 주관적 실체화, 즉 나와 대상 : 세상).

 

 

"대상들을 알기 위해서는 주체로서의 개체는 대상에 영향을 미치고, 그럼으로써 그 대상을 변형시켜야 한다. 그는 대상들을 옮겨놓기도 하고 연결하기도 하고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시키기도 하고 다시 모으기도 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감각동작적인 활동(밀기·당기기 등)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지적 조작에 이르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행동을 내면화하게 되어 정신적인 수행(같은 것끼리 묶기, 차례대로 놓기 등)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지식은 활동 혹은 조작, 즉 변형과 연결되어 있다."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 브리태니커

 

 

 

2.

앎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는 "모사" 설명들(정확한 용어나 기표가 아닌)이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의미 전달을 위한 매개체의 한계 ---- 글.말 자체, 전달자수준, 상황

 

cf. 달과 손가락

 

cf. 건축디자인(건물외관) = 의미전달의 도구/수단 으로 파악하는 관점에 있어서의 의도의 투명성? 그리고, 의도된 합리

 

 

cf...." 우리가 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만이 가장 명확하다."

 

 

ref. '애매모호성'?  ambiguity  논의

 

 

 

 

 

3. 인정하다. 동의하다.     consent

 

cf. Habitus  로부터,

나아가  동의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경계 구별

 

 

 

 

 

4. 믿다(信)?   신념,  윤리?

 

cf. 신해수지 에서.

판단하다 - 가치를 결정짓다  방향의 설정하다

 

 

윤리학 이 논리적 사유에 근거하였다고는 하지만   행위의 근거로서의 역할을 굳이 못하는 이유는?

 

cf. 생각해보기 :  생태적 윤리강령 등이 종교적(i.e. 교조주의적) 성향을 띄게 되는 이유.

            (esp. Deep ecology)

            --> 영성생태론, 지구가이아이론 등 에 대한 이해와 한계에서 출발하는 생태윤리

 

 

 

Christoper D. Stone,  생태(환경)윤리학적 논의들의 한계   ; 권혁길, 생태윤리학의 다원론적 접근에 관한 연구, 국민윤리연구, 2005, 제58권, p.19~

 

1)  "인간"의 의식과 선호에 호소하게 된다. 나무, 송어, 갯펄 등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인간!   결국은 인간중심주의적 해석에 머무르는.

 

2) 기초의 불확실성 ; 윤리학적 근거를 이성/지성적으로 알기 쉽게 표현한다해도, 행위의 준칙으로서 합리적 근거가 될 수 있느냐의 문제

 

3) 추구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의무로서?  누구를 위해?  경계지음의 부재 인식 ; 자연의 입장이 아닐 수 밖에 없는 윤리적 도덕적 견해의 경계는 어디?

 

4) 인간 상호간의 도덕적 의무와 권리에서처럼, "산"은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 인간과 자연은 동등한가?

 

5) 분류의 딜레마 ; 도덕적인 것은 어떠한 것?  나름의 인식의 틀이 존재하고 그 경쟁하는 선(The Goods) 중에 어느 것에 더 도덕적 무게를 둘 것인가?  비중두기의 문제 (e.g. in 인간 vs 자연적 선)

 

 

3+5 에서 e.g.  행복의 느낌에 대해 : 

 

추운 날 따듯한 차를 마실 때 /  사랑하는 어린 딸이 뛰 노는 것을 볼 때 / 일을 성취한 만족감이 들 때 등

 

 우리는 분명 이 행복한 느낌을 각각의 순간, 경우에 다르게 구별되는 실체(개념화된 행복 이전)로서 느끼고 있지만, 각각 다른 그 느낌을 어떠한 구체적 틀로 구분하고 있지 못하다. 각각의 경우마다마다에 맞는 행복의 색깔을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각각의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는 다른 느낌의, 그러나 도구의 부족(?)과 인지않음(?)으로 인해  늘 같은 단어로 행복(감)이라고 부르고 있는. (실제 인지심리학적 접근 들에서는 특히 인공지능 연구에 있어, 이러한 구분되는 느낌들조차 우리 인간의 도구 - 과학으로 규명될 수 있다고 여기며, 그렇게 되어야 보다 인간에 가까운 존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한다.)

 

 

아 행복해~

로 표현되는 것은.

굳이 구분하자면 왜 행복한지의 상황설명을 보태야 되는.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상태나 상황에 따라, 마다마다에 적합한 단어(definition)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앎의 추적과정에서 보았듯이 예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백과전서파  식의  소위 '앎의 진화'라면 그러한 지향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리라는 것.

 

다시말해,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알기 위해서는' 그 깊이나 범위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동의/공유된 '도구'가 있어야 함에는 일차원적으로 동의 가능하지만, 이는 소위

 

구체적으로 정의 할 만 큼  우리가 '대상'에 대해 속속들이 상세하게 '알 수 있다'는 '기대'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실제 그렇지는 않다는 것. 또한 이 것과 관련하여 전 후에 관여되는 수없이 많은 레이어들, 시간에 따라, 경우에 따라 지표에서 제외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 '속속들이'  "통제가 가능하다는 환상"과도 같은 그 것.

 

실제 사례에 당면해서, 상정하게 되는 이 판단 또는 앎을 위한 '지표' 선택의 수준을 볼 때 이는 보다 명확해 진다.

 

예를 들어 '자연(구체적 대상 ; 자연?   바다, 들,  산?  특별한 나무, 특정장소의 송어?)을 위하여' , 어떤 가치(느낌)가  다른 가치(느낌)에 비해 우선되어야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경우, 그 판단을 위한 근거가 되는 어떤 기준을 설정한다라고 할 때, 특정 지표를 설정하게 되는 이유로써 해당 경우에 한해 동의된 판위에서 설정됨(특수성 기반)은, 즉, 소위 한계, 경계 자체가 근원적으로 일반화하여 이해/동의한다는 사실이 불가능하며, 위에서처럼 다원론적이 될 수밖에 없는 앎 자체의 불분명, 불명확성에서 기인한다라고 이해될 수 있다.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대상에 있어서도 그 위계 수준만 차이날 뿐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왜"  의 문제에 있어서의.

 

이는 환경윤리에서 딜레마 처럼 다루는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착한 사마리아인' 의 예처럼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실체화 하여 거론하기를 꺼린다.

 

 

따라서, 실제 앎의 대한 탐구에서 구하여 앎이란 이것이다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그것이

 

오로지

 

에서 출발하며

 

공유된 판의 상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 뿐.

그것은 앎이라는 것이(알음알이, 바깥 경계로의 앎), "대상에 따른다"고 하는 관점의 원류와 이 후 전개를 따져들어가지 않더라도, 주체와 객체의 분리에서 기본적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앎이란  "관계" 에서 기인한다.

 

관계에로의?

관계짓기의

욕망.

 

'연결' 되고자 하는

 

연장시키려는

 

 

 

 

 

5. 행동하다.  

  특히 :  무리짓다.  - 

 

 

'나'를 어떤 상태에 두다 ;

동의된, 공유된 설정에의 지향 :

혼자 있을 수 없슴 - 앎의 출발에 웅크린 '그 무엇' = 최종적 현상이 차라리 반증

 

 

 

내가 알고 있는 것

= 공유된 틀로서의

= 그 반감으로서의

 

설정된 '판'일 뿐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cf. 2007, MBC 기획다큐  '미래'

 캐빈 워릭  : 

"우리는 이제 기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이며, 따라서 기술과 합체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자"

 뇌의 구조, 마음 등의  뇌과학적 근거, 인지심리학, 신경공학적 성과 등을 통해 알게 된 사실, 가정 들에 의해,  "의식" 이 이성적 지식 거리로 해부될 수 있다면,  로봇과의 경쟁 또는  자연으로의 회귀에서 고민하지 말고, 당당히 스스로 사이보그가 되어 인식의 지평을 넓히자.

 

 

 

 

 

 

내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듯한 세상

현상으로서의 '행동' 차원에서야 인지하게 되는.

 

 

 

 

 

 

- Further -

 

** 역사의 전개에서의 앎의 진화?  앎의 대상?  앎의 갈구 이유?

ㅁ 철학 : Idea 본질에 대한 근원적 사고하기, 사고하기를 좋아하는, -  그리스 / 로마 시기  : 이성

ㅁ 중세 : 신학적 섭리를 앎,  신의 섭리를 파악하는 이성 (인간만이 부여받은)

ㅁ 르네상스 후 :   과학적 방법론 대두

ㅁ 종교 -  과학의 분리  양상  - sub ject  대상화 객관화 외부 지향, 나와 분리하여 떨어뜨리기

           점차 과학적 방법론 내부에서 세분화 진행

16세기  천문학

17세기  물리학

18세기  화학

19세기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

 

 

 

*** '앎'의 과정에서 연기적으로 구별, 구분되는 주체와 객체

 

나   vs. 객체(너, 자연, 사물...)

 

나 의 실체   vs.  나 의 이미지

 

cf. differance

 

 

**** 실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형상과 질료 - 본질과 모방

실재하는 실체로서의 본질이란 존재하는가?

 

cf. 현상 , simulacre :

 

 

***** 스스로?  스스로 그러하다? 

cf. emergence

 

cf. 'the one'  vs  'the others'

 

 

-지음(相) : 인지, 있음을 알다. 개념 짓다.  구분하다.

-있음(作) : 존재. 만들다.  만들 줄 알다.

-받아들임(受) : 인정하다. 믿다. 행동하다.

 

 *** 앎 이란 단지 이성적인 것인가?           데카르트 비판 연계

 

 

** KANT 식 미학(적) 접근 이 있게(근거를 가지는) 되는 이유로서  그 전과의 차이 ?

 

 

 

**** futher : 현상학적 한계 ; 딜레마 ; 인지하는 순간 / 지칭하는 순간

 

 

 

 

 

 

 

 

--- 베레나 슈타이너, 전략적 공부의 기술, 2005, 131-133

 

1. 명제적 지식 : A=B; A의 정의는; 유형은; ...

 - 사실을 알아내기

 - 내용의 이해

 -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가려내기

 

2. 응용지식 : 복합적 문제 또는 관련 문제들의 상관성을 파악하고, 해결책에 대해 사고할 수 있다.

 - 과제해결

 - 분석

 - 응용

 - 지식의 전달(가르치기)

 - 범주화, 재조직

 - 심도 있는 이해

 

3. 전문지식 : 작은 차이를 구별하고,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파악+ 표현+종합적사고를 통하여 해결책을 제시 할 수 있으며, 파편적 지식정보를 종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며, 행동하여 현실화 시킬수 있다.

 - 문제를 알아내고 해결하기

 - 작은 차이를 알아내기와 분류하기

 - 종합

 - """" 새로운 지식의 창조"""""


더보기
일원론 / 이원론    // 다원론 

 

<< 존재에 대한 사유

 

본질의 반영  -  가장 이해쉬운  '원의 이데아'

 

모형, 모방으로서의 존재 : 실체의 분리

 

실체, 본질을 볼 수 (알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에서 출발하는 에피스테메. 그 동류의 '신성'의 상정. 

 

 

> 고정화 ; 단순화 '시키기' : 관찰을 위한 대상의 상정,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아 메어놓고(순간) 세심하게? 뜯어 보다  > 개념 1의 생성, 개념 2의 생성, 개념 3의 생성 / 범주1 의 생성, 범주 2의 생성...  / 개념 :개념, 범주 : 범주, 개념 : 범주, 개념*범주 : 범주, 개념 : 범주* 개념..... 소위 "변형"

 

>> '이름' 붙이기 (가장 쉬운 존재론의 예?)

 

 

유정 무정

 

데카르트   '연장하는 것'의 인정 이유

 

 

 

cf. propaganda ~!

무리짓기 단계 부터 시작되는 존재/현상 차원(소위 객관적/합리적)에서 떠나는 "지속되는" 나.

 

 

 

 

<< 인식의 인정과 으로서의 한계

 

존재에 대한 직접적, 직관적, 직지  의 관점은 있을 수 없다는 한계

존재를 보는(대해 생각하고 정의하고.....하는) 단계 모두, 그것 자체가 인식의 과정임을 인정 / 동의

 

'실험'을 통해 온전히 객관적 존재 상태가 구현 가능하다고 해도

실체는 어디까지나 '인식 내에서의 실체'일 뿐

 

 

 

 

슈뢰딩거의 고양이?

 

아이러니컬?

이런 이유로 실제 실험을 통해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이미 "보고자 하는 바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조건 의 설정과 변화를 관찰하는 방법론으로는 '알아챌 수 없다.'

 

이미 "존재하는" 이 세계를 뒤흔들 힘을 얻기 전까지는.

 

 

 

 

 

알고자 하는 , 알고 싶은 욕구 의 상정 - 인정 . 동의 에서 부터 솔직해지는

인간이 스스로를 '파악'하는 신성의 자리에서 끌어 내려 놓기 전까지는.

 

승부심. 힘에 대한 갈애가 어느 수준에나 있슴을 알아차림은

곧 '하심'이 원래자리임을 아는 것

 

 

만일 양자물리학에서의 세계보기가 끝맺는 날이 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