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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 마음] 승부심이 판을 만든다. 그 '동의'의 전제는 알아차림

GraU 2014. 10. 28. 10:21

 

 

 

 

한번 겸손하면 네 가지 이익을 얻는다.

 

 

하늘의 도는

 

가득 채운 자에게서 덜어내어 겸손한 자에게 더하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바꾸어 겸손한 곳으로 흐르게 하며,

 

귀신은

 

가득 채운 자를 해치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고,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싫어하며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

 

 

 

- 주역

 

 

촌철활인 : 한치의 혀로 사람을 살린다!

 

 

서경(書經)에도 ‘자만하면 손해보고
겸손하면 이익을 보는 것은 하늘의 도이다.’라는
경구가 나옵니다.
잘난 사람,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는 사람이
그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만에 있습니다.
겸손 없이는 장기적 성공은 꿈꾸지 말아야 합니다.

 

 

 

 

 

 

 

 

 

성실한 것은 하늘의 도 요

성실해지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도이다.

중용이었던가? 대학이었던가... 젠쟝. 자꾸 까먹어.

 

실제로 겸손한 것. 겉으로 겸손한 척 하는 것.

 

도가의 '삼법'의 개념이 이르는 여러 가지 다중 코드 중에

무거운 것, 덜 무거운것, 가벼운 것 의 개념이 있다. 바로 가져다 붙이기는 어떨지 모르지만,

상선약수. 이와도 상통한다고 여겨진다.1 아주 자연스러운 것.

 

위의 글을 쓴 이가 어느 정도 지켜야되는 정언명령으로서 상정시킨 느낌이 읽는 누구라도 조금 느낄 수 있듯이, 소위 '강요'된 무엇인가의 지점은 항상 읽히고 만다. 어린 영혼들이 잘 모르고 줄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속았다' 싶어서 반 사회적 감정을 일시나마 품게 되는 것처럼. 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 중요한 것은 글쓴이도 그러하듯이, 또 읽는 많은 사람도 그러하듯이 이것이 뭐 문제냐 싶을 정도로 '강요'의 코드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승부심 아래의 그 지점의 보다 근본적인 출발점은 역시나 내가 사랑 받고 있느냐, 내가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냐 이다. 경중의 문제로 별로 중요하지도, 깊은 이해를 요하지도 않는 듯이 보이는 이 중중경의 세 가지 개념은 '자연'스럽다, '자연'의 의미를 우리가 아주 쉽게 이해해버리고, 별 것아닌양 취급하는 경향에서 처럼 쉬 넘기고 있으나, 가장 근본이 되는 출발점이라 감히 옮길 수 있을만큼 중요하다.

 

'물질', '에너지', '정보'(여기서는 기억?)2 은 경중이 있어

아래로 침잠하는 놈일수록 전체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진다. 천체물리학에서 별이 나를 만들어 내었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문학적 발견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그 연원으로 발생하는 복잡미묘하고, 3차원적으로 얽혀있는 세상의 출발에 대해 궁구해 들어갈 수 있다.

 

마음의 문제에서도 무거움과 가벼움은 존재한다.

무거운 것은 아래로 간다. 밑에 깔려 전체를 좌우한다. 아주 당연한(실제로는 '자연스러운')논리 인데 뭘 말하려는 거냐 싶어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이 '무거운' 것들임을 알아야한다. 가벼움을 추구하고, 즐거움을 좇는 사람일수록, 같은 한 개인에 있어서도, 내가 다른 때와는 다르게 '즐거워 지고 싶다', 가벼워지고 싶다는 생각(해야만 한다는 수준의 소위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순간임을 느낀다면)이 든다면, 그 반대편을 느끼고 있슴이다. 많은 경우 '기분'은 그냥 피어나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사실 아니다. 물론, 그 증거는 있다. 전술한 이유로 강요된 가벼움의 충족은 채워지지 않는다. 반면, 사랑하는 사람과 바라는 마음 없이 보낸 짧은 순간의 기억은 그와 다르다. 이 첨예한 감정의 지점이 말하는 것이 무엇이랴. 다 알고 있다고, 당연한 것 아니냐고 느껴지는 마음이 오를 수록, 다시 곪씹어볼만 하다고 감히 생각한다. 내가 그랬고, 궁리해가는 과정에서 인정하기 힘들었던 지점이기도.

 

 

여튼.

 

어딘가에 가기 싫다, 그것은 하기 싫다 등(승부심의 현현)의 근본은

내가 그곳에 가서, 그 상황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인정받는 존재로서 대우받지 못한다 이다.(희구심)

 

아주 간단하게 적어 놓았으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자의 사건 경우도 무궁무진하고, 후자의 원인 경우도 너무도 복잡하게 연원되기 때문. 보다 중요한 것은 '에이~ 무슨 소리 하는거야' 하는 식의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는 것.

 

문제의 인식은 문제의 인식을 위한 방법론 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보고자 하는 관점, 즉 윤리 가치의 수준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가 관건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점이다.

 

개인의 문제나

한 회사의 문제나

사회나 국가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출발에 대한 상호간의 동의가 있어야된다.

 

그것이 오른쪽에서 바라는 진정한 '리더'의 출현일지

아니면, 왼쪽에서 바라는 충분한 대화를 통한 상호 어울림의 결과일지는 그 차후의 문제다.

 

 

 

 

판이 바뀌면 따라 바뀌는 것들이 있으되

바뀌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본다면 보다 근본에 다가갈 수 있다.

말마따나 볼려는 의지가 우선이지만.

 

 

 

  1. 가득차면 무거워진다. 자연스럽게 아래로 간다. 원래 아래자리에 있으면? [본문으로]
  2. 이 세계를 이루는 물질과 에너지 외에 최근의 물리학에서 정보의 개념을 상정시키고 있다. 블랙홀의 '사건' 개념(event horizon)에서 출발하였으며,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영혼의 문제까지 아우를수 있는 개념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