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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⑤실제적인 첫 걸음 ⑥안전한 안내자

5. 실제적인 첫 걸음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결코 소망하는 대상물이 아니며, 또 우리의 긴장.아픔, 그리고 고통의 원인이 방해하는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우리의 첫 통찰을 잊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고통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갈애이며, 이 갈애의 극복, 초월만이 우리를 자유에 더욱 접근시켜 행복에로 안내한다. 갈애나 증오가 이길 경우에는 행동 말 생각이 현혹된 짓을 하게 되고 따라서 함정에 더 깊숙히 빠져들게 되어 고통을 연장시키게 된다. 고통의 이 두 가지 뿌리가 치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참 성질에 관한 통찰[觀]을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실제로 모든 고통의 근본 뿌리인 무지에 대처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적..

[1]④출구

4. 출구(出口) 이 미궁에서 벗어날 출구는 있는가? 그리고 참되며 일체 미망에서 벗어난, 영원히 행복하고 안전한 상태가 실재하는가? 우리 모두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우선 괴로움의 세 뿌리를 극복하고 초월해야 한다.무릇 쾌락을 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은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의 변할 수 없는 자연스런 행동양식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단 여섯 감관과 관계된 일체의 즐거움이 덧없으며[無常], 근본적으로 비참한 것이며[苦], 실체가 없는 것[無我]인 줄을 적어도 이론적으로나마 파악하게 되고 그래서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된 이상, 영원한 행복의 상태를 구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 역시, 사물의 자연적 추세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끝도 없..

[1]③고통의 주된 원인

3. 고통의 주된 원인 무지는 이처럼, 일체 행동, 말, 생각을 통한 행위[삼업(三業; 身곋쥈意)]가 갈애나 증오와 관계될 때 나타나는 모든 고통의, 일차적인 원인이다. 무언가 갈망하는 대상을 추구할 때 우리는 그것을 손에 넣거나 가지게 되면 지속적 행복을 당연히 누리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이 곧 드러난다. 그래도 우리는 대상을 바꾸어 가면서까지 다시금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원하는 대상을 획득하는 데 방해되는 얄미운 장애물을 제거해 나가면서 우리는 항구적 행복이라는 목표에 좀더 접근한 양 생각하지만, 이 역시 그릇된 견해였다는 것이 판명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고작해야 지금껏 써 오던 방식만 바꿀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단순한 육..

[1]②함정에 빠져들게 되는 두번째 원인

2. 함정에 빠져들게 되는 두번째 원인 갈애만이 우리가 함정에 빠져 고통받게 되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즐거움을 찾기 때문에 우리는 즐겁지 않은 일체 사물을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그러다 정 피할 수 없게 되면, 이번엔 이 방해물 때문에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의 고통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믿어버리면서 이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파괴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불유쾌한 것들을 증오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고통의 두 번째 뿌리를 이루는 증오 또는 악의이다. 이 증오도 그 형태가 다양하여 쉽게 분별되는 것이 있고, 잠복해 있어서 분간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현대세계가 구가하는 그 모든 풍요에도 불구하고, 또 지상의 모든 인간의 실제적인 필요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 역량에도 불..

[1]①외향적(물질적) 성취의 참된 원인

제1장 세상에 무거운 짐 삼독심 우리는 지금 엄청난 물질적 성공을 구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성공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있다. 현대 산업의 생산성 덕분으로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급증하는 세계의 부(富)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으며, 실제로 그 부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지금 가진 것에 조금도 만족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마음은 항상 새로운 것을 쫓기에 급급하다. 이처럼 들뜬 마음은 한편으로는 끝없이 다양한 물건들을 발명해내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물건들이 가져다 줄 즐거움을 혹시 못 누릴까봐 제 몫을 챙기고자 혈안들이 되어 있다. 이렇듯 현대 기술문명의 활력이 한없이 다양해 보이기에, 우리는 이것이 우리 시대만의 특유한 위업인 양 착각하게 된다. 그 결과 마치 우리시대가 인류 역사상의 ..

부활 과 윤회 : 실체/실재하는 것 없이 다시 삶 : 재생으로서의 윤회 - 무주, 무상

9. 질문(9) 질문 사후의 생명에 대한 믿음은 불교도에게만 국한된 것입니까? 그러한 믿음은 불교가 출현하기 이전에도 있었습니까? 대답 사후의 생명을 믿는 사람은 결코 불교도들만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상고적부터 있던 것 중의 하나이며, 불교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에 이집트인에게도 존재하였고 나중에 그리스인, 로마인 그리고 인도 브라만들 중에도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비불교도의 믿음과 불교도의 믿음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비불교도들의 믿음은 사람 안에 한 생으로부터 다른 생으로 옮겨가거나 전이될 수 있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이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단어는 재생(rebirth)이 아니고 재육화(reincarnation)입니다. 불교적 원리에 의하면 한 생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