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 !/수미산이야기

오ㅐ ?

GraU 2019. 10. 21. 00:07




말로 해서 이해시켜, 

그로 인해 

이루어지는 행위는 


업을 상쇄시킬 정도의 ‘공덕’이 되지 못한다






하나로  강요될  법이 있을 수 없음으로 볼 때

언제나 그렇듯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의 업: 그가 가진 인과   를    이해시켜, 

그가 자발적으로, 진심에서 우러나 스스로 찾아서 하게 되는 행위가 아니고,


어떤 행위 자체를   방법론 수준에서 가르쳐, 그대로  하게 할(사) 때를 말하는 것인 듯.


당연히 그럴 경우는,

출발에서부터 (의도/의지 : 발) 

그를 위한 행위가 아닐 수 밖에.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해를 하려고 하지도 않는 ,  필요성을 아예 못느끼는 ,  4제와 아직 연이 없는  경우에는,


어쩌란 말이야?  

뭘 해주면 되는데?  

무얼 지불하면 나에게 그것을 주겠느냐  하고  앉은 자리로서

방법론만을,

뭘 하면 되는지를 

어서빨리 내놔라,  그것만 딱 하면 내가 달라질? 


'이미 바라고 앉은 그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현실.




다만, 이 일에 한해서,


그 자체 :  그 자신의 현재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은


마찬가지 맥락으로  내 안으로 돌려서,


다른 단계에 /  다 경계 축 상에 : 삶/죽음,  물질적 - 공기/물,  나와 나 아닌 것들 사이에서,


즉  계  를 뛰어 넘는 마음  의 존재 :  오력 중  심   를  키우는 

스스로의 안에서의 노력이


왜   이기  와  이타  가   한뿌리 인가를,  되돌려보아   


진짜 나를 위해 하는 일은,  나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니고,  


나 아닌 것들에게로 '자동적으로'  돌려지는 : 회향되는   상태에 다다를 수 있는


나 와 나의 것  의  다음 단계인

나 와  나 아닌 것  들의 경계에서  만나게 되는,


경계를 허무는 일.  아니, 허문다기 보다는, 원래 없었음을 아는 일.








차라리.


오직 무심으로 한 기도가 불사의 한 힘: 결과  을  야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대개의 경우 바라는 대로가 아닌,  더한 고통을 겪게 되는 거기가 곧, 그  '원'이 이루어진 곳임을  알아차리는 눈이 없다면, 차라리 그에 대해서  판단하는 현재 : 미명의 자신의 현주소를 알아차리는 것이  유효.




근데 어찌되었건, 맞건 틀리건

혜암 스님 말씀이 귓전을 자꾸 맴도는 건 어쩔 수 없다.


알고도 말을 않는 것. 그 의미.


'난지난지사 는 지이무언자 니라' 

http://blog.daum.net/dryocopus/12758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