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 !/수미산이야기 125

[1]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http://cafe.daum.net/cigong2500/HZGS/834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How to teach Buddhism to children? H. 클라르 지음 각묵 스님 옮김 (Bodhi Leaves No.9)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Sri Lanka Dr. H. Klar [목차] 제1장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1. 어린이는 어른을 모방한다. 2. 분위기 조성은 어린이 교육에 도움을 준다. 3. 축제를 활용한다. 4. 어린이에 대한 불교 교육은 불자의 의무이다. 5. 불교 역사를 가르친다. 6. 불법을 설명해 준다. 7. 어린이에게 경전 암송을 시킨다. 8. 포살일을 존중한다. 9. 불교가 자비의 종교임을 ..

[2] ③인과와 도덕적 책임

③ 인과와 도덕적 책임 불교는, 육체 및 정신의 작용을 정신물리적 에너지의 역학적 흐름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유일한 지식체계라는 점부터 먼저 말해 두어야겠습니다. 부처님이 설명하시는 정신물리적 역학의 세세한 의미를 여기선 깊이 파고들 필요도 없고 또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 불교에 의하면, 흔히 ‘삶’이라고 불리우는 현상의 정체는 단지 인과관계의 진행일 따름이고, 그것은 정신적 에너지와 육체적 에너지간의 부단한 상호작용과 관련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형태의 에너지는 그것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순간적으로 생겨났다-사라졌다-생겨났다 하면서 생성[有]의 흐름[流轉]을 이룬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매순간의 생성은 다음 순간의 다른 일어남을 유도하여 원인-결과-원인의 순환을 지속시켜 나갑니다. 생겨남 ..

[2]②불교인의 새 시대관

② 불교인의 새 시대관 이 문제에 있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훗날의 논사(論師) *2 들 말씀과는 신중하게 구별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부처님께서 인간의 일반적 성향과 수명이 큰 폭으로 변하는 방대한 시간의 주기를 언급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장수하고 근심 걱정이 적었던 시절, 부처님이 출현하시어 진리수행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갖추어졌던 그런 시절에 관해 언급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수를 누리는 것이 언제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도리어 깨달음을 향한 공부에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장수를 누리다 보면 불교 진리의 가장 핵심인 무상(無常)의 진리 *3 를 깨닫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반열반 *4 에 드신 후 약 천 년 뒤에 스리랑카에서 논..

[2] ① 새 시대인가 말세인가?

① 새 시대인가, 말세인가 요즘에 와서 사람들이 바야흐로 ‘새 시대’가 동터오고 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대개는 젊은이들인 것 같고, 기성세대들은 별로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어쨌든 ‘새 시대‘가 정말로 다가오고 있는지 그 여부에 관심이 깊은 사람들이 그동안 충분하리만큼 많은 얘기를 해왔고, 이 문제를 주제로 한 저술 역시 꽤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새 시대’에 붙이는 이름도 각자의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그 중에는 ‘아카리우스 별자리 시대’ 주1) 란 이름도 자주 들먹여지고 있습니다. 그럼 ‘새 시대’의 특징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새 시대’를 설명해 주는 가장 현저한 특징은 사람들이 다 같이 화합하여 살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이 애써야 한다는 ..

[1]⑦갈애의 한층 섬세한 모양들

7. 갈애의 한층 섬세한 모양들 그러나 한층 섬세한 형태의 갈애의 경우 당분간은 사정이 달라진다. 모든 욕구를 한꺼번에 다 버릴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욕구에도 비천한 욕구가 있으며, 어떤 조건을 달아 고상한 욕구라 부를 만한 것도 있다. 또 일부 개인적인 욕구는 이내 포기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가족에 관한 것일 경우, 그 구성원의 안녕이 자기에게 달려 있는 한, 일정 수준의 생활을 확보하려는 욕구는 아마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감관적 욕구도 상당한 정도까지는 제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이나 미술에 대한 심미적 즐거움마저 별안간에 다 버리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 마냥 권할 일도 못된다. 예술 역시 감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언젠..

[1]⑤실제적인 첫 걸음 ⑥안전한 안내자

5. 실제적인 첫 걸음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결코 소망하는 대상물이 아니며, 또 우리의 긴장.아픔, 그리고 고통의 원인이 방해하는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우리의 첫 통찰을 잊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고통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갈애이며, 이 갈애의 극복, 초월만이 우리를 자유에 더욱 접근시켜 행복에로 안내한다. 갈애나 증오가 이길 경우에는 행동 말 생각이 현혹된 짓을 하게 되고 따라서 함정에 더 깊숙히 빠져들게 되어 고통을 연장시키게 된다. 고통의 이 두 가지 뿌리가 치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참 성질에 관한 통찰[觀]을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실제로 모든 고통의 근본 뿌리인 무지에 대처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적..

[1]④출구

4. 출구(出口) 이 미궁에서 벗어날 출구는 있는가? 그리고 참되며 일체 미망에서 벗어난, 영원히 행복하고 안전한 상태가 실재하는가? 우리 모두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우선 괴로움의 세 뿌리를 극복하고 초월해야 한다.무릇 쾌락을 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은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의 변할 수 없는 자연스런 행동양식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단 여섯 감관과 관계된 일체의 즐거움이 덧없으며[無常], 근본적으로 비참한 것이며[苦], 실체가 없는 것[無我]인 줄을 적어도 이론적으로나마 파악하게 되고 그래서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된 이상, 영원한 행복의 상태를 구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 역시, 사물의 자연적 추세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끝도 없..

[1]③고통의 주된 원인

3. 고통의 주된 원인 무지는 이처럼, 일체 행동, 말, 생각을 통한 행위[삼업(三業; 身곋쥈意)]가 갈애나 증오와 관계될 때 나타나는 모든 고통의, 일차적인 원인이다. 무언가 갈망하는 대상을 추구할 때 우리는 그것을 손에 넣거나 가지게 되면 지속적 행복을 당연히 누리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이 곧 드러난다. 그래도 우리는 대상을 바꾸어 가면서까지 다시금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원하는 대상을 획득하는 데 방해되는 얄미운 장애물을 제거해 나가면서 우리는 항구적 행복이라는 목표에 좀더 접근한 양 생각하지만, 이 역시 그릇된 견해였다는 것이 판명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고작해야 지금껏 써 오던 방식만 바꿀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단순한 육..

[1]②함정에 빠져들게 되는 두번째 원인

2. 함정에 빠져들게 되는 두번째 원인 갈애만이 우리가 함정에 빠져 고통받게 되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즐거움을 찾기 때문에 우리는 즐겁지 않은 일체 사물을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그러다 정 피할 수 없게 되면, 이번엔 이 방해물 때문에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의 고통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믿어버리면서 이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파괴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불유쾌한 것들을 증오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고통의 두 번째 뿌리를 이루는 증오 또는 악의이다. 이 증오도 그 형태가 다양하여 쉽게 분별되는 것이 있고, 잠복해 있어서 분간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현대세계가 구가하는 그 모든 풍요에도 불구하고, 또 지상의 모든 인간의 실제적인 필요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 역량에도 불..