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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How to teach Buddhism to children?
H. 클라르 지음
각묵 스님 옮김
(Bodhi Leaves No.9)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Sri Lanka
Dr. H. Klar
[목차]
11. 기독교와 유물론을 충분히 이해시켜 이에대한 면역을 길러준다.
12. 자기 책임의 정신이 불교의 핵심임을 알게 한다.
제1장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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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인 문화에서 성장, 불교적인 사고방식과는 아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오늘의 서구 어린이들에게 불타의 가르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근대화, 즉 서구화라는 관념이 보편화된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이는 비단 서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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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이는 어른을 모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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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교육은 나이에 따라 달라야 하며 부모가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부모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매일을 살아간다면, 이는 어린이의 연령에 상관없이 가장 확실한 지침이 될 것이다. |
2. 분위기 조성은 어린이 교육에 도움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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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스스로 좋은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어린이를 교화시키는 것에 못지 않게 외적인 환경도 어린 시절의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형상이나 불상자체를 영험이나 권위의 대상으로 예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가장 위대한 인류의 스승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셨음을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을을 갖고 예배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보살펴야 한다. |
3. 축제를 활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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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은 축제를 매우 좋아한다. 기독교 및 기타의 다른 종교에서는 빈번히 성대한 축제를 갖고 갖가지 잔치와 행사를 벌인다. 이같은 것은 어린이들을 그 종교로 향하게 하는 일종의 인센티브, 즉 동기유발 요인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초파일이나 성도일, 열반일 그밖에도 포살일과 같이 특별히 의미 있는 날을 축제일로 하면 좋을 것이다. 초파일이나 성도일과 같은 날에는 온통 잔치 분위기에서 화려한 옷차림에 절에 가서 준비해간 등을 달고 특별한 음식을 먹게 한다면 어린이들에게는 퍽 재미있는 놀이가 될 것이다.
이와는 아주 다르게 포살일 같은 날에는 검소한 옷차림으로 절에 가서 법회에 참석하고, 가정에서는 그날 하루 채식만 한다거나 죽을 먹는다든가 하는 일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도 어린이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축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도덕성을 강조하고 비도덕적인 마음과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유익하다. 자신의 완성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끝없이 자신을 버리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인 본생담의 여러 이야기들은 어린이들이 고대인도 사회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들의 마음에 업과 윤회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업과 윤회의 개념은 지적인 추론을 가장 적게 요구하므로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데 적합한 개념일 수도 있다.어린이들은 학교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우고 그리스 신들과 다른 신들간의 처참한 싸움에 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듣는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린가 본생담에 얽힌 유익하고도 재미난 이야기들을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를 마다하겠는가?
사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하고 이를 어린이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바른 방법만 알고 있다면 다 가르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이들은 불법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지레 단정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는 참으로 커다란 잘못이다.
반면에 어떤 불자들은 어린이들에게 채식이나 참선을 강요 한다거나, 절을 많이 시키는 등의 지엽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잘못 오도하는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의 마음에 부처님 가르침의 씨앗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을 일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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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린이에 대한 불교 교육은 불자의 의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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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교들은 어린이들을 교화시키는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 신앙을 주입시키는 방법이 우리보다 훨씬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불교를 종교라기보다 철학에 가깝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혹은 불교의 특성으로 보아 누군가에게 어떤 사상을 주입 시키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분석 검토하기를 권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불교가 우리의 삶에 있어 추구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귀여운 자식들에게 반드시 전수해야 할 귀중한 유산이 아니겠는가? 만일 현대 사회에서 불교의 위치가 옛날과 같지 않다면, 이는 전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불교교육을 등한시한 우리자신의 책임이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특히 서구사회에서의 불교교육은 가능하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행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동양의 불교국가에서는 출가하여 승단의 일원이 되는 그 목적이 자신의 해탈에도 있지만 불법이 이 세상에서 끊기지 않고 이어지도록 하는 데에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깊이 음미해 볼 만한 점이다.나는 물론 우리 불교에는 교육체계의 기초조차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책임을 거기에 전가하고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더더욱 우리 재가신자들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일은 불법의 전승이라는 성스럽고 중차대한 우리의 의무이다. |
5. 불교 역사를 가르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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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언급한 본생담에 덧붙여 우리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부처님 재세시 그곳 사람들의 삶과 사회상, 그리고 근본 불교가 일어나게 된 역사적ㆍ사회적 배경 및 부처님의 일대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법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해서 인도 전역으로, 후에는 다른 여러나라에까지 굴러가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준다. 이는 어린이들에 역사적 현실로서의 불교를 받아들이고 불교를 포괄적으로, 건전하게 이해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그밖에도 우리는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의 전기를 읽히는 것이 좋겠다. 부처님을 더없이 높은 스승으로 받들며 수도와 포교의 길에 헌신하였던 아난다, 사리불, 목갈라나 같은 제자들의 행적과 가르침을 읽게 한다.
인류 최고의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 오간 숭고한 사랑과 신뢰의 이야기들은 아마도 어린이들의 감수성을 활짝 피어나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에 높은 수준의 인간관계를 열망하게 하고 용기와 희망이 솟아나도록 할 것이다. |
6. 불법을 설명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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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발전함에 따라 어린이들의 마음은 점차 불법의 정신과 하나가 되어갈 것이다. 부모들은 경전 가운데 평이한 내용을 골라 읽게 할 수 있다.
근본 오계와 관련된 가르침이라든지 재가 신도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일러주고 나가서는 증지부경에서 설하신 재가 신도의 일상 생활에 관한 가르침을 들려주어도 좋다. 그러면 어린이들은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생명은 채찍 앞에 두려워 떨고
이와 같은 게송들을 읽거나 외우게 하면 어린이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심어 줄 것이다. 사실 불교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
7. 어린이에게 경전 암송을 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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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은 무엇이나 쉽게 외울 수 있다. 그들에게 오계나 삼귀의를 외우게 한다. 팔리어로 색다르게 외우게 된다면 어떤 어린이들은 더욱 좋아할 것이다. 그는 나를 때렸다, 나를 욕했다, 나를 억압했다. 무조건 게송을 외우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진리의 눈이 떠져 있으며, 또 비록 지금 당장에는 그 깊은 뜻을 모를지라도 장차 어른이 되어 삶의 바다를 표류 할 때에 그들의 잠재의 속에 남아 있는 이 빛나는 부처님의 말씀들은 삶의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
8. 포살일을 존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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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살일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배웠던 게송들을 외우게 하거나 부모들이 불법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그러나 이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어린이란 일정기간이상 한 일에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지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포살일을 어린이들이 기다리는 축제일이 되도록 배려를 해준다.
즐겁게 숲과 들을 거닐면서 우리는 그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생명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자연스럽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안전하나 좁기만한 가정이라는 울타리로부터, 세상이라는 험난한 마당으로 어린이들을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불교도의 자녀들을 유년시절의 고오타마 싣닫타 왕자와 같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우리 안에서만 자라게 해서는 안된다.
자연으로의 여행은 어린이들에게 삶의 참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숲과 들에서 짐승들이 서로 싸워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냉엄한 현실을 보고 어린이들은 자연이 이빨과 손톱을 피로 물들인 맹수들의 무대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자연 속에 팽개쳐진 인간의 삶이 갖는 조건들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
9. 불교가 자비의 종교임을 충분히 인식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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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무엇보다도 자비를 근본으로 하는 종교이다.
만일 우리가 어린이들의 마음에 |
10. 부처님의 교화 방법을 본보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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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렵게 가르쳐서는 안된다. 이는 어린이의 불교에 대한 의욕을 상실케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당시 사회의 구조와 문제점, 그리고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의 성격을 소상히 파악하고 계셨다. 그래서 사람들을 어떻게 교화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왕에서 거지에 이르기까지, 무사에서 상인, 자유인이거나 노예, 철학자, 창녀 등 어떤 신분의 사람들이 찾아와도 부처님께서는 각각의 이해와 능력에 맞게 법을 설하셨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 가족으로 태어난 것은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해 그리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과 우리의 업력이 비슷해서일 것이다. 이 사실을 깊이 유념해 본다면 자녀들을 교화하는데 필요 불가결한 요소인 성격 파악이 용이해질 것이다. |
12. 자기 책임의 정신이 불교의 핵심임을 알게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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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 이야말로 불교의 중핵을 이르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그 중요성을 거듭거듭 강조해야 한다. 편견 없는 순수한 어린이들의 마음은 이 이치를 잘 이해할 것이다. 매일 저녁 다른 종교의 어린이들이 그들의 신에게 기도를 올릴 때 불교 어린이들 또한 잠깐 동안 좌선을 하고 그날 하루 자기가 한 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다음 번에는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을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어린이들이 자신의 그릇된 생각이나 행위를 근절시키기가 힘들어하면 그때 부모는 아이로 하여금 내일은 보다 잘 생각하고 행동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잠자리에 들도록 해준다. 다음날 아침 어린이들은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 그들이 했던 결심을 생각해 내고는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어린이들은 심력(마음의 힘)을 개발해 나갈 수 있으며, 끊임없이 선을 행하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숙달시켜 감으로써 그들 자신을 청정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우리 어린이들은 모든 것을 용서해준다는 신의 은총이나, 사제를 통해서만이 청정해질 수 있다는 기독교적 도그마를 너머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업의 법칙에 대한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이점을 더 명확하게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릇되고 제어되지 않는 행동을 길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에 지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미래에 보다 나은 행위를 하는 것이라는 업의 법칙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자기가 지은 것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완전한 자기 책임의 정신이야말로 성숙된 마음의 표시이다. 우리 어린이들의 마음에 이러한 수승한 마음이 계발된다면, 이는 그들 평생을 통해 가장 확실하고 완전한 의지처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맹목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종교를 극복하고 동시에 얄팍한 유물론의 철학을 뛰어넘는 튼튼한 보루가 될 것이다. 그 밖에도 불교도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들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 어린이들이 그들의 창조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식사 때에 불교 어린이들은 이 세상에는 자기들처럼 이런 훌륭하고 많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식사중에 어린이들이 음식이나 맛에 대해 절대로 불평하는 일이 없게 한다. 그러한 행위는 그들에게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해준다. 스님들이 바루 안에 있는 음식을 단지 몸을 지탱하기 위한 것으로 알아, 가리지 않고 먹는 것처럼 그런 자세로 식탁위의 음식을 먹게 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을 규제해서는 안된다. 이상과 같이 이 글에서 보는바와 같이 어린이 불교 교육에 대한 윤곽을 대충 잡아보았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불교도인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불교 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그 애들은 나중에 커서 스스로 종교를 선택해야 해. 우리도 그랬지 않은가?" 하는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중에 라니! 기독교와 유물론이 우리의 자녀들을 완전히 물들이고 난 후에는, 아무리 그들이 자란 후라도 자유롭고 지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어떻게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바른 진리의 길을 발견해 내리라고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외적인 도움 없이 스스로 진리를 깨달으셨다. 그러나 그 외의 사람들은 교육과 지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가라,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신들과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떠나라. 오, 비구들이여, 영광된 진리를 전파하라, 청정하고 완전하며 순결한 삶을 설하라." (율장 대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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