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질문(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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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비불교도의 믿음과 불교도의 믿음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비불교도들의 믿음은 사람 안에 한 생으로부터 다른 생으로 옮겨가거나 전이될 수 있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이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단어는 재생(rebirth)이 아니고 재육화(reincarnation)입니다.
불교적 원리에 의하면 한 생으로부터 다른 생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영혼과 같이 변함없고 안정적이며 머물러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재생을 표시하는 빠알리어는 `뿌납바와(punabbhava)', 글자 그대로 `다시 있는 존재'입니다. 만일 영혼의 존재가 용인된다면, 재생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만, 불교는 영혼을 시인하지 않고 한 생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옮겨가는 것이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불교의 재생이론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다양한 종교 체계와 신조의 신봉자들이 사후의 생에 관한 믿음을 공유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고 그것에 음식과 죽은 사람이 생시에 좋아하던 옷을 놓은 이유는 그의 `카(Ka)', 즉 영혼이 다른 육체를 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히 터무니없지만, 그러한 관습은 사후의 생명에 대한 믿음이 보편적이었음을 나타냅니다. B. C. 6세기에 이르러 이 믿음은 그리스의 페레시데스, 엠페도클레스 그리고 피타고라스의 글 속에 나타납니다. 나중에 플라톤은 그의 「공화국(De Republica)」에서 같은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로마의 시인 오비드는 그의 「변형(Metamorphoses)」에서 재육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카이사르 는 「갈리아 전기(De Bello Gallico)」 6권에서 그가 정복했던 갈리아(옛 프랑스)의 관습과 예절을 설명하면서, 갈리아인들 사이에 이런 재육화의 믿음이 널리 퍼져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
10. 질문(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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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그것은 지적인 추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충동입니다. 삶과 죽음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라는 가슴으로부터 올라오는 자연스런 요구입니다. 삶이 이 생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슬픔과 기쁨, 걱정과 희망, 상실과 이득으로 가득찬 지금의 생은, 작용과 반작용의 위대한 원칙에 따라 논리정연하게 전개되는 재생의 결과임을 충분히 알게 될 때 인생은 더이상 불가사의도 수수께끼도 아닙니다.
그렇게되면 삶이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삶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심장한 중요성을 띠게 됩니다. 인생은 이제 사건과 상황들의 지루한 반복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희망이 느껴집니다. 새로운 시야가 활짝 열립니다. 자기 운명의 배를 조정하는 것이 자신이고, 자신의 미래의 생을 짓는 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깨달음에 눈뜨기 시작할 때, 인생을 보는 견해는 완전히 새로 자리잡습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 말, 행위가 스스로의 미래를 건설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을 때, 우리는 자신이 하는 생각과 말과 행위 면에서 점점 더 조심하여 선택하게 됩니다. 자신이 훌륭한 삶을 살았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유쾌하고 자신있게 다음 생에서의 행복한 경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설혹 우리가 좋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하더라도 업이란 아주 마감된 사항이 아니고 끊임없이 만들어져가는 것이기에 현재의 좋은 행위로 나쁜 행위의 과보가 수정되고 변경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역시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누구나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과, 참된 마음으로 시작한 그러한 일은 설혹 죽음이 끼여들어 미완으로 남게 되는 경우에도 내생에 다시 착수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행복해지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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