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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經 : 불경의 의미 분류 종류 등

GraU 2007. 3. 1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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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경전/불경: 


불교경전의 분류

 

부처님 때로부터 1,000년을 내려오면서 성립된 그 수많은 경전을 효과적으로 접하므로써 믿음을 얻고 사상과 도덕적 규범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 경이 성립된 시기작자와 성립된 장소를 아는 것이 불교의 발전과정에서 그러한 문제들의 수용과 관계가 있으므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이 경명(經名) 위에 불설(佛說)을 부쳐서 작자가 부처님임을 표방하고 있고 따라서 설해진 장소도 부처님 때의 장소이며 설해진 시기도 부처님 때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을 정확히 알기란 어렵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불경을 어떻게 일정한 기준 위에서 정리하여 일반이 효과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경 자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성립되었다고 밝히고 있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성립된 시기와 장소의 2가지 점에 맞추어 불경을 구분할 수는 있다.



첫째, 불경이 언제 성립되었는가 하는 시기를 따라 구분하면, 


아쇼카왕이 통치하던 마우리야왕조(王朝 B.C.317~B.C.180) 이전의 불경과 마우리야왕조 시대의 불경, 굽타왕조(270~470) 시대의 불경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이 같은 구분은 우리 나라에 전해진 한역경전에 대해서도 동일한 구분의 방법을 적용할 수가 있다.



둘째, 불경이 성립된 장소를 기준으로 해서 구분할 수가 있다. 


인도에서 성립된 경, 그 중에서도 어느 지역에서 성립되었는가를 기준해서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며, 중국이나 티베트에서 성립된 경우를 기준 삼을 수도 있다. 


특히 중국의 한역경전 가운데는 인도경전의 번역이 아닌 중국에서 성립된 위경(僞經)이 많이 끼어있어 더욱 경이 성립된 장소를 기준으로 한 구분은 의미를 지닌다.




아함경전(阿含經典)과 대승경전


이같이 언어를 기준으로 했을 때, 불경에 대한 현저한 구분 가운데, 원전의 위치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즉 오늘날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라고 말해지는 남방불교(南方佛敎)에서 숭상되고 있는 파리어 경전과 티베트와 중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대승불교를 표방하는 북방불교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범어경전은 각각 전혀 다른 족적(足跡)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전해진 한역경전은 그 원전의 대부분이 범어이고, 모든 번역이 그러하듯이, 번역은 그 나라의 문화의 경향이 반영되고 그로 인한 의도적인 번역은 물론 그들의 언어 체질에 맞는 의역(意譯)을 하기 때문에, 중국인의 그러한 번역이 그대로 우리에게 이입(移入)된 점을 감안할 때, 문화적 식민화를 부정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한역경전이나 한역경전을 준역한 우리말 경전을 대할 때는 이러한 점에 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져 수많은 불경이 번역됨에 따라서 중국불교계는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 수많은 경전을 부처님이 어떠한 순서로 설했는지 알 수 없고 또 어떤 경전이 보다 중요한 경전인가 가늠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당혹감은 불경의 중국적 이해를 하는데 기초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때, 중국적 해답을 한 대표적 인물이 천태 지의 (天台 智 538~597)이다. 

그는 오시(五時)의 교판(敎判)이라는 기준을 세워 중국에 전해진 불경 전부를 부처님 일대에 설한 가르침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다섯 가지 시기로 나누었다.


1. 화엄시(華嚴時) 

화엄경을 설한 시기로서 성도(成道) 직후로부터 21일간의 시기.


2. 녹원시(鹿苑時) 

원시경전인 아함경을 설한 시기로서 화엄시 이후의 12년간.


3. 방등시(方等時) 

방등이란 대승의 다른 이름으로서 유마경, 금광명경, 승만경등의 대승경전을 설한 8년간.


4. 반야시(般若時) 

반야경군(般若經群)을 설한 22년간.


5.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 

법화경을 설한 8년간 

열반경을 설한 하루 낮과 밤의 기간.



그러나 이 같은 구분은 세존이 성도한 때에 사유한 내용을 밝혔다고 하는 화엄경을 제외하고, 아함경으로부터 순차로 중생이 이해도를 높여가는 도식으로서 법화경의 우월성을 나타내고자 한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대중, 글  박경훈(역경원 역경부장), 1989년 2월)



 



 

 https://tip.daum.net/question/56327299?q=%EB%B6%88%EA%B2%BD%EC%9D%B4+%EC%84%A4%ED%95%B4%EC%A7%84+%EC%88%9C%EC%84%9C


제5장 대승불교   불교학개론 p.121~




1. 대승불교의 일어남

 

 석존의 교설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근본교설이다. 

따라서 불멸후 곧 행해진 결집(경전의 편찬회의) 때에도 계율과 함께 그 근본교설이 제일 먼저 편찬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현역으로 전해지는 4아함과 남방불교에 팔리어로 전해지는 5니카야는 바로 이러한 교설을 결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을 아함의 교설이라고 부른다.


  불교 교단은 석존의 입멸후 약 100년간은 '일미화합'하여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러나 100년 쯤(B.C.E. 4세기) 되어서는 

계율과 교리에 대한 엇갈린 견해가 발생하여 


교단은 마침내 보수적인 상좌부(테라바다)와 진보적인 대중부로 분열한다. 

이것을 '근본이부의 분열'이라고 하는데, 


일단 이렇게 분열이 생기자 이로부터 다시 세부 분열이 뒤따라 


먼저 대중부에서 8파, 계속해서 상좌부에서 10파가 갈려나가 

B.C.E. 1세기 경까지에는 총 20부파의 형성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 시대(불멸후 100년경~B.C.E.1세기경)의 불교를 '부파불교'라고 부르고 

그 이전을 '원시불교'라고 부른다.



  부파불교 시대의 각 부파는 아함의 교법에 대해서 전문적인 연구를 행하였다. 


석존의 교설은 사람들의 근기를 살펴 그에 알맞은 법을 설해갔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산만하고 단편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이제 그러한 교설을 분석하여 체계화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부파불교 시대의 그러한 연구를 아비달마 교학이라고 부른다. 


'교법(달마)에 대한(아브히-) 연구'라는 뜻에서 '대법'이라고도 번역된다. 


뿐만 아니라, 각 부파는 자신의 


아비달마 교학의 성과를 결집하여 

경(수트라) 율(비나야)과 함께 성전으로서 간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경 율 론 삼장(트리-피타카)의 성립은 

부파불교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파불교의 이러한 아비달마 교학은 아함의 교설을 체계화하는데에 큰 기여를 하였지만 반면에 석존의 교설을 아함에 한정시키고 번쇄한 훈고학적 해석으로, 

그것을 더욱 난해하고 무미건조한 불교로 만들어 갔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무위열반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이상적인 인간상은 그러한 열반을 증득하는 아라한으로 인식되었다. 

전문적으로 교학을 연구하여 철저하게 수행하는 출가승이 아니고는 이제 불교를 제대로 행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부파불교가 이렇게 대중화를 등한시하고 있을 때, 

교계의 한편에서는 석존이 뜻한 불교의 진정한 정신을 되찾으려는 사상운동이 발생하였다. 


이것을 대승불교(마하야나) 운동이라고 부르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한 

재가자인과 혁신적인 출가인(대중부계통)의 지도층이 그 추진세력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열반을 추구하는 아라한의 길을 '소승(히나야나)'이라고 비판하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자리이타적인 보살(보드히사트바)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부각시켰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이제 열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불에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석존이 베푼 교설의 진정한 뜻이라고 그들은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석존의 그러한 뜻을 담은 교설을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소위 대승경전으로서 B.C.E. 1세기경부터 그러한 문헌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초기 경전으로 중요한 것은 반야경, 법화경, 십지경, 무량수경, 유마경 등을 들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경전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결집되었는가는 확실하지 않다. 그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부파들이 정통파의 권위를 내세워 그러한 경전들을 불설이 아니라고 배격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급속도로 인도 사회에 퍼져 나갔고, 경전 또한 줄기차게 성립, 유통, 증관될 뿐이었다.


  대승경전은 이렇게 성립이 모호하고 소승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문제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전적으로 석존의 교설이 아니라고 배격할 수는 없을 것이다.사상적 차원은 아함교설보다 위에 있지만 그러한 차원의 이론적 근거는 역시 아함에 두고 있는 점으로 보아, 대승불교는 아함 교리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석존의 교설은 원래 중생들을 점진적으로 성숙시켜 가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하는 방편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대승경전의 원시부분만은 석존의 친설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종래는 대승불교를 소승불교와 확연히 구별해서 소개하는 것이 통례이지만, 본서에서는 아함과 초기 대승경전의 교리를 하나로 묶어 불교의 근본교설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ccm9922/100157071478 : 경명해설 카테고리 참조





불경의 종류와 이해


출처: 네이버 블로그: 'via Blog this'

 원문 홈페이지에  각각의 경에 대한 설명내용의 출처를 밝히지 않아,

최초 원전은 알수 없어, 본 원문의 홈페이지 이름만 표기함.

 

개괄적 이해도모를 위한 것으로, 참조용. 

모든 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님을 미리 밝혀둠.

 

 

 

 

 

 

불경의  개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잘 쓰고 있는 무슨 무슨 경(經) 할 때의 경은 본래 지구상의 위치를 표시하는 좌표의 하나인 경도(度)에서 온 말로서, 이것이 직물(織物)의 날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실제로 날(날줄, 세로 ; 씨줄-가로)을 보면 그 모양에 있어서 쭉 뻗어서 똑바르기 때문에 이를 우리 생활 속의 교훈에 비유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이와 같이 경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교에서 사용하는 경전이란 그 내용이 긴 것이든지 아니면 짧은 것이든지 간에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말씀으로써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또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마치 실(絲)로 꽃 등을 꿰어서 화환을 만드는 것과 같이 온갖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자각한 뒤에 진리 그 자체를 설하신 것이 경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다 해도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불교에는 수많은 경전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데, 그 내용을 흔히 8만 4천 법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한 중생들의 번뇌의 숫자와도 일치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부처님께서 이 모든 번뇌에 대하여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알맞은 말씀을 일일이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많게 되었다는 것이다. 1

 

 

이 속세에 살고 있는 우리 중생들은, 무지와 편견 및 아집 등으로 인한 분별력으로 말미암아 번뇌를 일으키는데 그 가지 수가 모두 8만 4천에 달하다고 하며, 이에 관하여 일일이 그 해결책을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에 흔히 부치님이 평생 동안에 하신 말씀을 일컬어서 8만 4천 법문이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현재 합천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8만 대장경은 소장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모두 부처님 말씀의 전부라는 것을 우리에게 암암리에 전하고 있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법문이지만 그것의 대강을 간략하게 알 수 있는 것이 다름아닌 사성제설(四聖諦說)이며, 그것을 또한 내용에 따라서 몇 가지로 분류하여 검토할 수도 있는데, 이를 본연부(本緣部), 아함부(阿含部), 반야부(般若部), 법화부(法華部), 화엄부(華嚴部), 보적부(寶積部), 열반부(涅槃部), 대집부(大集部) 및 경집부(經集部) 등의 9부로 나누는 것이 그것이다. 2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는 그 분의 일률적이고도 지혜로운 말씀 때문에 법에 대한 이의(異意)가 없었지만, 돌아 가신 직후부터 교단 내의 일부 동청이문자(同聽異聞者)들에 의하여 불법(佛法)이 오도되고 쇠퇴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많은 비구들이 모여서 편찬회의를 하여 만든 것이 오늘날의 경전의 효시이다. 3

 

 

 

 

 

 

 

불경의  종류

 

 


 

금강경(金剛經)

 

 

  금강경은 교종인 三論이나 법상, 화엄, 천태 등뿐만 아니라 선종에서도 근본 경정으로 삼는 중요한 경전이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일찍이 하택 신회가 그의 어록에서 이 경전을 가리켜서, “일체행은 반야바라밀행이니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최승 제일이다.”라고 하였으며 육조단경에서도 [이 경을 지니면 곧 견성하여 반야 삼매에 들게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 經名은 돌 중에서 금강석이 모든 것을 끊을 수 있는 것과 같이 가장 단단하고 완벽한 반야의 지혜로 피안에 이를 수 있으며, 모든 집착과 분별심을 단멸하는 데 있어서 가장 뛰어나다는 의미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이 경전의 한역은 여러 번에 걸쳐서 이루어졌는데, 최초의 것은 후진의 구마라집이 402년에 번역한 것으로서 이는 현장이 번역한 대반야경의 600권 중에서 제9회 제557권인 능단금강분의 별역으로 능단금강반야밀경 또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하며, 줄여서 금강반야경 혹은 금강경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특히 이 경은 인도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널리 수지 독송되어 그 주석서만 해도 800여 종에 달했다고 하며, 금강경오가해라고 하여 구마라집의 한역에 양나라의 부흡과 당나라의 혜능과 종밀 및 송의 야보 도천 등 5인이 주석한 내용을 엮은 주해서가 유명하다. 또한 금강경은 그 발행 시기가 대략 서기 150년에서 200년 경으로 추측되어서 대승불교의 초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에서는 대승이나 소승과 같은 술어를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흔히 반야부 경전 계통에서 살필 수 있는 空사상 등이 서술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소승과 대승이 격렬하게 대립되기 전에 유포되었던 대승 사상을 함축한 경전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전은 또한 이 보다 먼저 설한 것이 화엄과 아함 및 방등경류요, 뒤에 설한 것이 법화․ 열반경류이므로 오시에서 본다면 한 중간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와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전에 설한 것은 세간법으로부터 출세간법으로, 속제에서 진제로 들어가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즉 불과 유에서 유로 가는데 지나지 않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유를 파하고 공을 나투며, 상을 떠나서 성을 밝히어 무상(無想)의 종(宗)과 무주(無主)의 체(體)를 세우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중생계의 현실 세계로부터 열반의 이상 세계로 가는 관문이 있는데 이 관문을 통과하는데는 오직 지혜가 필수 불가결로서 중요한 시기와 지위에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때에 맞추어 설하셨다는 것이다.

 



금광명경(金光明經)

  여러 가지의 대승경전 중에서 이 금광명경도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경전이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기사굴산에 계시면서 신상(信相)보살과 견로지신(堅牢地神), 사천왕(四天王), 대변천신(大辯天神) 및 공덕천(功德天) 등에게 이르시기를, 부처의 수명은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한량이 없음을 설하고, 이 경전에서 설파된 내용은 미묘하기가 그지없어서 여러 경전 중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이를 최승왕경(最勝王經)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경전은 그 빛나고 찬란한 내용이 마치 금(金)이 그러한 것과 같으므로 이를 또한 금광명경(金光明經)이라고도 했다는 것으로써, 이와 같이 두 가지의 의미를 함축해서 금광명최승왕경이라고 한 것은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능가경(楞伽經)

 


   능가경(楞伽經)은 선종(禪宗)에서 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 개립된 법상종(法相宗)에서도 그 교리의 내용 때문에 소의경전으로 여기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 이 경이 처음 성립된 것은 대략 기원 후 4백 년쯤으로 추정되는데, 중국에 전해진 것은 유송(劉宋)시대에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번역한 4권본의 능가아발타라보경(楞伽阿跋陀羅寶經)이 효시이며, 그 후로는 10권본으로 된 것과  7권으로 된 것이 유행했는데, 그것은 위(魏)의 보리유지(菩提流支)가 번역한 입능가경(入楞伽經)과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대승입능가경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4권본의 이 경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일실되어버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 능가경이 그 내용에 있어서 여래(如來)의 심지(心地)를 요약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일찍이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이를 그의 전법제자인 혜가(慧可)에게 전수했다고 하며, 이 경을 수지하고 다니면서 교리의 심요(心要)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수행의 근원을 여기에서 찾았다고 한다.
  이 경의 구성에 있어서 4권본에서는 서분과 유통분이 생략된 형태이며, 10권본에서는 청불품(請佛品) 등 총 18품이 설해져 있고, 7권본은 무상품(無常品) 등 10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이 제일 범본(梵本)에 가까운 번역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경이 성립될 당시에 대승불교가 직면하고 있던 여러 가지의 문제점들을 광범위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내용에 의하여 그 당시의 불교계의 사정을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다소 산발적으로 복잡하게 이들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안목에서 능가경의 교설의 목적에 대하여 상당한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는 편이다.
  대체로 이 능가경은 부처님께서 대혜보살(大慧菩薩)을 상대로 말씀하실 때에 대승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설하신 것이 아니라 각 품이 별개의 독립된 성격의 내용을 담고 있는 형식을 취한 것이 특색이라고 하겠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불교 제 학파의 학설들을 풍부하게 채용하여 그것들이 어떻게 종교적인 체험과 일치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있는 점에서 또한 매우 귀중한 경전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것이다.

 




능엄경(楞嚴經)

 


   일반적으로 경의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문장이 명쾌하고 그 요지가 또한 불교의 전반사상을 거의 모두 섭렵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널리 수지독송되고 있는 이 경전은, 그 원명이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普薩萬行首楞嚴經)이라는 다소 긴 이름이다. 그리하여 이를 대폭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이라고 하거나 그냥 대불정경, 수능엄경 내지는 능엄경 등으로 약칭되고 있는데, 특히 이 경전을 일명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陀大道揚經)이라고 할 때는 인도의 중부지방에 자리잡고 있는 아란타사라는 옛불교의 교학 중심지를 기점으로 하여 거기에서만 이 경전이 유행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불러진 것이라고 한다.
  능엄경이 중국에 전래된 것은 다른 경전보다 훨씬 뒤의 일로서, 당시 중인도의 나란타사에 비장되어 오던 것이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는 인도에서만 유통될 것을 역대 왕이 명령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이 경전은 당나라 이전까지는 전래되지 않고있다가 중국의 중종(中宗) 신룡(新龍) 원년(705)에 와서 중인도의 승려였던 반랄밀제(般剌密諦 : 極量)에 의하여 도입되었고, 또한 그에 의하여 한역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전에 관한 주석서로는 송나라 이후의 것들이 보이는데, 그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면,
  ① 인악(仁岳)이 지은 능엄경집해(楞嚴經集解) 10권(1095년)과,
  ② 계환(戒環)이 지은 동 요해(要解) 20권(1127년)과,
  ③ 함휘(咸輝)가 지은 동 의해(義解) 30권(1172년)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저술되 것으로는,
  ① 고려 때 보환(普幻)이 능엄경신과(楞嚴經新科) 2권과 수능엄경환해산보기(首楞嚴經環解刪補記) 2권을 지어서 현재까지 이것이 전해지고 있으며,
  ② 조선시대에는 유일(有一)이 동 사기(私記) 1권을 짓고, 또한
  ③ 의첨(義沾)이 역시 동 사기(私記) 1권씩을 지어서 유통시켰는데,

  이 가운데서 보한의 산보기(刪補記)는 송나라의 계환이 지은 요해(要解)의 잘못된 곳을 지적하여 이를 고쳐서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조선의 세조 때에 설치된 간경도감에서는 역시 이 계환의 요해를 언해했는데, 이 언해본을 해인사의 강원에서 영인하여 보급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이 능엄경은 그 구성과 내용이 어떠한가 하면, 먼저 구성에 있어서는 서분과 정종분과 유통분으로 나누어진 가운데, 처음 서분에서는 부처님의 제자였던 다문(多聞)제일의 아난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내용이고, 다음의 정종분에서는 그와 부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여러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이의 내용이 그 이하에서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정종분을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눈 가운데,
 

 제1권에서 4권의 중간까지의 견도분(見道分)에서는 허망한 마음을 버리고 본래의 진심을 찾게 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어 4권의 중간에서 7권의 중간까지인 수도분(修道分)에서는 우리 범부들은 대개 번뇌의 발생이 육근(六根)의 분별로 말미암아 일어나므로 이들의 행상을 끊는 방법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 중요한 덕목을 보면 3무루학(無漏學)을 닦거나 4율의(律儀)를 지키거나 다라니 등을 암송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뒷부분부터 8권의 중간까지는 증과분(證果分)인데, 밝힌 수도법에 의하여 얻어지는 55가지의 단계를 설명한 것이고, 다음의 결경분(結經分)도 역시 이 8권의 중간부분에 설해져 있는데, 그 내용운 경전을 끝맺는 부분으로써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지옥, 아귀 등의 7취(趣)가 어떻게 생기는가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제 10권까지의 부분인 조도분(助道分)에서는 더욱 이를 강조하여 변마장(辨魔章), 즉 수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갖가지의 마군들을 변별(辨別)하여 이를 퇴치하고, 아울러서 온갖 장애와 난관들을 극복하는 방법 등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능엄경은 어느 때에 아난다가 마등가(摩登伽)라는 기녀(妓女)의 주력(呪力)에 의하여 마도(魔道)에 떨어지려고 하는 것을 부처님이 이를 신통력으로 구제한 후에, 중생들에게 선정과 다라니 등을 닦거나 암송할 것을 권장하고, 또한 이에 의하여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나면 여래의 진실한 지견을 얻어서 생사의 미계를 벗어나게 된다는 법문을 설하고 있는 것이 그 주요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대반야경(大般若經)

  이 경도 다른 반야부 경전과 같이 공(空)사상을 천명하고 있으며, 육바라밀 중 특히 반야바라밀을 강조하고 있다. 반야(智慧)는 佛母이며 육바라밀의 원천이어서 일체의 불법이 반야로부터 유출되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성취함으로써 육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으며, 육바라밀을 성취함으로써 일체지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살차니건자소설경(大薩遮尼乾子所說經)

  바가바(婆伽婆 : Bhagavat, 世尊ㆍ衆祐)께서 어느 때에 울사연성(鬱闍延城)에 계실 적에 엄치(嚴熾) 왕의 동산에서 머물면서 문수사리법왕보살과 방편으로 시현(示現)한 외도 대살차니건자(大薩遮尼乾子)를 통해서 말씀한 보살행방편경계분신법문(菩薩行方便境界奮迅法門)이 주된 내용이어서 이 경을『보살경계분신법문경』이라고 하지만,『대살차니건자수기경(大薩遮尼乾子授記經)』,『문수사리소설경(文殊師利所說經)』,『살차니건자소설경(所說經)』이라고도 한다.
  또한 법문의 내용에 따라서 여래심비밀장(如來深秘密藏)ㆍ여래구족공독(如來具足功德)ㆍ여래심심경계(如來甚深境界)ㆍ설일승(說一乘)이라고도 일컫는다. 왜냐하면 법문의 내용이 여래 소유의 공덕과 일승의 수승함과 국왕(國王) 및 보살의 법행(法行) 등에 대해서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집경(大集經)


 『法華經』과『華嚴經』처럼 각광을 받지도,『無量壽經』이나『大日經』처럼 하나의 종차를 형성하지도 못했지만,『大集經』은 중요한 대승경전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원래의 명칭은『大方等大集經』이다. 범어로는 ‘mahāsaṃnipāta sūra’이고, 티벳어로는 ‘duspa chen po’라고 하는 경이다. 경명에서 方等은, 널리 일체의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方이고, 고르게 모든 가르침을 설하기 때문에 等의 뜻을 가진다. 이 방등은 초기와 중기의 대승경전의 경명을 장식한 형용사라고 할 수 있다. 『大方等타라니경』또는『大方等대운경』등 5세기 경 중국에 다수의 이와 같은 종류의 경전이 전래되었다.

  천태대사는 오시교에서 방등시를 화엄시, 아함시 다음, 반야, 법화열반시 전의 제3의 설법시로 시설하고 있다. 이 방등교를 현시하고 있는 것으로『유마경』,『능가경』,『승만경』등을 들 수 있다. 대정신수대장경에서는 방등부에 속하는 경전 중에서『대집경』을 별도로 대집부로 분류하교 있다.


  대집경은 초기와 중기의 대승불교의 기본적 성격 [방등경]과 이것과 구분되는 특수한 성격[대집경]을 띠고 있는 경임을 알 수 있다.



 

밀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

  ‘밀린다의 물음’으로 번역될수 있는 빨리본 밀린다판하(Milindapanha)가 ‘밀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이다. 한역본으로는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으로 번역되었다. 한역본은 소두에 언급되고 있는 두 사람의 전생이야기 중에서 나선비구가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에 ‘나선비구경’ 이라고 한 것이고, 빨리본은 밀린다왕이 중심이되고 있기 때문에 ‘밀린다판하’라고 한 것이다.


  한역본에서는 ‘경’으로 되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이것은 경으로 분류될 수 없다. 따라서 빨리본에서는 ‘pañha(물음)’라고 했고, 스리랑카에서는 이를 빠리 삼장속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이 책은 기원적 2세기 후반에 서북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인 국왕인 밀린다(Milinda)와 유명한 불교 논사인 나가세나(Nāgasena)장로가 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마침내 왕이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성취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밀린다왕은 불교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그리스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경’의 내용을 검토해 볼 때 왕의 질문은 아함경의 경설에 입각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질문의 내용도 불교의 경전과 교리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등의 몇 가지 이유에서 밀린다왕은 상당한 불교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은 그리스왕과 불교논사의 대론서로 알려져 있지만 ‘대론’이라고 할 수 없는 면이 많다. 경에서는 일방적으로 밀린다왕이 나가세나스님께 묻고 답하는 문답식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대론은 서로의 주장을 전개시키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논박하고, 상대방은 이를 반중하는 형식이 일반적이지만 이 경에서는 거의 그러한 면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대론서라기 보다는 일종의 문답서라고 하는 것이 훨씬 타당할 것이다.

  이 경은 크게 나누어 다음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밀린다왕과 나가세나장로의 전생이야기를 기술하는 서화,
  2. 두 사람이 3일간 대화를 계속하는 것으로서, 서로 사제가 되는 부분,
  3. 밀린다왕이 주로 불교교리상의 난문을 제기하고, 부처님의 말씀 중에서 모순되는 것을 지적하여 그 설명과 해석을 나가세나스님께 구하는 대화,
  4. 수행자가 지켜야 할 덕목을 비유로써 밝히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미륵경전

  부처님께서 아함경류를 설하시고 난 뒤, 즉 성도 후 13년부터 20년까지의 8년 동안 말씀하신 때를 일컬어서 방등시(方等時)라고 한다. 


이는 이 때의 말씀이 횡적으로는 시방세계에 두루하는 방광보편(方廣普遍)한 진실한 내용이며, 종적으로는 성인이나 범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가르침으므로 이와 같이 부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를 또한 대승경전을 총칭하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으며, 불교의 여러 경전 중에서 화엄경과 반야경ㆍ법화경 및 열반경류를 제외한 모든 경전류가 여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원전 1세기경부터 불교교단 내에서 소승과 대승불교가 서로 교리상의 문제로 다툴 적에 소승에서는 이 방등부의 경전을 가리켜서 말하기를, 


“너희가 지니고 있는 계율은 마왕이 설한 것이고 

우리들의 경율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것이다. 


여래는 먼저 9부 법인(法印)을 설하셨으니, 

이와 같은 9인(印)은 나의 경과 율을 인(印)한 것으로 처음부터 방등경전의 일구일자(一句一字)도 있다함을 듣지 못했다. 


여래소설의 무량한 경율의 어느 곳에서 방등경을 설하신 내용이 있는가? 

이와 같은 중에 아직 일찍이 10부경명이 있음을 듣지 못했다. 

그것이 있었으면 마땅히 알았을 것이다. 


필연코 조달(調達)의 소작(所作)이고, 조달은 악인이라, 선법을 없애기 위하여 방등경을 지었으나 우리들은 이와 같은 부류의 경전을 믿지 않나니, 이는 마왕의 설이기 때문이다.”


라고『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사정품(邪正品) 등에서 그 부당성을 말하고 있지만, 방등경, 즉 대승경전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대승경전, 즉 방등부의 경전 중에서 우리 생활과 친숙한 내용을 지니고 있는 미륵경전에 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먼저 미륵경전에는 3부경으로써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과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및 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이 있으며, 6부경을 말할 때는 이들 3부경과 더불어 관미륵보살하생경(觀彌勒菩薩下生經)ㆍ미륵하생성불경(彌勒下生佛經)ㆍ미륵래시경(彌勒來時經)을 합하여 통칭하는 것이다. 미륵신앙이 대승불교 사상에 연유된 것이지만, 앞서 편찬된 아함경과 뒤에 출현한 열반경과 법화경 등에서도 그 내용이 설해져 잇는 것으로 보아서 이 사상은 전 경전류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 같다. 미륵이라는 의미는 팔리어로는 Mettēya, 범어로는 Maitreya 인데, 이를 한역에서 자씨(慈氏)로 부르고 있다. 즉 ‘친구’라는 뜻의 ‘Mitra'라는 옛 인도 신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이 신은 ‘계약’과 ‘진실한 말’을 그 성격으로 하기 때문에 예언자적인 분으로 여겨져서 신앙되고 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다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구세주적인 성격을 띤 보살이 미륵보살인 것이다.


  따라서 말법시대일수록 자주 그의 강림을 갈구하는 신앙이 열렬하게 되어서, 일찍이 우리 나라에서도 이의 신앙이 정권의 과도기에 자주 일어났던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륵신앙에서는 상생, 즉 도솔천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보살신앙과, 미래불로서 중생들을 구제키 위하여 하생하는 여래불로서의 신앙 등 두 가지의 신앙 형태를 가지고 있다. 도솔천신앙은 중생들이 십선 등을 닦거나 미륵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면, 이 곳에 승천해서 오욕과 번뇌가 없고 청정하여 복덕이 풍족하는 등 더 이상 구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미륵은 자비의 화신이고 그 공덕은 무량하기 때문에 자기의 죄를 참회하거나 명호를 부르는 중생이 있으면, 이를 소멸시켜 주고 성취케 하며 감음해서 도솔천에 낳게 하지만, 적어도 삼악도 등에는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미래불신앙은 미륵보살이 반야와 원력의 화신이기 때문에 그 지향력도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적이다. 즉 석가모니불의 정법ㆍ상법ㆍ말법시대를 지나서 이 세계가 극도로 악화되면 큰 재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재변으로 말미암아 많은 중생들이 피해를 보지만, 인류는 옛날의 죄악을 반성하고 십선 등을 적극적으로 닦아서 복덕이 증진되고 수명이 연장되며 오곡 등이 풍성하여 금ㆍ은 등 보화가 쓸데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 미륵보살이 도솔천으로부터 이 땅에 강림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3회에 걸쳐서 중생들을 제도하여 구제한다는 것이니, 이는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각자들이 이 때를 맞이하여 스스로 미리부터 청정한 업을 쌓아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수행하는 것이 미륵의 세계, 즉 도솔천이나 현실에서 구원을 받게 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는 미륵불 자신의 수행이 있고, 그를 맞이하는 여건으로서 중생들의 청정한 세계가 먼저 그려지며, 끝으로는 석존의 법의를 이어받은 보처보살로서의 그의 성불이라는 것이다.
  먼저 미륵보살은 그의 수행으로서 미륵보살소문본원경(彌勒菩薩所問本願經) 등에 보면 십종법이 설해져 있는 것이다.

 

 

 

반야경 

 

  반야경류는 대체로 대승불교의 초기에 반야공관을 서설하기 위하여 베풀어진 여러 가지경전 중의 하나이다. 대승불교운동의 큰 조류를 말할 때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용수와 제바를 중심으로 한 중관학파(中觀學派), 즉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의 본질은 무자성(無自性)으로서 이를 공으로 파악하며, 일체의 지식과 분별심을 초월한 지혜(般若)를 강조하는 학파와, 무착과 세친이 주장하는 유식학파(唯識學派), 즉 사물의 실재를 공으로서가 아닌 有(假有)의 입장에서 마음의 전변으로 해석하는 두 학파를 들고 있다.
  이 때에 중관파에서 근본으로 삼는 경전이 바로 반야경이다. 이와 같은 반야경에 한 가지만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의 부류가 있는데, 대체로 원본은 범어의 8천송 반야경 이고, 이를 지루가참이 179년에 한역한 것이 소품반야경 중의 도행반야경 으로서 최초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 후 많은 번역가들에 의하여 티베트어 역, 한역, 영역, 불역 등 후대까지 40여 종의 반야경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에서 중요한 몇 가지의 경전만을 소개하면, 먼저 대반야경(大般若經) 으로서 반야부 계통의 경전을 집대성한 총서(最書)이다. 옛부터 진국(鎭國)의 경전이요, 인천(人天)의 대보(大寶)라고 하여 매우 귀중하게 다루어져 왔다. 그 성립 시기는 반야부 경전 중에서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699권에 달한다. 한역은 현장이 귀국해서 번역(660~663)했는데, 특히 육바라밀행 중에서도 반야바라밀을 강조하여, 반야(지혜)는 佛母이며 육바라밀의 원천이어서 일체의 불법이 반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를 성취하므로써 육바라밀이 성취되고, 육바라밀이 성취되므로서 일체의 지혜도 얻어진다는 것이다.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은 2만 5천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는데, 구마라집이 404년에 한역한 것으로서 총 27권 90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반야공관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해설하는 한편, 삼승(三乘)ㆍ십지사상(十地思想)ㆍ수기론(授記論)ㆍ화신사상(化身思想)ㆍ타방국토사상(他方國土思想) 등에 대해서도 설하고 있다.
 

  이어서 소품반야경8천송 반야경 이라고도 하는데, 역시 구마라집이 408년에 10권 29품으로 한역한 것이다. 내용에 있어서는 주관적으로는 반야공관의 입장에서 세계관과 인생관을 확립할 것과, 객관적으로는 공의 체달을 실제적인 방법으로 삼아서 수행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이다. 이는 600권의 분량을 단 260자의 짧은 분량으로 요약한 것으로서 대본(大本)소본(小本)이 있다. 대본은 소본에 비하여 서론과 결말 부분이 없는 것을 보입하여 놓은 것이다. 이의 종류에는 한역 뿐 만이 아니고 티베트어 역, 몽고어 역, 영역, 불역 등으로 출판된 것이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수지ㆍ독송되고 있는 것은 당 나라의 현장 스님이 한역한 소본 반야심경이다. 이 경의 대의는 인간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자성을 수행을 통하여 개발하고, 이를 궁극적인 상태로 완성해서 도달시킬 것을 강조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크나큰 지혜의 완성이 바로 우리 중생들의 인생 목표임을 역설한 내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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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妙法蓮華經   ,  정법화경,  첨품묘법연화경

http://www.cheontae.org/  : 상부 메뉴 탭 > 천태불교학당 > 만화로 보는 법화경

 

  대승경전 중에서 대표적인 경전으로 꼽히는 법화경은 일승묘법(一乘妙法)과 회삼귀일(會三歸一) 및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말하자면 일체개공(一切皆空)인 진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우주의 통일적인 원리로 삼고, 거기에 기초를 두고서 전체적인 교설을 펴고 있는 것이다.
 

  법화경을 설한 사명으로서는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에서 말하기를, 대지 밑에 있는 허공세계에 살고 있는 지용(地涌)보살들이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대지의 틈을 뚫고 솟아 나와서, 다른 보살들을 불러 모으고 거기에서 이 경전을 펼 것을 임무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즉 그때까지 교단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서 이를 유지하는 데 공헌을 했던 보살들이 이제부터는 표면에 나타나서 새로운 것을 형성하려는 과정을 상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 경전의 성립 배경이 된 소승 교단에 대한 비판이 그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상징성은 한편으로 부처님은 시간과 공간의 한정성을 초월한 분임을 의미하는 “무량한 생명으로서의 붓다”를 보고자 한 의도이며, 이 영원한 생명력으로서의 붓다에 대하여 아버지를 사모하는 자식이 귀입(歸入)하듯이, 입장을 바꾸어 붓다를 나의 생명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일여(一如)의 입장을 일승(一乘)이라고 하는데, 방편품에서는 이 일승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이 일승만이 있으며, 이승이나 삼승은 방편으로서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초의 법화경은 오늘날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큰 규모의 경전이 아니라 아마도 8장 또는 10장으로 설립된 소품(小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즉 그것은 서품의 일부와 방편품과 비유품이 먼저 성립되고, 이어서 견보탑품(見寶塔品)의 앞 부분과 권지품(勸持品)의 극히 일부가 성립된 후에, 종지용출품, 여래수량품, 여래실력품이 성립되었으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분별공덕품과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이 추가된 10장의 경전이었을 것으로 사료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현재는 7권 28품이 전하고 있는데, 1품과 14품까지는 적문(迹門)으로써 부처님의 활동의 족적(足跡)을 밝힌 것이고, 15품에서 28품은 본문(本門)으로서 본래의 모습, 다시 말해서 중생이 돌아와야 할 본래의 자리를 가르치고 있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궁극적으로 이 경전이, 여래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고, 그리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知見을 듣게 하며, 우리들에게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앞의 적문에서는 인간의 자각의 세계를 그리고 있고, 뒤의 본문에서는 여래와 융합된 세계에 으는 것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은중경   

 

  일반적으로 가족윤리에 있어서 동양사회에서는 어버이와 자식간의 종적인 관계를 중심으로하여 이루어지고, 서양사회에서는 남편과 아내라는 수평적인 관계를 주축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그 개념에 있어서는 각 시대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마도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관이다 종교관 등이 달랐던 데서 온 것같다. 즉 삼국이나 고려시대에서는 개인의 수양이나 공부를 위해서 출가하여 그 부모로 하여금 자신을 잊게 하는 안심효(安心孝)가 근본적인 효 사상의 근본적인 효 사상의 개념이었던 반면에, 조선시대에서는 자식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한 분신으로써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이 주어진 것이 아니고 부모를 위한 철저한 행실 등을 함으로써 효를 다한다는 감지효(甘旨孝)가 그 근본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반된 윤리개념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를 지배했던 유생들이 저들의 이념과 다르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불교의 효사상을 철저하게 배척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그 응어리가 씻어지지 않고 계속 잔존해 있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오해들을 불식시키고 가족윤리 특히 어머니와 자식간의 윤리에 관하여 이를 대승불교사상적인 입장에서 상세하게 설파하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불설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經)인 것이다. 이 은중경은 그 제목에서 드러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의 은혜는 매우 깊고 소중해서 그것을 감히 자식들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초기경전의 내용을 살펴 보면, 대개는 일반적인 교의에 관한 것이 많이 설해져 있고, 부처님 자신에 관한 것은 비교적 시기적으로 조금 뒤에 언급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러한 이유 중의 하나는 부처님 입멸 직후의 제자들에게는 아직도 부처님에 대한 기억 등이 생생한데다가,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남을 의지하지 말며, 진리를 의지하고 진리가 아닌 것은 의지하지 말라”는 이른바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의 유훈에 따라서 우선 교설의 편집을 주로 하고, 부처님의 전기(傳記) 같은 것은 당면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부처님을 가까이서 모셨던 제자들도 더러는 입적하고, 한편으로는 부처님을 추모하는 정이 한층 간절해지자 이에 이르러서 부처님에 관한 전기, 즉 불전문학(佛傳文學)을 편찬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각종의 성전에 전하는 관련자료와 교단 내에 전해 오는 이야기 및 당시에 이해되고 있었던 불타관 등을 증빙자료로 하여 편집한 것으로서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불전문학을 말한다. 이러한 형태의 전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상세하게 모든 자료들은 수집해서 집대성한 것으로는 이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이 단연 뛰어난데, 이것은 전기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처님의 과거 인연담과 현재 본행의 인연설 등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경전은 한량없이 무수한 세월에 걸쳐서 수행한 부처님의 이력과 왕가의 계보에 관하여 서술하고, 이어서 도솔하생 및 탄생에 따른 출가인연 등을 매우 풍부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 특색일 뿐만이 아니라, 끝부분에는 전도기(傳道期), 즉 제자 열전(列傳)을 두고 부처님께서 교화한 제자들을 그 교화내용과 함께 일일이 기록하고 있어서 자료로서의 가치를 더해 주고 있는 것이다.

 

 

불소행찬(佛所行讚)

  이 불소행찬(佛所行讚)은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등 많은 부처님에 관한 전기(傳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서 불교계의 시인 마명(馬鳴 ; Aśvaghosa)이, 전래되던 부처님의 일대기에다가 그의 해박한 지식들을 배경으로 하여 문학적으로 윤색을 가한 것이다. 마명은 종래의 자료에 기초하면서도 역사적인 사실을 중시하고 적당하게 이상화시키어 아름다운 시로서 부처님의 생애와 그의 가르침 및 인품 등을 찬탄함으로써 인격적인 감화를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불러 일으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러한 이 책은 1세기 경에 만들어졌는데, 장편의 대서사시로서 마명의 또 다른 대표작인 사운다라난다(Saundaranandd)와 함께 그 문학성이 높은 작품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불소행찬은 불교인이 쓴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산스크리트문학의 주류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이 행찬만큼은 거기에 포함되고 있는 예외의 작품인 것이다.
  그것은 매우 유려한 필치로 부처님의 일생을 그리고 있으며, 문학사적으로는 궁정시(宮廷時)의 선구적인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인도문학의 최고 걸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작품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는 대승불교적인 요소보다는 오히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등의 소승적인 교의의 색채가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사운다라난다 즉 ‘단정한 난다’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마명 작품의 전반에 흐르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으로서 그의 저술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대승적인 입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대승기신론 사상과도 연관이 있어서 초기의 대승불교사상사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문헌으로 사운다라난다와 함께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관심이 가는 것은 저자 마명에 관한 문제로서, 이 마명이 대승불교의 시조로 불리고, 또한 대승불교의 입문서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저자 마명과 그 이름이 같기 때문에 불교계에서는 일찍부터 두 사람이 동일인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제기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해명이 잘 되지 않고 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대체적으로 이 불소행찬의 저자 마명과 대승기신론의 마명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것도 하루 빨리 해결되어야 할 불교학의 과제라고 할 것이다. 즉 대중성 있는 대승기신론은 누가, 언제 지었는가 하는 문제가 지금도 확실하게 판명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의 파장에 의해서 불소행찬의 저자에 관한 것도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 행찬의 원래 명칭은 붇다차리타(Buddhacarita)로서 이는 ‘부처님의 생애’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한역된 것은 5세기 때의 보운(寶雲)이라고 하거나,  412년에서 421년 사이에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하였다는 종래의 설도 있어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쨌든 이 역문은 아름다운 운문(韻文)으로서 그 격조는 높고 장엄하며, 문구는 곱고 아름답게 쓰여져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유롭게 한문과 한시의 운률을 구사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서 번역작품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떤 하나의 독립된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고 함이 더 적절하다는 논평도 있다.  그 구성내용을 볼 것 같으면, 현존하는 산스크리트어본은 17장까지가 있는데, 이 가운데서 14장의 후반부터 17장까지는 후대에 부가된 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명이 직접 쓴 부분인 14장의 전반부까지에서는 왕가인 카필라성의 묘사로부터 시작하여 부처님의 탄생과 성장시절, 그리고 인생에 대한 고뇌, 출성(出城) 및 출가, 빔비사라왕과의 회견, 두 선인을 방문한 일, 항마(降魔)까지의 과정 등이 일목요연하게 서술되고 있어서 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빠르게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비하여 한역본을 산스크리트본과 비교해 볼 때에 다소의 증감은 있지만 데체로 산스크리트본에 충실하게 번역한 것이라고 하겠는데, 원본에 없는 14장 이하 28장까지가 이에 덧붙여져서 완벽하게 부처님의 일대기를 정리해 놓고 있는 것이다.

 

 

 

백유경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에 말씀하신 모든 형태의 가르침을 그 내용이나 방식에 따라서 아홉 가지로 나눌수 있고(九分敎), 더 늘려서 열 두 가지로도 분류할 수 있는데(十二分敎) 이 때에 어느 쪽에도 포함되는 것이 여러 가지의 비유(avadana : 譬喩)를 들어서 설하신 내용이다. 이에 속하는 경전류가 백유경(百喩經)과 출요경(出曜經)으로써 이 중 백유경은 백비경(百譬經)ㆍ백유집(百喩集)ㆍ백구비유경(百句譬喩經) 또는 백구비유집경(集經)이라고도 불리우는 경전이다.


  옛문헌에서는 주로 부처님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가 비유형식으로 소개되고 있었으나 그러한 것은 여기에서는 별로 볼 수 없고, 근기가 낮은 사람들에게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말한다 하더라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가지가지의 비유물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으로 이러한 의미에서 이를 또한 치화만(癡花?)이라고 의역하기도 하는데, 어느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한 화만이라는 뜻으로, 화만이란 옛날 인도에서 그 지방의 풍속으로 꽃을 실에다 꿰어서 몸이나 머리에 장식하던 것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앞을 장엄하게 꾸미기 위하여 생화나 금ㆍ은으로 만든 조화 등을 달아 늘어 뜨리는 장식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는 비유를 드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경전의 저자로는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셨다는 설과 승가사나(僧伽斯那)가 짓고 그의 제자인 구나비지(求那毘地)가 492년에 한역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부처님께서 설하셨다는 것은 이 경전 내용이 대승의 여러 경전 중에서 선악응보에 관한 비유분을 백구들어서 집록한 것이 때문에 그것에 연유하여 그와 같이 여긴 것 같지만 승가사나가 지었다는 사실을 이 경전의 끝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비화경(悲華經)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이 부처님이 신격화된 것이 아니라 수수하게 모든 사람들과 함께 걸식을 하거나 취침 등을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도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교훈적인 내용이 많은데, 이것이 경전의 형태로 갖추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부처님이 신격화되었는가 하면, 첫째로 많은 제자들과 같이 생활하는 가운데 이들과의 사이에 상하 등의 구분이 없게 되어서 위계상에 문제가 발생함으로 인하여 자연 어떤 차별적인 위치를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며, 둘째는 후세에 올수록 많은 사람들의 근기가 떨어져서 부처님과 같은 분이 자연스럽게 훌륭하게 보여짐으로 해서 신격화되는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은 모든 것이 바로 이 세상살이에 보탬이 되는 아주 친근한 이웃 할아버지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는데, 이것이 점차로 시대와 지방에 따라서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첨삭이 되다 보니까, 각각 그 뜻들이 변화하여 더 쉽게 전달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더러는 어렵게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비화경(悲華經)은 그 이름이 대승비분다리경(大乘悲分陀利經)이라고 하거나 비련화경(悲蓮華經) 등으로 불리는데, 이러한 의미는 이를 자비의 백련화(白蓮華) 혹은 연민의 백련화라고 해석되는 데에서 이 경전이 설해진 취지의 일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경전은 다른 모든 부처님들이 정토(淨土)에서 성불하고, 그 곳에 안주하여 중생들을 교화함에 반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오탁악세(五濁惡世)인 예토(穢土)에 나아가 그 곳에서 성불하고, 그 곳의 중생들을 교화하는데, 진력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부처님들이 일상적인 꽃이라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예토를 정토이게 한 무량한 자비심을 지닌 흰 연꽃이라는 뜻에서 이를 백련화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이 경전에서는 석가모니께서 이 세상에 출세하게 된 과거세의 인연을 다른 부처님들의 그것과 비교해서 설하고 있는 것이 그 특색이라고 하겠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이 세상의 모든 것에 관하여 자연의 이치대로 설파하신 부처님의 말씀은 그 내용에 따라서 주제가 수 만 가지에 달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들이 일상생활 가운데서 요긴하게 필요한 짧막한 덕목들을 42가지로 나누어서 이들에 관한 내용들이 여러 경전에서 인용한 금언(金言)적인 성격을 띈 경전이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이다. 그리하여 이 경전의 내용이 일상의 수행에서 극히 중요한 덕목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수행을 중요시하는 선가(禪家)에서는 일찍부터 이를 애지중지하여 유교경(遺敎經)위산경책(僞山磬策)과 함께 이 경전을 불조삼경(佛祖三經)으로 여겨서 애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전이 중국에 전역된 것은 후한시대인 1세기경으로서 낙양의 백마사에서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에 의해서 공역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한편으로 고려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이 경전의 서문에 의하면, 후한의 효명제(58~75년 재위)가 어느날 꿈을 꾸었더니 몸에 금옷을 입은 금인(金人 : 부처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궁정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는 금인강정설(金人降庭說)을 펴기도 하는데, 이 때에 왕이 사자를 대월지국에 보내어서 부처님의 경전을 베껴 오도록 한 것이 이 경전이 중국에 전래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마도 이 사십이장경이 중국불교 전래상 최초의 전래경전이 되는 셈이며, 또한 곧 번역된 것으로 보아서 최초의 한역정전으로도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양 나라 때에 승우(僧祐)가 쓴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과 수 나라의 비장방(費長房)이 지은 역대삼보기(歷代三寶記) 등에 의하면, 축법란과 가섭마등이 함께 공역했다는 설 외에도 축법란 혼자서 단독으로 번역했다는 기록 외에 가섭마등 역시 혼자서 번역했다는 내용 등이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이들이 이 경전의 번역에 참여한 사실만은 숨길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러면 그 시기는 정확하게 어느 때인가 하면, 고금역경도기(古今譯經圖記)와 광홍명집(廣弘明集) 등의 기록을 보면 영평 10년(67)과 그 18년(75)에 각각 백마사에서 번역되었다고 전하고 있지만, 가섭마등이 후한에 온 후로 곧 죽었다는 기록 등에 의할 것 같으면, 아마도 이 사십이장경은 영평 10년(67)에 중국에서 최초로 번역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경전이 마등과 축법란 등에 의하여 번역되자 효묭제를 비롯한 당시의 지식인들은 앞을 다투어 위의 내용에 관한 연구와 함께 독송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황제는 이를 황실의 서고인 난대(蘭台)석실에 보관케 했는가 하면, 양해(讓楷)라는 사신이 후한의 환제(桓帝)에게 상표문을 올리 일이 있었는데, 그 상표문에서 이 경전의 내용들을 여러 군데에서 인용하여 문안을 작성했을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급속도로 보급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송 나라의 진종제(眞宗帝)는 이 경전을 각별히 좋아해서 항상 숭거(崇鋸)스님을 내전에 모셔다가 독송케 하는 한편으로 직접 자신도 이 경전에 관하여 주석서를 지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원(智圓 ; 976~1022)이라는 스님이 이 사십이장경에 관한 주석서 1권과 정의(定義) 1권을 각각 지은 일이 있으며, 인악(仁岳)도 통원기(通源記) 2권과 과(科) 1권을 지었다고 의천스님이 전하고 있다. 더욱이나 송 나라의 중기에 조동종을 중창한 수대(守逐)는 불조삼경의 하나로 이 경전을 늘 독송하는 한편 그가 지은 불설사십이장경주(佛說師十二章經註) 1권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송 및 원 나라 때에는 그 유포가 일반인들에게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 유행만큼이나 이본(異本)도 많아서 10여 종류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도 본문 자체의 증광과 개작의 흔적에 준해서 이를 세 가지로 분류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우리 나라의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것인데, 그 내용과 형태로 보아서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번역한 원형에 가장 가까운 고형본이 있고,
  ② 명 나라의 대장경에 수록된 것으로 권두와 권마라에 서분과 유통분이 있고, 본문 자체도 고려대장경 계통에 비하여 증광과 개작의 흔적이 뚜렷하다. 특히 송의 진종제가 지은 주사십이장경(註師十二章經)은 이를 저본으로 해서 서술되었다고 한다.
  ③ 송 나라 이후 선가(禪家)에서 유행된 것으로 서분이 있는 명장본(明藏本)과 비슷하나 권말의 유통분이 없고, 본문의 문구도 앞의 두 계통에 비하여 현격하게 다르므로 아마도 최후로 그 내용이 보정(補訂)된 것 등이 그것이다.

  그 내용으로는 여러 경전에서 요긴한 덕목만을 뽑아서 집록한 경전이기 때문에 평이하고 간명한 내용이어서 위경(僞經)이라는 오해도 있지만, 대체로 이 경전은 불교의 윤리적인 내용들을 아함경전류 등에서 주로 많이 발췌해서 42장으로 나누어서 싣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고ㆍ무상ㆍ무아에 관한 근본교설 및 애욕의 단절, 자비심의 발휘, 보시의 덕행 등이 그 교설내용과 함께 적절한 비유로써 설해지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승만경(勝鬘經)

  본래 불교의 경전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취했든지 간에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인생에 있어서의 교훈적인 내용이 그 기본양식으로 되어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부처님이 설법을 보살에게 부촉(咐囑)하거나 드물게는 유마경(維摩經)에서와 같이 일반 재가신도인 거사(居士)에게 위임할 경우가 있는데, 이 승만경(勝鬘經)에서는 특별히 여성에게 그것을 일임하고 있어서 관심의 정도가 더 하는 것이다. 즉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勝鬘獅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이라고 하는 이 경전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승만이라는 부인이 일찍이 일불승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사자후를 한 대방편의 대승경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승만부인은 인도 사위국의 바상익왕과 말리카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로써 후에 아유타국 우칭왕의 왕비가 되어 생활하던 중에 친정 부모들로부터 부처님의 법에 귀의하라는 권유를 받고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하면서 그가 깨달은 바를 부처 앞에서 선설(善說)하면 이를 부처님이 인가하는 형식으로 전개되어 있고, 더 나아가 장차는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부처님으로부터 받자 이에 고무되어 열 가지와 세 가지의 서원을 세워 그 스스로의 신앙심을 고취시켜 나가는 내용으로 전체적인 구조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경전은 여래장 사상을 설하는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서 기원전 3, 4세기 경에 인도 대승 사상가들에 의하여 성립되었는데, 이것이 처음으로 한역된 것은 중인도 출신으로 435년에 중국에 온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그 이듬 해에 앞에서 말한 승만경을 번역한 것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인도 출신으로써 693년에 당 나라에 온 보리유지(菩提流支 : 일명 達磨流支라고도 함)가 713년에 완성한 대보적경(大寶積經)의 제48회에서 이를 개역(改譯)하여 “승만부인회(勝鬘夫人會)”라는 명칭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 보적경은 총 49회에 걸쳐서 120권의 경전들을 각각의 특색에 따라서 단행본 형식으로 집적(集積)한 것으로써 전체적인 통일성 같은 것은 없다.

 



 

심지관경

  부처님께서 일찍이 설하신 말씀은 그 내용이나 형식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전달되는데, 그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특히 중요한 것은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Sutra)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전 중에서도 어떤 것은 한 가지의 주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른 것이 있는 가하면, 다른 것은 여러 가지의 사상이나 수행 등에 관하여 이를 중합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들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 보고자 하는 심지관경(心地觀經)은 그 구성으로 보아서 후자에 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전인데,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경전이 인도의 대승북요 말기에 성립된 것으로써 당시에 유행하던 불교사상을 거의 모두 섭렵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 구체적인 것을 보면, 우선 이 경전에는 반야경과 유마경, 법화경, 화엄경, 열반경 및 밀교사상에 관한 것 등 대승불교사상에 간한 것을 총망라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출가주의를 원칙으로 하여 그 요체가 되는 계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 지관(止觀) 등의 수행을 통하여 마음 속에 번뇌나 망상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란야(Aranya:阿蘭若,寂靜處)에 머물면서 불도를 이룰 것을 역설하는 관심주의(觀心主義)에도 상당한 할애(割愛)를 하고 있는 것읻 그것이다. 특히 심지(心地)를 설명함에 있어서는 부처님의 과거 인행시(因行時)의 본생담 내용을 간혹 그 비유로 활용하고 있어서 관심이 더 가는 것이다.
 

 이외에도 부모나 국왕 등 네 가지의 은혜에 관하여 보은해야 할 것 등을 강조하고 있어서 이와 같은 추측을 한층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전의 내용 때문에 이를 일명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地觀經)이라고도 하는데, 총 13품에 걸펴서 대승불교사상과 그 수행론이 설해져 있지만 단순히 앞에서 든 대승경전들의 사상을 답습만한 자세가 아니고 이들 보다 한 걸음 진보된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써 이들은 대개 화엄경 등에서 설하는 삼계유심(三界唯心)의 내용을 유가유식(瑜伽唯識)의 관점에서 서술하거나 밀교적인 수행법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한 것이 특색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이들 사상이 마침내 실제적인 덕목인 네 가지의 은혜로 귀결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대승불교 말기에 거의 모든 불교교리를 섭렵하여 이룩된 심지관경(心地觀經)은 출가주의ㆍ계율주의ㆍ관심주의(觀心主義) 등에 중점을 두고 설했지만, 사은(四恩)을 설해서 부모ㆍ국왕ㆍ중생ㆍ삼보에 대한 보은(報恩)을 역설하고 있으며, 출가하여 아란야처(阿蘭若處, 寂靜處)에 거주하면서 심지(心地)를 관(觀)하여 망상을 없애고 불도를 이룰 것을 교설한 대승경전이다.

  좀 더 자세하게 본 경의 입론을 고찰하여 보면, 근본사상으로서는 반야ㆍ유마ㆍ법화ㆍ화엄ㆍ열반경 등의 내용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그 위에 섭론종의 유식설(唯識說)을 함께 보여, 삼계(三界)가 유심이고 유식임을 이론적으로 설한다. 실천문에서는 미륵신앙을 설립하고 유가(瑜伽)ㆍ범망계(梵網戒) 등의 대승계를 지킬 것을 교설하고, 또한 진실경 등의 밀교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삼밀(三密)의 수행을 권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본 경에서는 이론문으로서 유심적ㆍ유식적인 세계관을 설하고, 실천문으로서는 출가주의와 이에 따르는 계율신앙에 중점을 두고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이론문에서 유심ㆍ유식적인 세계관을 별도로 구분해서 교설한 내용은 이 때까지는 아직도 심(心)ㆍ식(識)의 인식작용을 별개의 이론으로 인정한 것 같으며, 후대에 와서 통틀어서 유심적인 인식론으로 표기되기까지에는 불교교리 발달사의 일면을 보는 느낌이 든다.
 

  본 경의 관심에 관한 이론적인 교설은 극히 중요한 내용으로서, 중생들이 견해를 갖게 될 경우에 따르는 집착에 대해서 심의 관찰을 역설하고 있는 바, 유견(有見)에 대한 초월개념으로서의 공병(空病)에 집착하지 말도록 하는 경계 교설로써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만약 유견(有見)을 일으키면 공견(空見)을 일으키는 것보다 수승하다. 

공은 유병(有病)을 치료할 수 있지만, 약(藥)은 공을 치료할 수 없다.’ 1) 


라고 해서, 유견을 파하기 위해서 공견을 설했지만 로가야타(路伽耶陀 Lokāyata - 順世外道ㆍ극단의 쾌락주의)와 같이 공견에만 집착하는 것은 차라리 유견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못하는 것으로서, 공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한 데서 연유되기 때문에 공의 의(義)를 다시 부연하고 있다. 


즉 그것은, 

‘내가 많는 비유로써 공의 의를 밝히노니, 

삼계는 오직 일심임을 알라. 


심(心)은 대력(大力)이 있어서 세계를 낳고, 

자재(自在)로 능히 변화의 주(主)가 된다. 

…… 

만약 능히 심의 체성(體性)이 공하다고 본다면, 

혹장(惑障)이 생기지 않고 바로 해탈(解脫)한다’ 2) 


라고 설해서, 심의 체성이 공하다는 의미이며, 이와 같은 인식에서 일체가 모두 공하다고 간파하고 보면 마침내 도달되는 당체(當體)는 일심 뿐이라는 것으로, 이 일심에서 만유(萬有)를 도래케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한편으로 화엄으로 이어져 내려온다.『심지관경』이 재가신앙보다는 출가수도를 찬양하면서, 심지를 관하여 번뇌ㆍ망상을 없애고 불도를 이룰 것을 설한 경전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어떻게 마음을 관찰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아함경(阿含經)
  

 
   대개 경전은 교훈적인 내용이고, 논전은 철학적이라고 하는데, 특히 이 아함경전군은 그 내용이 담백해서 우리에게 훈시하는 바가 정결한 편이다. 아함이란 범어와 파리어의 Āgama를 중국에서 음사(音寫)한 말로서, 이는 도착(到着)ㆍ유래(由來)ㆍ기원(起原)이라는 뜻과 더불어서 이치(理致)ㆍ교법(敎法) 및 성언(聖言)등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의미들을 간추리면 ‘전해 온 것’ 혹은 ‘구전(口傳)으로 전래되어 온 것’ 등으로 이 아함경의 근원을 이해하면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 경전이 결집된 때에는 마치 부처님이 열반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에 대한 사모의 정과 그리움이 커서 엄숙한 분위기였고, 한편으로는 망발하는 비구 등이 있어서 많은 참석자들이 비통해 하는 모습도 있었다고 십송율 등에서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아함경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장아함경(長阿含經)이라고 하여 비교적 긴 경만을 모아서 한 부를 만든 것으로서 이에는 22권에 30경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여러 부처님에 관한 것과 법 및 수행도 등에 관하여 밝힌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다음으로 중아함경(中阿含經)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는 내용의 것들을 모은 것으로서, 원시불교의 교의, 즉 사성제(四聖諦)ㆍ12인연(十二因緣) 등과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다. 승조는 이 전체를 5송(五頌)으로 나누어서 해설하기도 하는데, 60권 222경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은 다른 경에 들지 아니한 것들을 수집하여 모은 것으로서 내용은 가장 원시불교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설법도 간략하게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 및 팔정도(八正道)를 원형대로 나타내어서 비교적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면목이 뚜렷하게 표현되고 있는 경전이다. 이에는 50권에 1,362경이 포함되어 있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은 1법(일법)부터 11법까지의 법문의 숫자를 따라 편찬된 경전으로서 십념(十念)ㆍ5계(五戒)ㆍ안반(安般)ㆍ삼보(三寶)ㆍ사제(四諦)ㆍ육중(六重)ㆍ팔난(八難) 등의 항목을 기준으로 52품으로 해설되고 있으며, 51권에 472경이 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약사경
 

 어떠한 종교라도 이 인간의 세상에서 그것이 신앙될 때에는 그의 궁극적인 목적인 안심입명(安心立命)이 지대한 과제가 되는 것 같다. 즉 마음에 갈등이 없으면 하루를 사는 것도 그리 부담감이 없지만, 깊이 신앙하지 않아서 확신이 부족하면 오히려 머리만 무겁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서 생활에도 자신감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움만이 쌓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의젓한 생활자세가 종교인에게는 필요한데 지은 업이 많기 때문에 악몽의 나날이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종교인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하여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의 설화나 비유등을 들어서 중생들을 교화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소개하는 약사경도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한 경전이다. 왜냐하면 부처는 대의왕으로써 중생들의 마음의 병을 고쳐주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교화하신 것이 그의 본연 임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끝없는 불세계를 지나면 깨끗한 나라가 있는데, 이 세계의 부처님을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라고 하며,그는 보살도를 행할 때에 12가지의 큰 원을 일으켜 많은 중생들이 구제될 곳을 얻게 하였다.…”


로 시작되는 이 경전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형상으로서 큰 연화 위에 있으면서 왼손에는 약병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맺고 있는데, 이는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중생들의 질병을 고쳐주고 수명을 연장하여 주며, 재난을 소멸시켜 주고 의복과 음식 등을 만족케 하여 주는 한편으로 부처님의 복덕과 지혜를 닦아 무상보리의 묘과를 증득할 수 있도록 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 경의 본명은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如來公德經)으로 현존하는 한역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 나라의 달마급다가 번역한 불설약사여개본원경(1권)이 있고, 

둘째는 당 나라의 현장이 번역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1권)과 역시 당의 의정이 번역한 약사유리광칠불본원경(2권)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달마급다의 것은 12대원을 먼저 열거하고 이어서 이 경의 공덕과 위력을 설했으며, 유통분에서는 12신장과 야차신 등이 삼보에 귀의한 내용을 실었다. 


현장의 것에서는 위의 것과 그 내용이 비슷한데, 다른 것은 일찍이 약사여래가 아득한 옛날에 보살행을 닦은 공덕으로 성불하여 일체중생의 병고를 구제하게 되었다는 요지를 밝혀주고 있는 부분이다. 


의정의 것에서는 앞의 것들과는 달리 서분에서 8대원을 발원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문수보살도 보살도를 수행할 때에 역시 8대원을 세웠다고 밝히고 있으며, 정종분에서는 7불이 각각 4에서 12대원까지를 서원하고 있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유통분에서는 앞의 것들과 같이 12신장들이 이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들을 수호할 것을 서원한 내용은 같으나 단명과 병고 혹은 횡사 등 일체중생들의 고뇌를 없애줄 다라니주(陀羅尼呪)를 읊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경에서 약사(藥師)란 의사 등이 그러하듯이 부처님은 사람들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과 모든 고통스러운 마음을 소멸시켜 주고,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과 육바라밀의 보살행을 닦도록 가르쳐주므로 이를 약사에 비유한 것이며, 유리(瑠璃)는 속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보배이듯이 마음의 본체를 밝혀주므로 이에 비유한 것이며, 광(光)은 물론 어둠을 없애주는 지혜 그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경을 수지하고 지성으로 독송하면 모든 부처님의 경전이 그러하듯이 절대적으로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열반경

  이 경전은 흔히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팔리어 대장경 중에서는 장부(長部)의 제16경에 해당된다. 특히 이 경전은 장부 가운데서도 그 내용이 긴 것으로 부처님께서 만년에 왕사성을 출발하여 열반지인 쿠시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여정과 그 행적에 관하여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어서 부처님의 최후의 모습을 살피는 데 중요한 내용을 전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런데 이 열반경은 그 소속이 어느 부분, 즉 아함부에 속해 있느냐, 아니면 대승경류에 속해있는냐에 따라서 그 내용도 다르고 또한 주요사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팔리어로 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은 소승계통의 열반경으로 한역된 겻 중에서는 장아함경 가운데의 유행경(遊行經)이 바로 이 경전에 해당된다. 그 내용은 부처님 스스로가 자신의 입멸을 통하여 인생의 무상함과 죽음에 관한 교훈을 우리 중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우리가 죽음에 관하여 이를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극복했을 때에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즉 죽음이란 태어남을 위한 전제조건이며, 태어남은 죽음이 전제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중생의 짓이지 인생을 달관한 현명한 사람의 태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부처님의 죽음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들이 어떠한 신화나 문장가들의 윤색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간접적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평소 인간 석가 참모습을 그대로 가식없이 전하고 있는 데서 이 경전의 신선함이 유독 돋보이는 것은, 아마도 부처님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삶을 살다가 갔음을 사실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충격이 아닌가 한다. 


이에 반하여 대승경전사상의 경전에서는 열반사상을 종교적 내지는 철학적인 측면에서 강조한 것이데, 부처님의 그것은 영원한 세계 속에서 잠시 동안의 육체의 소멸에 불과한 것으로서 이 세계에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안에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불성을 잘 발하면 그 법신과 합일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단계로서 인생을 긍정적이면서도 확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살 때에 가능하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경(遺敎經)

  이 유교경(遺敎經)은 부처님께서 입멸에 즈음하여 제자들에게 남긴 최후의 유계(遺戒)를 내용으로 한 경전으로써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설법하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이를테면 

부처님께서는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으로는 수발타라(須跋陀羅)를 구제하여 중생제도의 모든 사명을 마치면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곧 열반에 들 것임을 미리 알린 것이다. 그때에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에게 입멸 후에는 바라제목차(戒經)를 스승으로 삼고 계를 지키며, 신심을 잘 다스려 다섯 가지의 욕망을 삼가고, 정적을 얻도록 노력하며, 선정을 닦아 깨달음의 지혜를 얻을 것을 부촉하신 것이다.


  이 경전이 중국에서 한역된 것은 5세기 초에 구마라집에 의해서이며, 단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명으로는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이라고 하거나 불임반열반약설교계경(佛臨般涅槃略設敎戒經) 또는 불임반열반경(佛臨般涅槃經)이라고도 한다.


 산스키르스트본이나 티벳트본 등은 없고 오직 이 한역본만이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는데, 역시 부처님의 만년(晩年)의 사적을 내용으로 한 아함부의 열반경 혹은 마명(馬鳴)의 불소행찬(佛所行讚) 등과 문체상의 유사점이 많아서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불소행찬의 제26품인 대반열반품(大般涅槃품)과는 운문과 산문의 다름이 있지만 내용상에 있어서는 일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

 

 




 

원각경(圓覺經)


   이 원각경(圓覺經)은 본래 그 갖추어진 이름이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이라고 하는데, 이를 줄여서 대방광원각경(大方光圓覺經)이라고 하거나 원각수다라요의경(圓角修多羅了義經) 혹은 원각요의경(圓角了義經) 등으로 흔히 불리워지며, 앞 부분에 방광(方廣)이나 때로는 방등(方等)이라고 할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러한 경전은 횡적(橫的)으로는 시방(十方)에 두루하는 방광보편(方廣普遍)한 실다운 이치를 내포하고 있으며, 종적(縱的)으로는 범부나 성인 등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평등(平等)한 가르침을 지니고 있는 경전이기 때문에 이를 방광 또는 방등 등으로 표현하여 대승경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원각경은 대승불교사상에 입각하여 원만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설해진 경전으로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교의를 잘 이해하는 것 못지 않게 

그에 따른 지관행(止觀行) 등의 실천을 통해서 그러한 목표가 가능하다는 것을 

교설한 경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경전에서는 중생들이 최고의 이상으로 여기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무엇보다도 진리를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자기의 교육이나 환경 등에 알맞는 실천방법 즉 참선이나 요가, 염불 및 지관법 등을 개발하여 지속적으로 이를 겸행하는 것이 필수적인 요건이라는 것으로서, 여기에서는 부처님께서 문수, 보현, 미륵, 원각 등 열 두 보살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대원각의 묘리를 이해시키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인왕경(仁王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경전의 내용이 단순히 교훈적인 것만이 아니고 때로는 철학적인 것도 있고, 또한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수승한 것도 있지만,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인왕반야바라밀경(仁王般若波羅密經)은 그 제목에서 보듯이, 국가의 권력자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반드시 인자함, 즉 반야[지혜]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역설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효를 행할 때에도 이를 무조건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은혜를 철저하게 알고난 뒤에 거기에 대해서 보답하는 이른바 지은보은(知恩報恩)사상이 주가 되는 것처럼, 

여기에서도 통치자들이 외난을 대처할 때나 민심을 수습할 때에는 근본적으로 지혜를 바탕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의 인왕경이 중국에 소개된 것은 일찍이 진(晉)의 축법호가 인왕반야경을 역경한 것을 시작(267)으로, 그후 구마라집이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을, 진제가 인왕반야경을, 불공이 역시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을 번역하였으며, 천태 지의대사가 진(陳)이 멸망할 무렵에 당시의 궁내 대국전과 양택사에서 이에 대해서 강설한 것이 최초로 주석서가 있게 된 연유인 것이다.


  우리 나라의 신라에서도 일찍이 이 경전을 도입하여 국난을 극복하려고 하였으며, 고려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난리를 당하여 이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백고좌법회 등이 성행했으며, 원측 스님 등이 이에 관하여 소(疏)를 지었던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좀 더 자세하게 이 경전을 설한 부처님의 근본 교의를 먼저 알아 보면, 그 나라 모든 국민들의 참다운 호국방법과 정신자세 및 지도자들의 정치철학 등에 관해서 구도자적인 입장을 취할 것을 제시한 것으로서, 진정한 호국이란 외침이나 내환에 대한 방어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반야바라밀에 근원을 둔 충실한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고 항상 분별하고 집착하여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은 곧 호국을 방해하는 것이 되며, 이로 인하여 귀신 등이 출몰하여서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국토가 어지러워질 때에는 먼저 귀신이 난을 일으키고, 이로 말미암아 백성이 난을 일으키며, 백성이 난을 일으키므로 외적이 내침하고, 적이 침입하므로 말미암아 국가와 백송이 멸망하여 상(喪) 등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원은 다름아닌 각 개인들이 마음의 번뇌와 무상의 원리를 알지 못함에서 온다는 것으로서, 이는 전체적으로 반야바라밀을 닦지 않는 데서 기인하고, 이로 인하여 시비와 갈등 등을 초래하여 잠시도 편할 날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왕들은, “화난, 수난, 풍난 등 일체의 난을 당하면 마땅히 이 경전을 강설하라.”고 한 것인데, 이는 이 반야바라밀경이 심난을  그 뿌리채 뽑아내는 근본서인 상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반야바라밀이야말로 삼매를 통한 대신주요, 대위시주이므로 저와 같은 심난을 극복하고, 자재하는 데는 더할 수 없는 마음의 경전임과 동시에 호국경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전은 그 구성에 있어서도 부처님의 높고 위신력 있는 말씀을 믿고 행하면, 그것이 곧 무한한 공덕을 쌓는다는 신앙심을 뒷받침하는 형식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각자의 삿된 알음알이와 나쁜 소견을 버리고서 참 지혜를 얻으려는 반야바라밀의 활동이 바로 국가와 국민과 국왕을 성숙시켜서 스스로 자기 자리에 서게 됨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야경의 핵심내용인 3공관과 4제설 및 12인연 등의 반야3공사상을 그대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유마경

 

 부처님께서 일찍이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내용이나 그 가르침을 형태에 따라서 분류하여 보면, 


계경(契經: Sutra), 

중송(重頌,應頌: Geyya),

게송(偈頌 ,孤起頌,諷頌: Gatha), 

비유(譬喩: Avadana) 등 


아홉 가지로 나눌 수 있고, 4


더 나아가서는 이를 열두 가지로 나눌 수도 있는데, 5


이러한 것들의 대부분이 문학적인 성격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서 문학적인 가치로 경전들을 평가하여 보면, 아함경 계통에서는 주로 부처님의 전생 설화를 다루고 있으며, 불소행찬(佛所行讚)과 장로게(長老偈) 등에서는 부처님의 전기(傳記)가 기술되어 있고, 유마경(維摩經)과 미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 등은 희곡적(戱曲的)인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어느 경전 보다도 문학적인 소재가 많은 유명한 경전인 것이다. 


   이와 같이 특수한 형식을 갖춘 유마경은 부파불교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주로 자아 중심적인 관념에 집착하여 권위적인 자세를 가지고 비종교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므로, 이를 과감하게 버리고서 그러한 수행 대신에 사회적 내지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구원자와 중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원리와 방법들을 전개하고 있어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경은 다른 경전에서는 볼 수 없는 재가(在家)의 신자인 유마힐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서 그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게 한다거나 못된 짓을 하는 자들을 선도케 하며, 술꾼들을 제도하고, 궁인(宮人)들을 교화하는 등의 묘법을 널리 선양케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독특한 내용을 가진 유마경은 본래 그 명칭이 “성스런 유마힐의 설법이라고 불러지는 대승경전”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으로 불렀는데, 때로는 유마힐경이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단지 유마경등으로 줄여서 부르고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이 경을 또한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이라고도 하는데, 이와 같은 의미는 촉루품(囑累品)에서 이 경의 내용이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이라고 아난에게 직접 부처님께서 일러준 데에 기인하지만, 실제로도 내용들을 일견해 보면 일부 대승경전상에서 볼 수 있는 지식 위주의 이론적인 입장을 벗어나 불가사의한 종교적인 체험의 경지를 서술한 것으로써 여기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 것이라고 사료되는 것이다.

 

 



 

육도집경(六度集經)
  
   여기에 소개하고자 하는 육도집경(六度集經)은 우리에게 약간은 생소한 경전으로써 그 내용상으로는 본연부, 즉 부처님의 전생담이나 설화 등에 관한 것을 한데 엮어서 만든 경전류에 속한다. 그리고 경명 자체에서 얼마간은 알 수 있듯이 육도(六), 곧 보살의 수행덕목인 6바라밀에 관한 것을 부처님의 여러 가지 전생담과 관련시켜서 설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라고 하겠으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대승불교의 핵심을 이루는 보살행을 고양하는데 주된 목적을 두고 편찬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륵의 전생담에 관한 내용도 간혹 인용되고 있으며, 반야경에 관한 사상을 이미 알고서 서술된 것이므로 이러한 면에서는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과 같은 계통에 속하는 경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전이 전해지지 않고 있는 이 경전은 또한 육도무극경(六度無極經), 잡도무극경(雜度無極經), 혹은 도무극경(度無極經) 등으로도 불리워지고 있는데, 일찍이 오나라의 강승회(康僧會)가 번역(251∼280년)한 것으로서 육도(六度 : 육바라밀)의 차제 순서에 의해서 보살행에 관한 인연을 종류에 따라서 갈래를 모은 일종의 본생담(本生譚)이다. 여기서 도무극(度無極)이란 바라밀다(婆羅蜜多)를 말하고, 줄여서 바라밀이다. 



이 경은 9권본도 있다고 하지만『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과『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3권 등에는 8권으로 되어 있어서 경록(經錄) 사이의 권수는 일정치 않다. 12부경(部經) 중《본생경(本生經)》에 속한다. 총계 91종의 자타카가 6도, 즉 육바라밀다(六波羅蜜多: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智慧)로 분류된 데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 이 경은 특히 대승불교의 중심이 되는 보살행(菩薩行)을 강조하는 것을 주안으로 하여 편찬된 흔적이 보인다. 나아가 석가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미륵(彌勒)의 전생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반야경(般若經)》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 등이 특색이다.


  여기서 취급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타카는 팔리어(語) 경전 및 한역(漢譯) 경전에 나오는 것들이다. 산스크리트 원전은 전하지 않지만, 오(吳)나라 강승회(康僧會)의 한역(8권, 251∼280)의 연대․내용 등으로 미루어 2세기에는 이미 그 근간이 성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토삼부경
 

 아미타불은 깨끗한 땅에서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임이시고, 석가여래는 깨끗한 땅으로 지도하는 스승이시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부처님을 도와서 교화를 펴시는 분들이다. 그러므로 일대시교(一代時敎)의 여러 경전에서는 간절하게 중생들이 왕생하도록 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아미타불은 무량수경에 의하면, 옛날에 법장(法藏)이라는 보살이 지금부터 10겁(劫) 전에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서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을 거듭하여 마침내 그 원이 성취됨에 부처가 되어서 현재는 극락세계에 머물고 계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미타불은 보살도를 완성하여 타방세계(他方世界)에 출현하신 부처님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이러한 타방불신앙이 성행하여 국민이면 거의 누구나가 아미타불을 은연 중에 염불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이는 일종의 왕생신앙(往生信仰)으로서 이 세상을 다 살고 난 뒤에 보다 좋은 세계에 태어나고 싶은 중생심리에서 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아미타불, 즉 서방정토신앙은 현세에 대한 강한 불만과 미련심(未練心)이 많은 사람이 사후(死後)에나 현세에서 마음의 정화를 통하여 안정을 얻기 위한 타력적인 방법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미타(Amitā : 阿彌陀)불을 한량이 없는 수명을 가진 부처, 즉 무량수불(無量壽佛)과 한량이 없는 광명을 가진 부처, 즉 무량광불(無量光佛)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수명은 자비를 상징하고 광명은 지혜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들이 아미타불에게 귀의하는 것은 꼭 타력적이라기보다는 

진실로 본래부터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자신의 지혜와 자비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아미타불은 항상 큰 원력의 배를 타고 생사의 바다에 떠서, 이 언덕이나 저 언덕에 머물지 않고, 한 가운데도 머물지 않으면서 중생들을 제도코자 하는데, 만약,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고 하루나 7일 동안 명호를 외워 한결같이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그가 임종할 때에 아미타불이 보살들을 거느리고 그의 앞에 나타나신다. 이때 그 사람은 전도됨이 없이 곧 왕생케 되는니라.” 하거나,


 “시방세계의 중생이 내 이름을 듣고 내 국토를 생각하면서 덕을 쌓거나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했으면서도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하신 반면에, 


이와 같은 경지에 태어날 사람은 반드시 열반에 도달하고자 하는 원력과 이생을 마치고 다음 생에서는 반드시 부처가 되겠다는 원력 및 부처님과 같이 32상을 갖추겠다는 것 등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또한 중생들이 보살도를 완성하여 부처가 된 결과로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미타불을 주된 부처로 하는 경전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무량수경아미타경관무량수경이 그것이다. 이들을 또한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고도 부른다.
 

  먼저 무량수경(無量壽經)은 아미타경에 비하여 그 분량이 많기 때문에 대경(大徑)이라고 하며, 대무량수경 또는 2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쌍권경(雙卷經)이라고도 한다. 


그 내용은 상권에서는 아미타불이 극락정토를 건설하게 된 원인과 그 과보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아미타불은 일찍이 법장보살이었을 때에 48가지의 서원을 세우고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등 그 누구라도 그의 원력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구제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하권에서는 중생이 극락세계에 왕생케 되는 원인과 과보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의 누구든지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신심을 내어서 짧은 순간이라도 지성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아미타불의 원력을 입어서 거기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는 중생들은 욕심을 버리고 출가하여 오로지 선근 등을 닦아 극락에 왕생코자 하는 무리들이고, 중근기 중생들은 출가는 했지만 다소의 선업으로 계율을 지키며 불사를 하는 등 공덕심을 회향하여 왕생코자 하는 무리들이고, 하근기 중생들은 재가의 선남선녀들로서 열심히 거기에 태어나고자 원력을 세우고 염불을 하거나 법문 등을 듣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아미타경(阿彌陀經)은 무량수경에 비하여 그 분량이 적기 때문에 소무량수경 도는 소경이라고도 하며 사지경(四紙經)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부처님 스스로가 설하신 무문자설경(無問自說經)으로서, 내용은 아미타불과 서방정토의 장엄에 관하여 설명하고, 그러한 땅에 왕생하는 길은 아미타불을 부르거나 염불함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그것에 있어서 무량수경과 다음에 알아 볼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고 한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은 관무량수불경 또는 무량수관경이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줄여서 관경이라고 약칭한다. 경전의 명칭에서와 같이 관불(觀佛)에 관하여 설한 경전 중의 하나로서, 아미타불과 그 화신불인 관음과 세지의 두 보살 및 극락정토에 관한 정엄을 구체적으로 모두 16관법으로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설하는 까닭은 왕사성의 비극을 주제로 위제희(韋提希) 부인이 고뇌를 떨어버리고, 서방정토에 구원되어가는 경위를 관불과 관상의 설법으로 명백히 하고, 무량수경에서 설하는 타력구제(他力救濟)에 관한 진실성을 말법시대의 중생들에게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데 있다고 한다.

 

 


 

 

천수경


  어떤 종교이든지간에 그 종교의 가르침 못지 않게 거기에 따르는 의식도 중요하다. 

오히려 일부의 종교는 이 의식에 보다 더 큰 비중을 두고서 의례를 일상생활에서 상용하도록 신도들에게 강요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불교에서는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지만 그러나 대개의 의식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이를 독송한다든지 아니면 노래 등으로 그 내용을 읊은 몇 가지의 덕목이나 경이 있으니, 거기에 항상 들어가는 것이 이 천수경(千手經)이다. 


정확하게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碍大悲心陀羅尼經:대정신수대장경 제20권, pp.106∼111)으로서 


이외에도 이와 유사한 경의 이름으로 세상에 유통되고 있는 것은 수 십종에 달한다. 

우리가 흔히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고 누구나 외우고 있는 것은 이 천수경을 독송하기 전에 먼저 지금까지 입으로 지은 모든 업을 깨끗이 한다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으로써 다라니(陀羅尼)라고도 하는데, 부처나 보살, 나아가서는 자기자신에게까지라도 간절하게 소망할 때면 무엇 보다도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고서는 안되기 때문에 첫째로 입부터 깨끗이 하고 시작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라니 라는 것은 옛날 인도에서 처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이 표기될 때에 범어(梵語)라는 글자로 쓰였는데, 


이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외우는 것은 그 뜻이 잘못하면 어디에 한정되어서 국한되기 쉽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방편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참으로 의미 있고 효력 있는 말은 남에게 밖으로 표현된 말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자기자신만이 알고 있을 때에 크다는 것으로 이를 밀어(密語)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을 외우는 사람은 다른 많은 말을 들어도 이를 잊지 않는 힘이 있으며, 끝 없는 모든 이치를 잘 알아서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고, 장애를 잘 극복하여 한량 없는 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등의 뜻에서 이를 총지(摠持)라고 하거나 능지(能持), 능차(能遮)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의미를 잘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이 경이 밀교적인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는 반면에 중생들이 바라는 바의 모든 소원을 해결해주기 위하여 관음보살로 나투시는데, 보통의 보살이 아니라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천수천안(千手千眼)의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이 보살은 중생들이 전생에 지은 죄로 말미암아 6도에 윤회하게 되는데, 이 6도를 순방하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교화할 때의 여섯 관음중의 한 분으로써 그 모습을 보면, 보통의 보살상에  밖의 양쪽으로 각각 20개의 손, 즉 합해서 40개의 손을 더 가지고 있고, 이 각 개의 손 바닥에는 또한 한 개씩의 눈이 달려 있어서 눈도 역시 40개가 되는 편이다. 그리고 이 40개의 손으로 각각 25유(有) 6를 구제함으로 천 개의 손이 필요하게 되고 따라서 천 개의 눈도 필요한 것이다.


* 25유 : 삼계(三界) 즉 욕망의 세계와 물질세계 내지는 정신세계에 살고 있는 중생들은 전생의 과보나 현세의 업에 의하여 지옥이나 아귀, 축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최고의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 25가지의 세계가 있다는 것



  이러한 모습은 한 마디로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많은 힘을 이 관세음보살이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 이와 같은 보살사상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면 


신라시대부터 불교신자들 사이에서 간절하게 소원을 빌 때에 그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써 그 영험이 뛰어났으며, 현재와 같이 의식 때에 독송되는 경전의 형태는 아마도 조선시대의 서산스님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한국불교의 독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엄경


  여기에서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8만 4천 법문을 중국의 천태지의 (天台 智顗) 대사가 설정한 오시교판(五時敎判)에 준해서 여러 경전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즉 깨달으신 직후에 말씀하신 것으로 알려진 화엄시(華嚴時)를 비롯하여, 근본불교를 설하신 아함시(阿含時), 유마경ㆍ금광명경ㆍ승만경 등의 대승경전사상을 설하신 방등시(方等時), 반야경류를 설하신 반야시(般若時), 그리고 법화경과 열반경류를 설하신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가 그것인데, 


이와 같은 분류는 다소 이들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때와 합치되고 그 분의 중생교화 의도가 그대로 깃들어 있다고 사료되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Kuśinagara)의 숲 속에서 입멸(入滅)을 맞이하여 마지막 설법을 준비하실 때에 수많은 제자들이 이를 비통해 하자, 


“나의 입멸을 슬퍼하지 말라. 

무릇 육신은 반드시 멸하는 법이니라. 

그러나 내 비록 육신은 멸한다고 하더라도 내 법신(法身)은 멸하지 않느니라. 


법신이란 

내가 일대간(一代間)에 설한 법(法)과 율(律)중에 

빛나고 있는 무상의 정각(正覺) 바로 그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입멸한 후에 너희들은 법과 율을 스승으로 삼아 

살아가도록 할지니라.” 7


하고 당부하신 데서부터 불교경전의 탄생이 예고되는데, 


이는 부처님이 평소에 고뇌하는 모든 인간들을 구제하고자 하여 자신의 가르침이 여러 계층에게 두루 펴지도록 일부 바라문교도들이 사용하는 베다어를 지양하고, 하류층이 많이 쓰는 언어로 설법한 것 등을 고려해 볼 때에, 불교경전이 그 주안점을 처음부터 교훈적인 것과 평민성에 두고서 설해졌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화엄경은 본래 그 이름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으로서 대방광(大方廣)이란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를 말한다. 


즉 이 진리는 모든 것을 포용하여 한량없이 크므로 대(大)라 하고, 만법의 모범이 되어 변치않는 체성(體性)이므로 방(方)이라고 하며, 그 덕은 널리 삼계의 우주에 관통되므로 광(廣)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승경을 통칭하는 말로써 그 이치가 방정(方正)하고 광대(廣大)하므로 이를 대방등(大方等)이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부처님께서 크고 방정하게 널리 깨달으신 진리의 경지를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세계를 그린 것과 같은 경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 내용이 처음으로 설해졌지만 깨달음의 세계를 묘사한 내용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난해한 경전에 속한다.
 

  이 경전은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종합된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개개의 품(品)이 독립된 경전으로 별도로 성립되었던 것인데, 후에 ‘화엄경’이라는 경명으로 집대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 성립 시기는 대략 4세기경으로 추정되며, 장소는 중앙 아시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겠느냐 하는 견해가 있다. 


화엄경의 각 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십지품(十地品)인데, 그것은 대략 1세기에서 2세기 때에 성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범어 원전으로 남아 있는 것은 위에서 말한 십지품과 입법계품(入法界品)의 두 품 뿐이다.

 



  한역 경전으로는 세 가지의 종류가 전해지고 있는데, 


첫째는 불타발타라(Buddhabhadra : 覺賢)가 418년에서 420년 사이에 역출한 60권본으로서 이를 보통 ‘60화엄(六十華嚴)’ㆍ‘구화엄(舊華嚴)’이라고 부른다. 


둘째는 실차난타(Śiksānanda : 喜學)가 695년에서 699년 사이에 역출한 80권본으로 이를 또한 ‘80화엄(八十華嚴)’ㆍ‘신화엄(新華嚴)’이라고 하며, 당나라 때에 나왔기 때문에 역시 ‘당화엄(唐華嚴)’이라고 한다. 


셋째는 반야(Prajñā : 智慧) 삼장이 795년에서 798년 사이에 역출한 40권본으로 이를 ‘40화엄(四十華嚴)’이라고 하는데, 이 권본은 ‘60화엄경’과 ‘80화엄경’ 두 역본의 마지막 장(章)인 ‘입법계품’만을 역출한 것이기 때문에 ‘60화엄경’과 ‘80화엄경’이 실질적인 이 화엄경의 완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구성은 60화엄경의 경우는 7처(處 : 이 경을 설한 장소) 8회(會 : 이 경을 설한 모임) 34품으로 되어 있고, 80화엄경은 7처 9회 39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다르다.

 


이 경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우주의 본체(本體), 

곧 법계(法界)의 이치를 밝히고 있으므로 

이를 일컬어서 화엄법계라고 하는데, 


이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의 세계일 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들어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과 같은 상근기의 보살들을 위해서 설법한 것이므로, 


그 자리에 사리불이나 목건련 등과 같은 성문승들이 함께 들었어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화엄경은 부처님 자신이 설하신 것이 아니라 부처님 주위에 모인 수많은 보살들이 삼매에 들어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을 감득한 후에 부처님의 가피력을 얻어서 설했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다.

 

 




 

해심밀경

  우리는 어느 때에 불교의 전반적인 교리의 내용을 일컬어서 말할 때에 불교가 인간의 마음을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마음의 종교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부를 경우 그러한 원인을 제공해 주는 핵심적인 경전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대승경전이 여기에 속하겠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 한 경전만을 추려서 말한다면 아마도 해심밀경(解密經)이 아닌가 한다. 


이 경전은 그 명칭이 암시하고 있다시피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막상 헤아려 보고자 하면 그 이치가 하도 깊고 비밀스럽게 상속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을 주로 밝히고 있는 내용으로서, 대승불교의 양대사종 중의 하나인 법상종의 유식사상(唯識思想)에서는 특히 이 경전을 여러 가지의 소의경전(所衣經典)중에서도 가장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경전에서는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진여를 마음의 실체로 간주하고 그 위에서 아뢰야식(阿賴耶識) 연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교설한 유식사상을 중심으로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방법 등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여 미혹에 결박되어 있는 마음을 해탈케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심밀경과 대승아비달마경(大乘阿比達磨經) 등의 교의에서 출발한 유식설은 미륵(彌勒)과 무착(無着)에 의해서 대략 그 완성을 보게 되었으나 일부 부족한 내용은 이후에 세친(世親)이 이를 보완함으로써 많은 대승불교사상 중에서 핵심교학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 해심밀경은 대개의 경전들이 이 사바세계의 범부중생들에게 부처님께서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하여 설해지고 잇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보신불인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이 보토인 18원만의 연화장세계에서 미륵과 문수 보살등과 같이 최상의 지위에 오른 보살들을 상대로 해서 설법한 것이 다르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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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大正藏』三卷, p. 328ㆍ下, ‘若起有見勝起空見空治有病無藥治空’
2)『大正藏』三卷, p. 328ㆍ上, ‘我以衆喩明空義是知三界唯一心 心有大力世界生 自在能爲變化主 …… 若能觀心體性空 惑障不生便解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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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비라 :  경전 과 개략 카테고리 참조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mbira&logNo=140018567589

 




http://cgi.chol.com/~edusong/technote/read.cgi?board=Allhistory&y_number=2325

 

 

  1. (능가경 설명의 모두 였던 것을 맨 앞으로 가져옴) [본문으로]
  2. (육도집경 설명의 모두를 가져옴) [본문으로]
  3. (아함경 설명의 모두를 가져옴) [본문으로]
  4. ㅑㅣ [본문으로]
  5. ㅑㅐ [본문으로]
  6. * 25유 : 삼계(三界) 즉 욕망의 세계와 물질세계 내지는 정신세계에 살고 있는 중생들은 전생의 과보나 현세의 업에 의하여 지옥이나 아귀, 축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최고의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 25가지의 세계가 있다는 것 [본문으로]
  7. 아난다여, 너희는 자신을 섬으로 삼아 머물고, 자신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이에 의지하지 말라. 또, 너희는 진리를 섬으로 삼아 머물고, 진리에 의지하여 머물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