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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 바라밀 : 실제 : 머뭄없이 머문다는 의미

GraU 2017. 3. 27. 17:10

 

 

 

 

 

기뻐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슬퍼하라, 사람들이 너를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너의 충만한 기쁨을 원하지만
너의 고뇌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뻐하라, 그러면 친구들이 너를 찾을 것이다.
슬퍼하라, 친구들을 다 잃을 것이니.

 

환희로 가득 찬 술잔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한탄하며 마시는 쓴 술은 너 홀로 마시게 될 것이다.

 

- 엘라 윌콕스의 시, ‘고독(Solitude)’에서

 

 

 

 

 

 

 

염세적 분위기를 굳이 묻혀서 쓴 글에  이치를 담은 듯이 보이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원하는 구도로 세상을 사람을 대상을 보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은

사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작업이다.

또한, 소위 '세상을 잘 살아내는' 이들이 따뜻함을 가지는 일이,

이루어 낸 이가, 성공한 이가, 부자가 '저런 하찮은' 것을 신경쓰더라 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일임을 굳이 일깨워주어야 함은.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구도로 세상을 그리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인 듯 받아들여지게 되는 기전과도 궤를 같이 한다.

 

나아가 이 인식의 벽을 인지하고 넘어선다 해도,

알아 갈 수록 세상이 각박해 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단계를 지나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도리어 저 '표현의 현재, 현전'을 넘어서야 하는.

 

그 자리에 이르러서야

그나마 편안하게 되는 이유는

 

논리라는 것이,

합리라는 것이

 

나의 눈을 뒤따라 구축되는 허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며,

이는 굳이 남에게 내 말이 맞제  하고 다니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현재에서

다른 이 들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와 밀접하게 닿아있기 때문이다.

 

 

 

 

왜 '실제를 제대로 보는 것'이

자유에 이르는 첫걸음이 되는지를.

 

 

느낌은 있으되

생각은 있으되

 

좋고 싫음은 떠나고

맞고 틀림은 떠난다.

 

좋고 싫음과 맞고 틀림에서 일어나는 감정에서 떠난다.

좋고 싫음과 맞고 틀림에서 일어나는 감정에서 떠난  눈으로

항상 머무르게 되는 자리.

 

굳이 이르러 '자유'라 하지 않더라도.

 

아니, 굳이 일러야 전해지는 그 자리조차도. 

 

 

 

 

 

 

 

 

 

뭔가 있어보이는 담론이 아니라

 

예를 들어 노래 부르는 것,

 

즐기는 이 가  많아지고 있슴으로, 또한  수많은 도구들의 도움으로

과거에 비해서  소위  양껏, 목놓아 노래 부르는 이가 많아 진듯해도,

 

내 주위에 내려와서 지저귀는 소리들은 예상외로 '자유'롭지 않다는 것.

 

그 경험에 관계된

 

수요 : 기준  :  나의 선택의 문제 - 빈도, 일상화된 도구, 기호, 익숙함  와

 

딜리버리 : 자본주의가 가져온 '돈 되는 것'이라는 필터, 그리고

 

공급 : 만듦 : 시스템 한계 - 훌륭한 작곡가, 가사  의 양적 한계 

 

들로  엮여있는 현상적 한계는

 

그것이 어떠한 주제가 되든간에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전혀 다른 이야기인 듯 하지만,

드러나는 것 이면에 의도적 비의도적으로 무시되는 양상을 보기 시작한다면.

 

내 안의 감정은 관여, 간여되는 많은 것들로 인하여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이는 특히 지칭되어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되려하는, 시키려하는 경향이 있슴과,

나아가  단순화된 설정으로서의 결과지향본능으로 인한 나의 책임으로,

종국에는, 굳이  짊어질 필요가 없는 것이 현상화 되어

실제가 아닌 '그것'에 의해 무거워하게 될 수 있다는 점.

 

물론. 이쪽 과 저쪽 의 상관성 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