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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 마음] 전해지는 것의 이면에서

GraU 2014. 11. 6. 11:41

 

 

 

 

 

안불망위(安不忘危)의 지혜

 

 

군자는 편안하여도 위험을 잊지 않으며,
생존하여도 멸망할 것을 잊지 않으며,
다스려져도 어지러워질 것을 잊지 않나니
이 때문에 자신을 편안케 하고 나라와 집안도 보전할 수 있다.

 

- 주역

 

 

촌철활인 : 한치의 혀로 사람을 살린다!

 

 

조직의 성공과 비례해 위험,
즉 멸망의 가능성도 함께
커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성공에 취해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조직의 생존을 책임지는 리더는 전승불복(戰勝不復),
안불망위의 가르침을 늘 상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역 계사(繫辭 下傳) 중

 

君子 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

 

군자는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립해 있을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에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집안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http://www.nzkorea.org/?document_srl=9143842

 

 

 

 

 

 

공자의 말인 이 글이 나오는

계사 하전의 5번 째 문단 중에 나오는 또 다른 구절이 있는데,

 

 

 

 

"소인은 어질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의롭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익을 보지 않으면 권하지 않고,

위엄으로 누르지 않으면 징계할 수 없다."

 

 

子曰

小人 不耻不仁  不畏不義 不見利不動 不威不懲

小懲而大誡 此小人福也 (<=이 구도로 온 데다가 이러는 사람들 있지.)

 

 

 

바로 앞 4번째 글에

"양괘에는 음이 많고, 음괘에는 양이 많다. 그 까닭이 무엇이랴. 양괘는 기수요 음괘는 우수인 때문이다. 그 덕행은 무엇이냐(그 숨은 뜻, 큰 뜻?)   양은 한 임금에 두 백성으로서 군자의 도이다. 음은 두 임금에 한 백성으로서 소인의 도이다."

 

 

 

 

주역은 하늘 과 땅, 건과 곤의 구도로서

군자와 소인의 자리를 괘로 크게 구분한다.

 

도가에서의 중중경 삼법의 예에서 처럼

아래 위가 있는 것이고, 하늘- 땅 으로 출발하는 이원론적 음양의 출발이 연원이리라. 

허나 서양의 그 단순한 구별 논리와는 좀 다른 부분이 있는데

이는 '안전'이란 말의 뜻에 대한 연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다.1

 (http://blog.daum.net/dryocopus/12758880)

우리가 흔히 아는 '安'의 의미가 마냥 그냥 편한 상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 그 속에 숨겨놓은 다중코드 라는 측면에서, 즉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는 크게 건곤감리... 이렇게 나가는 흔히 알고 있는 괘 라는 것에서 기인하며, 역이 이 괘를 조목조목 어떤 것임을 써놓았고 주희가 이 알송달송한 글을 풀이 해 놓았지 아마

 

易 

周易 -

십익 : 단전 상 하 , 상전 상 하, 계사 상 하, 문언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 

: 모두 공자가 지은 것, 다만, 자의 : 후제 사람이 써서 보탠 것.

 

 

 

 

 

많은 부분에서 역은  '도리' (인간의 것)를 설명한 것으로 이해되고, 처음에 그런 줄로 나도 알았지만,

 

사실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놓은 것이다.

단지 인간이 그것을 '도리'로 정의하여 지켜야 할, 인간 답게 살려면 지녀야 할 방편으로서

"당연"으로 삼은 것 뿐이다.

 

 

이 글이 나온 다섯번째 계사 하전 구절 바로 앞에

 

"간다는 것은 굽힌다는 것이요, 온다는 것은 펴는 것이다.(往者 屈也 來者 也,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온다. 해와 달이 서로 추진하여 밝은 것이 생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온다. 추위와 더위가 서로 추진하여 1년이 된다.) 굽히고 펴는 것이 서로 감동하여 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자벌레가 굽히는 것은 이로써 펼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용과 뱀이 엎드리는 것은 이 것으로 몸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의리를 정히 다듬어서 신묘한 깊음을 연구한다는 것은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쓰는 것을 이롭헤 하여 몸을 편안히 하는 것은 이것으로 덕을 숭상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나서 가는 것은 이것을 혹 알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신비로움을 다하여 변화하는 것을 아는 것은 덕의 성대함이다."2

 

라는 구절이 있다.

행경에 옮긴 이글이 있게 되는 근본 이유를 미루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소위, 나타난 현상 이면의, 양의 이면에. 사실 이 계사하전의 5번째 글귀는 역의 "憧憧往來 朋從爾思"에서 시작한다.

 

사서오경 중

특히 주역은 앞 뒤 짤라내고 몇 글자 뜻만 전하면 곤란하게 된다.

 

물론 옮기는 이가 원래 '자신의 의도'로서 그리 한 것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당연이란 없는 것이다. 단지 자기가 자연스럽게 그리 하고픈 대로, 가고픈 데로.

 

중요한 문제는

"강요"한다는 점. 그 코드를 읽지도 않고 그를 위해(이익을 위해) 이용한다는 점.

이리 보는 사람이 되려 이상하게 여겨지는 점.

 

 

 

아리송하던 부분에 대해

생태주의 철학을 공부하던 과정에서 분명히 알게 된 것 중 하나이지만,

단순히 이렇게 짧은 몇 마디 글로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 함을 느꼈던 때가 생각난다.

더 많은 것을 보지 못했을 때, 겸손을 진정 모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온전히 내놓아도, 간결하게 내놓아도 보는 사람 듣는 사람 것이지 내 것이 아님을 알아

이제 마음에 걸릴 것이 없다. 또한, 조족지혈의 수준일 뿐이므로.

 

 

다만 업은 남으니 그것이 문제.

허나 그도 '     '의 일.

 

 

여기서

알음알이의  고저 다소 와

마음공부의 그 것이

 

서로 다투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 감히 여긴다.

 

 

 

 

 

 

 

  1. 안주인이 열심히 쓸고 닦고 집을 잘 관리 및 다스리는 모습에서, '다스리다=바로잡다=평온하다' 등을 뜻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나라나 배나 집이나 주인이 땀 흘리며 잘 관리해야만 평안한 삶이 그 보상으로 주어지게 된다는 의미다. [본문으로]
  2. 신완역 사서오경, 주역, 이민수 외 역, 1976, 평범사, 467p~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